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선발투수, 커지는 불펜 부담감
  • 송재우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5.05 15:00
  • 호수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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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의 1승’보다 보직 간 균형으로 더 많은 승리 챙기는 혜안 필요

얼마 전 기아 타이거즈의 마무리 투수 김윤동이 경기 도중 어깨 쪽 통증을 호소하며 마운드에 주저앉아 강판당한 이후 불펜 투수들의 혹사 논란이 강하게 제시되고 있다. 사실 최근 추세를 살펴보면 단순히 KBO리그에서만 불펜 투수들의 혹사 논란이 회자되는 것이 아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최근 불펜 투수들의 부담감이 갈수록 가중되고 있다. 그런데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 같은 현상은 결국 선발 투수들이 소화하는 절대 이닝 수가 갈수록 줄어드는 데 기인한다. 전통적 의미의 선발 투수는 말 그대로 본인이 등판한 경기를 끝까지 책임진다는 생각으로 마운드에 올랐고 실질적으로 최대한 오랫동안 마운드에 머무는 것이 자신의 의무이자 자랑거리로 여겼다. 하지만 투수 분업화가 본격화된 이후 선발 투수의 이닝 소화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그럼 나머지 이닝에 대한 부담은 고스란히 불펜 투수들에게 돌아가고 과거와는 달리 잦은 경기 등판과 이닝 소화로 부상에 대한 노출도가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어깨 부상을 당한 기아 마무리 투수 김윤동 ⓒ SPOTV 캡처
어깨 부상을 당한 기아 마무리 투수 김윤동 ⓒ SPOTV 캡처

작년 메이저리그 완투 42경기, 역대 최소 기록

우선 수치상으로 이런 현상을 감지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정도다. 메이저리그의 경우 일단 완투 경기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작년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완투 경기는 단 42경기에 그쳤다. 이는 메이저리그 143년 역사에서 최소 기록이다. 심지어 늘 투수 왕국을 자처했던 다저스는 팀 역사상 최초로 단 한 경기도 완투 경기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메이저리그는 불과 4년 전인 2015년에는 104번의 완투 경기가 나왔다. 2011년부터 매년 완투 경기는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2003년 209 완투 경기, 1998년 302 완투 경기는 이제 언감생심 다시 보기 어려운 과거의 추억이 되고 있다. 당연히 KBO리그도 다르지 않다. 작년 완투 경기는 모두 17경기에 그쳤고 우승팀 SK 와이번스를 비롯해 한화 이글스, 삼성 라이온즈, 롯데 자이언츠 등 4개 팀은 단 한 번의 완투 경기도 생산해 내지 못했다. 2015 시즌에는 27번의 완투 경기가 나왔고 2003년에는 35번의 완투가 있었다. 15년 사이 완투 경기 수가 반 토막 난 것이다.

완투 경기가 줄었다는 것은 당장 불펜 투수의 소화 이닝이 자연스레 늘어남을 의미한다. 작년 메이저리그에서 선발 투수는 경기당 5.4이닝을 책임졌다. 이는 6회 1사까지 던진 것을 의미한다. 10년 전인 2008년에는 5.8이닝으로 아웃 카운트를 하나 더 잡아내고 물러났다. 언뜻 보면 큰 차이가 아닌 것 같지만 162경기를 놓고 보면 162개의 아웃 카운트를 불펜에서 더 잡아내야 하고 무려 6경기를 불펜 투수들이 더 책임졌다는 것을 나타낸다. 1998년에는 6.1이닝을 소화했으니 선발 투수의 이닝 수는 갈수록 줄어들고 불펜 투수들의 이닝 소화는 갈수록 늘어난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작년 KBO리그에서 선발 투수가 던진 이닝은 총 7616이닝이었다. 한편 불펜 투수들은 5150이닝을 던졌다. 결국 불펜 투수들은 전체 이닝의 40.3%를 맡아줘야 했다. 사실 이런 추세는 2000년대 중반부터 꾸준히 국내 리그에서 볼 수 있는 트렌드였다. 2000년대 들어 무려 7번의 우승을 하며 동 기간 최다 우승을 했던 삼성 라이온즈가 오승환·안지만·권혁·정현욱·권오준과 같은 국가대표급 막강 불펜을 갖추고 선발 투수가 5회까지만 막아주고 앞서면 무조건 경기에 이긴다는 공식을 만든 이후 타 팀들도 너도나도 이 같은 성공 공식을 벤치마킹했고 마운드의 무게중심이 마치 선발에서 불펜으로 옮겨진 듯한 느낌마저 주었다. 물론 이 같은 현재 흐름을 삼성 라이온즈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 당시 막강 불펜은 라이온즈의 최대 강점이었고 팀은 이런 강점을 극대화시켰을 뿐이다. 오히려 이같이 불펜이 두텁지 못한 팀들의 벤치마킹이 무리수로 흐른 경향이 강했고 불펜을 강화하기 위해 젊고 구위가 좋은 투수들이 선발보다는 잦은 등판이 가능한 불펜 쪽으로 배치되는 경우가 자주 생김으로써 선발과의 불균형이 심화되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지적이 더 정확할 것이다.   

문제는 경기 중반부터 리드를 지키며 승리를 지켜내는 확실한 투수의 절대 수가 부족한 가운데 각 팀의 일부 주력 불펜 투수들의 경기 노출도가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작년 KBO리그에서 가장 많은 경기에 출장한 투수는 롯데 자이언츠의 오현택으로 72경기에 출장했다. 팀당 144경기를 치르니 정확히 절반의 경기에 출장한 것이다. 그 뒤를 이어 삼성 라이온즈의 최충연이 70경기에 나왔고 공동 10위 3명이 64경기에서 각각 던졌다. 그리고 이들 12명 중 절반에 가까운 5명이 등판한 경기 수보다 많은 이닝을 소화했다. 등판 경기 수 20위까지로 확대하면 절반이 넘는 11명으로 늘어난다. 한 시즌 162경기를 치르는 메이저리그에서는 브래드 지글러의 82경기를 필두로 공동 9위가 74경기로 적지 않은 경기에 나왔다. 하지만 단 2명만이 등판 경기 수보다 많은 이닝을 던졌다. 경기 출장 수도 많은데 이닝 수까지 많다면 당연히 몸에 무리가 갈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롯데의 무너진 불펜으로 인해 잦은 등판에 따른 혹사설이 제기되는 구승민 ⓒ 뉴시스
롯데의 무너진 불펜으로 인해 잦은 등판에 따른 혹사설이 제기되는 구승민 ⓒ 뉴시스

불펜 분업화는 오래전부터 야구의 기본 

국내 리그의 경우 지도자들은 많은 이닝을 소화할 만한 선발 투수 감이 많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불펜을 일찍 그리고 많이 활용할 수밖에 없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불펜에서도 믿고 맡길 만한 투수가 한정적이라 일부 선수들에게 부하가 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젊고 구위가 좋은 많은 투수들에게 극히 제한적인 선발 기회를 제공하고 선발 감이 아니라며 불펜으로 보직을 변경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봐왔다. 메이저리그의 이유는 약간 다르다. 한 경기에서 여러 번 타자를 상대하는 선발 투수의 공이 갈수록 타자들 눈에 익으니 짧은 이닝을 소화하게 하고 더 강력한 공을 던지고 생소한 느낌을 주는 불펜 투수를 빠른 타이밍에 올려 상대 타선을 잠재우겠다는 이유가 그것이다. 

이제 25경기 남짓 경기를 치른 현재 이미 13명의 불펜 투수가 절반이 넘는 13경기 이상 출장하고 있다. 그리고 완투 경기는 단 2경기만 나왔을 뿐이다. 불펜의 분업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야구의 기본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선발 역시 보직 중 하나다. 보직 간의 균형이 무너지면 그 팀의 미래가 결코 밝다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제한된 팀의 로스터는 모든 팀이 같은 조건이다. 주어진 조건 내에서 눈앞의 1승 챙기기에 급급하기보다 잘 분배된 일의 강도로 향후 더 많은 승을 챙기는 혜안이 필요치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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