감각을 나누는 기이한 토종 SF 스릴러 《파우스터》
  •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5.05 11:00
  • 호수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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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과 영화 넘나드는 ‘만능 작가’ 김호연의 색다른 도전

고전은 들었을 때 묵직한 맛이 있어야 고전답다. 그래선지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에서 모티브를 차용한 이 소설도 묵직하다. 2013년 《망원동 브라더스》로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한 김호연 작가의 새 장편소설 《파우스터》는 사람의 머리에 얇고 가는 무언가를 심어 한 사람의 감각을 그대로 가져올 수 있다는 비교적 상식적인 전제를 갖고 시작한다. 

이런 도구를 통해 하나의 거대한 조직이 만들어졌다. 이 장치를 통해 젊은 몸을 조종하며 욕망을 채우는 사람들을 끌어들여 이익을 얻는 메피스토라는 다국적 회사다. 베일에 가려진 이 세계에 들어가 젊은 몸을 지배하려는 파우스트가 있다. 100억원에 달하는 회원권을 구매하면 입성이 가능한 파우스트는 자신이 키우고 싶은 젊은이를 선택해 그들을 자신이 영향을 주는 ‘파우스터’로 만든다. 파우스터는 당연히 파우스트나 메피스트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대신에 그들은 자신의 상위 숙주 같은 파우스트를 위해 관리받으면서 성장해 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파우스터》김호연 지음│위즈덤하우스 펴냄│544쪽│1만6800원 ⓒ 조창완 제공
《파우스터》김호연 지음│위즈덤하우스 펴냄│544쪽│1만6800원 ⓒ 조창완 제공

SF와 스릴러 장르 한곳에 담아내

소설의 주인공인 야구선수 박준석도 이태근이라는 메피스트에 지배당하면서 살아간다. 불우한 고아로 살아온 그가 이미 오염된 할머니를 통해 서서히 자신의 꿈인 야구를 시작하고, 왼손 파이어볼러(강속구 투수)가 돼 메이저리거를 꿈꾸게 된다. 그런 그에게 최경이라는 여성이 다가와 하나하나를 일깨우면서 그는 파우스트와의 전쟁을 시작한다. SF와 야구, 권력 등이 적절히 섞인 소설은 들어가는 순간 빠져나오지 못할 묘한 매력이 있다. 데뷔작이 연극의 원작이 돼 명성도 얻었고, 시나리오 작업을 주된 생계수단으로 하는 작가를 만나 이번 소설의 전반을 들어봤다. 그는 왜 낯선 장르를 선택했을까. 

“SF와 스릴러 장르를 동시에 잡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물론 어떤 장르보다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게 강했고 장르는 그에 맞췄을 뿐이다. 시대의 공기를 품은 채 내가 구사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 기술을 총동원했다. 긴장과 스릴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글을 쓰는 도중에 팔과 어깨가 마비되고 이후에는 목 디스크 진단까지 받았다. 내게 재능이 있다면 필력이 아니라 인내력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이 소설은 류현진 같은 야구선수부터, 한때 절대권력으로 군림한 김기춘 전 비서실장 같은 인물까지 많은 현실 인물이 떠오른다. 이에 대해 작가는 어떻게 생각할까. 

“시대의 공기를 담은 이야기를 쓰고 싶었고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인물을 상상했다. 언급된 두 사람만이 아닌, 당연히 여러 인물들이 믹스매치 됐다. 그럼에도 생생한 캐릭터를 만들기란 여전히 난망할 뿐이다. 최근 김학의 사건을 배경으로 한 듯한 영화 《내부자들》에서 보듯이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현실 취재에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설에서 젊은 몸을 조종하며 욕망을 채우는 노인을 보면, ‘3포 세대’ ‘5포 세대’ 등 젊은이들에게 절망적인 현실도 떠오른다. 이 소설의 사회학적 가치도 생각했을까. 

“현재 우리 사회가 세대 간의 차이와 갈등이 커진다는 것에 주목했고 걱정도 있다. 이를 이야기에서 함께 나누고 싶었다. 세상에는 파우스트 같은 존재를 통해 경제적, 권력적으로 성공하는 이들이 분명히 있다. 10억원을 준다면 감옥에 가겠다는 어린 학생들에 관한 여론조사를 읽으면서 우리는 삶이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고, 이 소설의 깊은 면에는 그런 갈등도 존재한다.”


인간 욕망에 대한 기발하고 독창적인 이야기

읽으면 영화에 최적화된 소설이라는 느낌을 피하기 어렵다. 이미 연극이나 영화의 세계를 겪어온 경력이 있어서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작가는 이런 점을 어떻게 생각할까. 

“소설은 소설만의 텍스트를 통한 상상력과 공감대가 있다. 독자 모두의 머릿속에 각자의 준석과 은민, 태근이 그려질 것이다. 그리고 기존 영화들이 노인을 젊음으로 재생하는 방식은 뇌 이식 등 생체공학으로 젊은 몸을 빼앗는 것인데 이 작품은 젊은이의 감각정보를 훔치고 그를 사회적 구조 안에서 조종한다. 이것이 기존 영화들의 지점과 차이가 있으리라고 보았다. 다만 영화로 만들기엔 분량이 너무 길다.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 제작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쓰진 않는다. 《파우스터》는 캐릭터들의 내면을 파고드는 설정과 분량이 많아 소설이 더 어울리는 분야라고 생각해 소설로 썼다. 현재 새로운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척 봐도 영화적 소재다. 이야기의 아이템이 떠오르면 그것이 소설에 적합한가, 영화 시나리오에 적합한가를 먼저 판단하는 게 내 일의 시작이기도 하다.”

소설과 영상을 동시에 구상하는 작가가 탄생한다는 것은 분명히 반가운 일이다. 일본은 ‘히가시노 게이고’ ‘야쿠마루 가쿠’ ‘무라카미 하루키’ 등 상당수 작가들이 소설과 영화를 넘나드는데 한국에는 그런 작가가 많지 않다. 김영하가 그 영역에 있지만 혼자만 너무 바빴는데, 김호연 작가가 그런 역할을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섣부른 기대를 갖게 한다. 그런 점에서 그가 생각하는 앞으로의 작업도 궁금하다. 

“《고스트라이터즈》가 소프트한 스릴러, 《파우스터》가 내밀한 스릴러였다면, 이번엔 정통 스릴러를 하드하게 써보고 싶다. 물론 언제든지 밝고 유쾌한 이야기로 돌아갈 준비도 돼 있다. 머릿속에 부유하는 여러 이야깃거리 중 가장 먼저 수면에 떠오르는 놈으로 캐치하겠다.”

이 소설의 후반은 영화가 그러듯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자제하는 것이 맞다. 다만 생각 외의 반전으로 독자들에게 공감을 주는 것에서 재미가 있다. 영화 《완벽한 타인》 이재규 감독이 ‘표지를 여는 순간부터 멈출 수가 없었다. 인간의 욕망에 대해 이토록 기발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쏟아내는 소설가가 우리에게도 있었다니! 너무도 새롭게 독창적인 방식으로 나를 몰입시켰다’는 말을 공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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