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트롯》 《슈퍼밴드》 다시 주목받는 오디션 프로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5.05 10:00
  • 호수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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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 끝난 줄 알았던 오디션 프로그램은 어떻게 부활했나

TV조선의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트롯》이 대박을 쳤다. 종편 예능 최고 시청률 기록이 JTBC 《효리네 민박》의 10.75%였는데, 《미스트롯》이 6회에 11.2%를 찍어 종편 예능 시청률 신기록을 세웠다. 그때부터 무려 4주 연속으로 종편 예능 시청률 기록을 갈아치웠다. 9회 준결승의 시청률은 14.4%에 이르렀다. 동시간대 지상파 드라마까지 제친 성적이다. 결승전은 15% 돌파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JTBC 오디션 《슈퍼밴드》는 인터넷에서 화제다. 시청률은 2%도 넘기지 못했지만 음악팬들의 지지가 각별하다.

이렇게 되자 다시 오디션이 주목받는다. 과거 Mnet 《슈퍼스타K》 이후 오디션 붐이 일었었다. 지상파에서도 경쟁적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을 편성했고 큰 인기를 모으기도 했지만 이내 관심이 식었다. 그때 생겨났던 프로그램들 중 가장 오래 방영된 것이 원조인 《슈퍼스타K》와 SBS 《K팝스타》였는데 지금은 모두 막을 내린 상태다.

그 후 힙합이라는 제한된 장르에서 명맥을 이어가던 오디션이 다시 주목받은 것은 Mnet 《프로듀스 101》의 대성공 때문이었다. 《슈퍼스타K》가 떴을 때처럼 이번에도 유사한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이 줄을 이었지만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그래서 오디션의 부흥이 아닌 《프로듀스》 시리즈 한 편의 성공으로만 남았다.

그렇게 오디션은 소강상태에 빠져들었는데 《미스트롯》의 성공과 《슈퍼밴드》에 쏟아지는 찬사가 다시금 오디션을 부상시킨 것이다. 《미스트롯》은 TV조선 내부에서 조속한 시즌2 방영이 논의되고 있고, 《슈퍼밴드》는 누리꾼들이 시즌2를 요청하고 있다. 다음 시즌에도 이 프로그램들이 안방극장을 지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오디션은 젊은 신인 가수를 발굴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당연히 젊은이들이 도전해 최신 트렌드에 맞는 발라드, 댄스, 힙합 등을 선보여왔다. 《미스트롯》 제작진은 이 고정관념을 깨고 트로트를 선택했는데 이것이 신의 한 수였다. 오디션이라는 최신 포맷과 트로트라는 전통적 장르가 만나자 폭발적인 시너지 효과가 나타났다.

트로트는 그동안 소외된 장르였다. 《가요무대》나 《전국노래자랑》 같은 프로그램에서 트로트를 접할 수 있지만, ‘핫’한 음악 프로그램에서 트로트는 밀려난 지 오래였다. 그렇기 때문에 오디션으로 트로트가 부각되자 더욱 뜨거운 반향이 일었다. 다른 방송사들이 힙합 같은 레드오션에서 분투할 때 《미스트롯》은 트로트라는 무주공산 블루오션을 뚫은 것이다.

위쪽부터 《슈퍼밴드》 《미스트롯》의 한 장면 ⓒ JTBC·TV조선
위쪽부터 《슈퍼밴드》 《미스트롯》의 한 장면 ⓒ JTBC·TV조선

허를 찌른 《미스트롯》의 장르 선택

기존 오디션을 성공시킨 ‘인생극장’식 스토리가 여기서 빛을 발했다. 출연자의 사연을 소개하면서 그들이 화려하게 인생역전의 모습을 보여줘 시청자가 빠져들게 하는 전략이다. 《슈퍼스타K》 등이 이런 전략으로 대성공을 거뒀지만 ‘사연팔이’라는 비난에 직면했고, 이제 젊은이들은 이런 구성에 식상함을 느낀다. 인생역전 코드도, 막상 오디션에서 입상해 봐야 빅스타가 되기 어렵다는 현실을 시청자가 깨달으면서 판타지와 기대감이 깨졌다. 하지만 중노년 시청자들에겐 이 ‘사연팔이’ 오디션이 신선했고 인생역전 스토리에 대한 기대감도 살아 있었다. 제작진은 ‘백억 트롯걸’ 운운하면서 이런 판타지를 부추겼다. 그리하여 아이 엄마, 성대 수술한 무명가수 등의 사연에 시청자가 몰입하면서 인생역전을 응원하는 《미스트롯》 중노년 팬덤이 만들어진 것이다.

또 젊은 층 대상 음악 프로그램에서 경연 형식이 일반화된 것에 비해, 트로트 프로그램들은 보통 선후배 출연자들이 화합하는 ‘큰 잔치’형 구성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스트롯》에 나타난 긴장감 넘치는 가창력 진검승부 경연은 중노년 시청자에게 새로운 경험이었다. 예측불가의 뜨거운 경쟁이 나타난 것도 흥미도를 높였다. 처음엔 송가인이 여유 있게 압승할 것 같았지만, 감성 보컬의 홍자가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랐고 준결승엔 세 아이 엄마 정미애가 다크호스로 부각돼 각축을 벌인 것이다.

젊은 층에도 트로트 경연이 새롭게 다가갔다. 젊은 출연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더 공감할 수 있었고, 요즘 ‘뉴트로’가 유행한다고 할 정도로 젊은 층이 복고 감성, 아날로그 감성에 호의적이기 때문에 《미스트롯》이 더 폭넓은 세대에게 인기를 끌 수 있었다.

미스코리아 형식을 차용하고, 선정적인 옷차림으로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듯한 부분에 문제는 있었지만 큰 틀에서 보면 긍정적이다. 어쨌든 트로트라는 소외된 영역을 전면에 내세웠고, 이를 통해 젊은 신인들을 발굴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미스트롯》 시즌이 이어지면서 트로트 신인 등용문으로 자리 잡을 분위기다.

 

이렇게 많은 천재들이 묻혀 있었다니

JTBC 《슈퍼밴드》는 놀라운 선택을 했다. 오디션에서 밴드를 내세운 것이다. 우리나라는 밴드 음악 선호도가 매우 낮다. 과거 KBS가 《톱밴드》라는 오디션을 시도했었지만 무관심 속에 종영한 선례가 있다. 이렇게 흥행 가능성이 낮은 분야인데도 과감하게 밴드를 선택했다. 이것만으로도 《슈퍼밴드》에 찬사를 보낼 이유는 충분하다.

밴드는 대중음악의 기본이다. 뮤지션들이 각자의 취향에 맞게 밴드 멤버들을 찾고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대중음악이 발전한다. 이런 밴드들이 서구 팝 역사를 이끌어왔고 지금도 그 위상이 막강하다. 런던올림픽 당시 영국이 자국의 대표적 문화상품으로 내세운 것도 대부분 밴드였다. 팝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비틀스를 비롯해 1960~70년대 팝의 전성기를 수놓은 전설적인 뮤지션들도 밴드였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밴드가 아닌 춤추는 어린 중창단이 가요계를 이끈다. 바로 아이돌인데, 이들을 만드는 주체는 그들 자신이 아닌 기획사다. 기획사가 멤버 구성, 거주지, 취침 시간, 식단, 음악적 방향, 퍼포먼스, 활동 방향까지 모두 정해 준다. 이 시스템이 엄청난 성공을 거둬 한류가 나타났지만, 한류의 빛이 환해질수록 우리 내부 음악적 공허함의 그림자는 어두워졌다. 주요 음악 프로그램 출연자들이 모두 아이돌인 현실은 낯 뜨겁기 그지없다.

이렇기 때문에 《슈퍼밴드》가 모처럼 밴드를 조명하는 것이 반가운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사연팔이’를 배제한 음악 그 자체만을 내세웠고, 아이돌 오디션에선 볼 수 없었던 연주 천재들이 잇따라 재능을 선보여 시청자의 찬탄을 이끌어냈다. 《슈퍼밴드》가 아니었으면 대중이 이들을 발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과 함께 새로운 재능을 발굴하는 오디션의 미덕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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