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1인 기업” 2030 파고드는 ‘N잡러’들
  • 한다원 시사저널e. 기자 (hdw@sisajournal-e.com)
  • 승인 2019.05.09 11:00
  • 호수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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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시장에서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아
취미를 직업으로 삼는 2030세대 취향 반영

다양한 일과 취미를 병행하며 생계유지나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이른바 ‘N잡러(Jober)’가 늘고 있다. 수십 년간 한 가지 분야에 몰두해 전문가가 되기보다 여러 일과 취미를 병행하며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셈이다. 1980~2000년대 태어난 2030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되는 N잡러는 하나가 아닌 2개 이상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뜻한다. 주 52시간 근로단축 제도가 대기업 중심으로 활성화되면서 일과 후 유튜브, 배달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1인 마켓 등을 겸업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추세다.

N잡러가 많아진 데는 이유가 있다. 최근 근로단축 제도가 시행되면서 퇴근 후 여유 시간이 생기고, 다양한 일을 시도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됐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고용 동향을 보면 지난해 ‘시간 관련 추가 취업 가능자’는 62만9000명으로 1년 전보다 10.3% 늘었다. 시간 관련 추가 취업 가능자는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5년 50만4000명이었던 것에 비해 4년 사이 10만 명 넘게 늘었다.

최근 2030세대를 중심으로 일과 취미를 병행하는 이른바 ‘N잡러’들이 크게 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최근 2030세대를 중심으로 일과 취미를 병행하는 이른바 ‘N잡러’들이 크게 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개인의 자아실현 중시하는 N잡러들

N잡러는 본업 외 다른 일을 하는 이른바 투잡족(two-job族)과는 다르다. 본업 외에 다른 일을 한다는 점에선 같다. 하지만 투잡족은 단순히 생계를 위해 대리운전, 편의점 등의 파트타임(part-time) 일자리를 여러 개 갖는 저임금·임시직 노동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최근 등장한 N잡러는 경제적 소득 외에도 본업에서는 충족할 수 없는 개인의 자아실현을 중시한다. 생계유지를 위해 여러 곳에서 일하는 투잡족과는 달리 N잡러는 퇴근 후 1인 크리에이터 활동을 위해 수십만원을 들여 유튜브용 방송 장비를 장만하는 등 취미로 시작한 활동을 전문 분야로 확산한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관계자는 “두 가지 이상의 직업을 가진 N잡러라는 새로운 부류가 등장했다”며 “N잡러는 생존형 업무를 병행하는 투잡족과 달리 본업에서 채워지지 않는 자아실현을 위해 관심 있는 분야에 도전하는 경향이 크다”고 분석했다.

N잡러는 ‘긱 경제’(gig-economy)와도 맞물린다. 긱 경제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나 SNS 등 디지털 플랫폼에 기반한 신종 일자리와 고용 형태를 뜻한다. 디지털 시대의 N잡은 1인 혹은 시간 단위까지 원하는 만큼, 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뿐더러 육아, 학습 등 개인 변수에 맞게 근무 강도와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이미 세계적인 추세다. 컨설팅 기업 맥킨지는 오는 2025년까지 긱 경제가 창출하는 부가가치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2%에 해당하는 2조70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 세계 5억4000만 명 정도가 단기 일자리를 통해 실업 기간 단축이나 추가 소득을 확보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전망도 나왔다.

상대적으로 위계질서가 강한 국내 기업의 조직 문화가 N잡을 부추긴다는 주장도 있다. 어학원 인터넷 강사 박아무개씨(25)는 번역 일을 병행하는 N잡러다. 번역, 통역 등 업무 의뢰가 들어오면 퇴근 후 또는 주말에 시간을 내 추가 업무를 한다. 박씨는 “기존 업무 외에 커리어를 확장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번역, 통역 일이 들어오면 무조건 하려고 한다”며 “시간만 있다면 N잡을 하라고 주변 친구들에게 추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N잡러는 개인의 취미 또는 흥미를 살리는 데 초점을 맞춘다. 최근에는 특히 동영상, 유튜브 채널, 팟캐스트 등이 활성화되면서 광고와 조회 수로 부수입을 얻는 1인 방송 크리에이터가 직장인들 사이에서 인기다. 대표적인 콘텐츠는 ‘브이로그’(VLOG)다. 브이로그는 비디오(video)와 블로그(blog)의 합성어로, 자신의 일상을 동영상으로 기록하는 영상 콘텐츠다.

낮에는 디자이너로, 저녁에는 SNS 1인 마켓 운영과 유튜브 브이로거로 활동하는 직장인 차아무개씨(27)는 “퇴근 후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해 보고 싶고, 좋아했던 영상 제작을 취미로 시작했다”며 “취미 생활을 직업화하면서 부수입도 얻고 직장 스트레스도 풀 수 있어 꾸준히 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진다면 앞으로도 N잡을 이어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플랫폼 노동 확산은 일자리 창출에 효과가 크다. 다만 질 낮은 일자리를 양산한다는 문제도 뒤따른다. 플랫폼 노동자는 자영업자 혹은 특수고용자 신분으로 분리돼 고용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고, 수입도 일정하지 않다. 특수고용형태 노동자들을 위한 사회적·고용 안전망이 강화돼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플랫폼 N잡러, 부족한 고용 안정성은 한계

실제 올해 초 출범한 플랫폼 노동연대는 현행 노동법이 변화하는 사회상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플랫폼 노동연대는 출범 선언문을 통해 “플랫폼은 승자독식 경제로 독과점을 가져오며 불안정 노동 정보통제 등의 문제점을 초래한다”며 “플랫폼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보완하는 산업·노동·복지 정책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N잡러가 보편적인 유형의 일자리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온라인 공간이 넓어지면서 새로운 일자리가 생성되고 중견·중소기업까지 근로시간단축 제도가 시행되면 사람들이 다양한 일을 시도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덩달아 조성된다는 것이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이제는 다양한 직업군이 디지털, 온라인 공간에서 지식 공유가 가능한 시대니만큼 부담 없이 N잡을 시도하는 조건이 형성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 정부가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만들어 N잡이 가능하도록 기술, 역량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을 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내 노동법 구조에서 플랫폼 노동자들이 근로자로 보호받지 못하다 보니 업무 중 피해를 입거나 손해를 보더라도 법적 조치를 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플랫폼 근로자 증가는 세계적인 현상이고, 앞으로 N잡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증가할 것이다. 한국도 이에 맞춰 노동 법규를 조속히 마련해 시대적 흐름에 적응하는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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