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처럼 지냈던 유시민·심재철의 엇갈린 운명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19.05.03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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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술서 놓고 진실 공방
심재철, “1980년 유시민 진술서, 민주화인사 77명 겨눈 칼 돼” vs 유시민 “다 감추고 부인, 잘 쓴 진술서”

 

ⓒ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유튜브 방송 화면 캡처
ⓒ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유튜브 방송 화면 캡처

"심재철 의원의 주장이나 일부 언론의 보도, 이런 것들이 얼마나 적확한 것인지. 시청자 여러분이 한 번 판단에 보시라."

'1980년 유시민의 진술서가 77명의 민주화운동 인사를 겨눈 칼이 됐다'는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의 주장에 대해 유시민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재단 유튜브 채널 방송을 통해 반박했다. 논쟁거리가 될 만한 사안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미소를 띄며 차분한 어조로 방송을 진행했다.

유 이사장은 5월1일 '1980 서울의 봄, 진술서를 말할레오'라는 제목의 영상에서 "저는 그 진술서를 보면 잘 썼다고 생각한다"면서 "감출 것은 다 감췄고, 부인할 것은 다 부인했다"고 밝혔다.

유 이사장은 1980년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이었다. 그를 저격한 심 의원은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다. 절친한 동지였던 그들은 40여년이 흐른 현재 각각 진보(유 이사장)와 보수(심 의원)진영에 서서 서로의 학생운동 행적과 관련한 진실공방을 벌이게 됐다.

싸움을 먼저 건 쪽은 심 의원이었다. 심 의원은 4월22일 페이스북 글에서 유 이사장이 지난 4월20일 KBS 2TV '대화의 희열'에 출연해 1980년 당시 자신의 행동을 일방적으로 미화했다고 지적했다. 심 의원은 "1980년 (유 이사장이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에서 쓴 A4 용지 90쪽 분량에 이르는 상세한 운동권 내부 동향 자백진술서는 사실상 그가 진술서에서 언급한 77명의 민주화운동 인사를 겨눈 칼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그중 3명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공동피의자 24인에 포함되는 등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핵심 증거로 활용됐다"며 "유시민의 진술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판결문에서 증거의 요지로 판시됐다"고 전했다. 또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자신의 재판에 핵심 증거물로 제출돼 유죄 선고 증거로 채택됐다고 덧붙였다.

심 의원 주장에 대해 유 이사장은 "그때 학생회장이나 대의원회 의장은 늘 잡혀간다는 것을 전제로 활동했다"면서 "처음에 학생회 간부를 맡을 때 잡혀서 진술하게 되면 무엇을 감추고 무엇을 노출할지 이미 사전에 얘기가 됐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잡혀가면 첫째로 학내 비밀조직을 감춰야 한다. 우리는 총알받이로 올라온 사람들이다. 소속 써클과 비밀조직을 감추고 모든 일을 학생회에서 한 것으로 진술하도록 예정돼 있었다"며 "두 번째로는 정치인들과 묶어 조작하는 것에 휘말리면 안 된다. 당시 김대중 야당 총재와는 절대 얽히면 안 됐다"고 설명했다.

유 이사장은 "합수부에서 쓴 진술서에 신계륜(당시 고려대 학생회장), 이해찬(당시 서울대 복학생협의회장) 등 (당국이) 다 아는 것만 썼다. 다른 내용도 비밀이 아닌 별 가치 없는 진술이었다"며 "김대중 총재의 조종을 받아 시위했다는 진술을 계속 요구받았지만 알지 못한다고 버텼다"고 주장했다.

당시 진술서를 쓴 이후 500명 가까운 수배자 명단이 발표됐는데, 본인이 감춘 비밀조직(서울대 농촌법학회) 구성원은 단 1명도 포함되지 않았다고 유 이사장은 강조했다. 그는 "심 의원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당시 형제처럼 가까웠다. 군대에서 첫 휴가를 받아 심 의원이 복무 중인 부대로 면회도 갔다"며 "심 의원도 이제 이 일에 그렇게 매달리지 않고 자기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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