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금요일마다 ‘파업’하는 독일 청소년들
  • 강성운 독일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5.09 17:00
  • 호수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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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위한 금요일’ 집회 현장…학교·학부모도 학생들 정치활동 지지

부활절 휴일이던 4월19일, 독일 쾰른 메세-도이츠역 앞에 5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갖가지 색의 깃발과 플래카드, 방송 촬영팀과 경찰들까지 전형적인 집회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눈에 띄는 점이 있었다. 참가자의 3분의 1가량이 청소년과 어린이라는 것.

이날은 ‘프라이데이즈 포 퓨처(Fridays for Future·미래를 위한 금요일)’ 집회일이었다. 이 시위는 지난해 8월, 15세의 그레타 툰베리가 2학기 개학일 등교를 거부하고 스웨덴 의회 앞에서 혼자 환경문제 해결을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툰베리의 ‘학생 파업’은 곧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캠페인은 석 달 만에 스웨덴 100여 개 도시로 확산됐다. 2019년 4월말 현재 전 세계 144개국 2700여 개 지역에서 ‘미래를 위한 금요일’ 집회가 열리고 있다. 독일에서만 지금까지 214개 지자체에서 시위가 진행됐다. 

독일도 의무교육이 있다. 무단결석 시 생활기록부에 기록이 남을 뿐 아니라 부모는 하루 최대 150유로(쾰른 기준)까지 벌금을 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쾰른에서는 방과 후 집회와 주말 집회도 열리고 있다. 하지만 여러 학교가 학생들의 ‘파업’을 묵인해 주고 있다. 직업학교 10학년 산드린 두크비츠는 “지금까지 쾰른에서 열린 19차례의 금요일 데모에 모두 참여했다”고 말했다. 시위를 통해 그는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것들을 배웠다. “예전엔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매주 2차례 운영진 모임에 참석해 사람들과 만나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4월19일 쾰른 노이마르크트 광장에서 열린 ‘미래를 위한 금요일’ 집회에서 해양 오염으로 죽어가는 물고기들을 표현한 플래시몹을 하고 있는 시위 참가자들 ⓒ 강성운 제공
4월19일 쾰른 노이마르크트 광장에서 열린 ‘미래를 위한 금요일’ 집회에서 해양 오염으로 죽어가는 물고기들을 표현한 플래시몹을 하고 있는 시위 참가자들 ⓒ 강성운 제공

“‘학생은 학교에나 가라’는 건 위선” 

대학생인 헬레나(22)와 리자(21) 자매는 언론의 표리부동을 비판했다. “언론에서는 이제껏 ‘청소년들은 이기적이다, 세상일에 관심이 없다’고 하다가 정작 학생들이 거리로 나오자 ‘학생은 학교에 가라’고 한다. 이건 위선이다”며 “청소년들에게 지지를 보내기 위해 나왔다”고 전했다.

이날 오전 11시20분경, 시위대는 라인강을 건너 쾰른 시내 중심지로 향했다. 딸과 딸의 친구를 응원하러 나온 란트 부부와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결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잔드라 란트는 웃으며 “나도 교사다. 한 달에 한 번만 집회에 가기로 약속했다. 딸의 생활기록부에 기록이 남겠지만 영광스러운 흔적”이라고 말했다. 14세인 딸이 시위 참석차 학교에 빠지는 날이면 부부는 “우리 아이가 정치활동을 해야 해서 오늘은 학교에 갈 수 없다”는 결석계를 써준다. 

란트 부부의 딸이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해 함바흐 숲 시위에 가족이 함께 참여하면서부터다. 안드레아스 란트는 “우리 가족은 함바흐 숲 근처에 산다. 이 숲은 석탄 채굴을 위해 파괴될 위기에 처했었다. 그래서 아이와 집회에 나갔는데, 숲이 보존되는 쪽으로 결정돼 아이가 성공의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혹시 아이에게 ‘미래를 위한 금요일’ 집회 참석을 권했는지 묻자 부부는 고개를 저었다. 잔드라는 “뉴스에서 보고 딸이 자기도 집회에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우리 아이들은 이미 어릴 때부터 뉴스를 보며 스스로 정치의식을 길렀다”고 했다.

쾰른시는 가톨릭 전통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다. 성(聖)금요일에는 생선요리를 먹는 풍습이 있다. 이날은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를 내거나 음주가무를 하는 것이 금지된다. 집회 주최 측은 이 같은 제한을 역이용했다. 이날 시위는 해양 오염을 주제로 삼았다. 참가자들은 구호를 외치는 대신 입에 X자로 테이프를 붙여, 바닷속 플라스틱 쓰레기로 죽어가면서도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물고기들을 기렸다. 영화 《니모를 찾아서》의 캐릭터 니모 모양 튜브를 어망에 쓰레기와 함께 담아 끌고 다니는 아이들도 보였다. 12시40분경, 쾰른 시내 중심가인 노이마르크트 광장에 도착한 어린이와 청소년, 보호자들은 호루라기 소리에 일제히 바닥에 드러누웠다. 말없이 죽어가는 물고기를 상징하는 플래시몹이었다.

집회 참가자의 3분의 1을 차지한 독일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더 이상 환경문제를 어른들에게 맡길 수 없다”고 외쳤다. ⓒ 강성운 제공
집회 참가자의 3분의 1을 차지한 독일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더 이상 환경문제를 어른들에게 맡길 수 없다”고 외쳤다. ⓒ 강성운 제공

“환경문제는 어른이 아닌 우리의 문제”

어린이들은 일상에서도 환경운동을 실천하고 있었다. 손야(12)는 올해 초 라디오에서 ‘미래를 위한 금요일’ 집회 소식을 듣고 3월부터 친구들과 집회에 나오기 시작했다. 손야는 “집회에 나가지 않을 때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예를 들어 일주일에 한 번 가방에 엄마가 만들어준 초록색 손수건을 달고 학교에 간다. 친구들이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면 ‘환경문제가 심각한데 어른들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지 않아 시위에 나간다’고 얘기해 준다. 또한 구글 대신 에코시아를 쓴다. 검색할 때마다 광고 수익이 환경단체에 기부된다. 성능도 구글과 별 차이가 없어 친구들에게 알려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친구인 마야(12)는 “학교 행사 때 모금을 통해 651유로를 모아 오로 베르데라는 NGO에 보냈다. 열대우림에 나무 651그루를 심었다는 증서도 받았다”고 자랑했다. 

손야와 마야, 가브리엘(10)은 현수막에 함께 그림을 그렸다. 높이 160여 m에 이르는 쾰른 대성당이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꼭대기만 남고 물에 잠긴 모습을 그렸다. 탑 꼭대기에는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서 겨우 살아남은 한 사람을 그리고, 옆에는 “전문가들에게 맡기라더니…”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무슨 뜻인지 물어보자 손야는 미간을 찌푸리며 “뉴스를 보는데 크리스티안 린드너(자유민주당 대표)가 어린이들에게 ‘환경문제는 전문가에게 맡기라’고 말해 너무 화가 났다”고 말했다. 지금처럼 어른들에게 맡겨두면 결국 환경재앙이 닥친다는 뜻을 담은 플래카드였다.

“어른들은 2050년 이후를 생각하지 못한다”는 툰베리의 비판은 집회에 나온 청소년들에게 큰 공감을 얻었다. 손야 역시 “의회에 있는 정치인들은 40~60대다. 환경 파괴 문제를 겪긴 하겠지만 우리만큼은 아니다. 우리는 앞으로 평생 환경 파괴 문제를 안고 살아야 한다. 이건 특히 우리에게 큰 문제”라며 환경운동에 참여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날은 우리나라 4·19혁명 59주기이기도 했다. 손야와 마야, 가브리엘에게 “한국에서도 59년 전 오늘 학생들이 민주화를 위해 거리로 뛰어나왔다. 이 시위는 한국이 민주국가가 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아이들과 어머니는 “환경문제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60년 뒤, 이 운동은 어떤 의미로 남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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