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133조원 투자’가 성공하기 위한 조건
  • 권상집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5.07 14: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상집 교수의 시사유감] 시스템 반도체 133조원 투자 선언한 삼성
유연하고 수평적인 조직문화 조성 우선돼야

삼성전자가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에 133조원을 투자하고 관련 분야 인력을 1만5000명 채용하겠다는 원대한 투자 및 인력 계획을 발표했다. 특히 이재용 부회장은 73조원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해 삼성의 시스템 반도체 경쟁력을 대폭 끌어올리겠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2017년 2분기 사상 처음으로 매출에서 인텔을 앞지르며 글로벌 반도체 분야 1위에 오르는 기적을 만들어낸 적 있다. 그러나 메모리 반도체가 하향 또는 부침을 겪은 후 시스템 반도체에서 탄탄한 역량을 지닌 인텔이 여전히 글로벌 반도체 산업 패권을 장악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은 크게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 반도체로 나뉜다.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1위에 오른 후 국내에서 편의상 메모리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비메모리 반도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통상적인 용어는 시스템 반도체가 타당하다. 세계 반도체 시장이 꾸준히 성장하며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 매출 및 이익도 상승세를 타고 있으나, 전체 반도체 산업의 70%는 시스템 반도체가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부동의 세계 반도체 제조회사 1위 인텔은 시스템 반도체인 CPU를 제작하며 기술적으로도 가장 탁월한 기업으로 군림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건물전경 ⓒ시사저널 고성준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건물전경 ⓒ시사저널 고성준

이를 의식한 듯, 삼성전자의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4월 말 화성사업장에서 진행된 ‘시스템 반도체 비전 선포식’에서 메모리에 이어 파운드리를 포함한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확실한 1위를 하겠다는 다짐을 선언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에 화답,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 분야 세계 1위를 달성해서 반도체 강국으로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시스템 반도체는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향후 4차 산업혁명 등으로 부각되고 있는 로봇, 바이오, 자율주행 자동차 등 전 분야에 활용될 수 있기에 삼성이 놓쳐서는 안 되는 핵심 분야이다. 

 

글로벌 기업은 왜 시스템 반도체에 강한가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에 강했던 이유는 반도체를 개발했을 당시 대한민국의 R&D 역량으로 가장 먼저 그리고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었던 분야가 메모리 디바이스였기 때문이다. 반도체는 다른 분야와 달리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거나 인재를 단기간에 반도체 분야로 집중한다고 해서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수많은 경험과 노하우, 시행착오가 축적되어야 하는 산업이기에 삼성전자는 상대적으로 접근이 용이하고 기술학습이 보다 빠른 메모리 반도체 분야를 토대로 선택과 집중을 실시, 그 결과 세계 1위에 오르는 성과를 거두었다. 

한국기계연구원이 올해 발간한 ‘기계산업 2019년 전망’ 보고서에 의하면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선언하며 막대한 자금과 인력을 투입하고 있지만 기술력에 있어 국내와 차이가 존재하는 것으로 관측됐다. 예를 들어, DRAM은 7년, NAND는 3~5년, Foundry는 4~5년 이상 기술 격차가 존재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고 해도 삼성의 반도체 역량을 중국이 단기간에 뒤집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설비, 재료산업 등 반도체 산업을 지탱해주는 연관 산업들의 경쟁력도 중국은 아직 미약한 부분이 많다. 그러나 삼성의 고민은 글로벌 선도 기업과의 격차에 있다.

먼저, 삼성이 과감하게 도전하겠다고 선언한 파운드리 분야는 설계 도면을 통해 제조 프로세스를 대신 진행해주는 사업을 의미한다. 파운드리 분야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독립된 조직을 신설해야 한다. 사업부 형태에서 내부 고객 관점에 치우쳐 물량을 공급하면 매출은 안정적으로 확보될 수 있으나 삼성이 지향하는 글로벌 파운드리 역량을 확보하는 건 불가능하다. 파운드리 조직을 독립시키고 좀 더 과감히 외부 기업들과 R&D 경쟁을 해서 제대로 된 파운드리 핵심역량을 확보할 수 있도록 선제적인 조직 변화 시도가 필요하다. 

파운드리 분야에서 대만의 국가대표 기업 TSMC는 이미 점유율 55%를 유지하고 있으며 해당 사업만으로도 삼성 못지않은 매출과 이익을 기록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의 ‘을’로 불리지만 실질적으로 삼성, 인텔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압도적인 설계자산과 풍부한 지적 노하우, 미세공정 축적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TSMC 연구진은 삼성과 달리 유연한 조직문화 내에서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집단 지성을 극대화해 미세공정 기술력을 개발, 확보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TSMC 연구진들은 통제와 감시를 가장 싫어한다.

반도체 최강자 인텔의 CPU를 넘어서기 위해 삼성전자가 지속적으로 반도체 칩 개발에 노력을 기울였으나 실패를 거듭한 사례는 유명하다. 기술 장벽이 높은 시스템 반도체에서 성과를 거둔 이유를 인텔의 최고경영자(CEO)는 ‘조직문화’가 유연하기에 다른 경쟁 기업들이 결코 인텔을 넘어설 수 없음을 자랑스럽게 강조했다. 최고경영자부터 말단 직원까지 그들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조직문화의 키워드는 ‘평등’이다. 자유로운 의견 교환과 더 나은 기술 개발을 위한 치열한 토론과 논의를 위해 ‘평등’보다 소중히 지켜야 할 가치는 없다고 인텔은 강조한다.

 

양적 투자 아닌 질적 문화 개선 필요 

인텔은 기술을 개발할 때 R&D 분야에 소속된 연구진들 모두가 기업의 방향과 다소 다르더라도 자신의 생각, 주관을 과감히 밝히고 직급, 직책과 상관없이 논쟁을 통해 기업이 나아가야 할 기술 방향과 제품을 최종 결정한다. 인텔이 시스템 반도체에서 수많은 경쟁자들의 도전을 꺾은 이유는 삼성이 지향하는 S급이나 천재급 인력에 대한 의존 또는 막대한 투자가 아닌 수평적이고 평등한 조직문화에 기인한다. 인텔은 지금도 조직 구성원에 대한 차별 또는 경영진에 대한 과도한 특혜가 조직의 창의력을 저해하는 요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삼성은 인텔보다 더 많은 자원을 R&D에 꾸준히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삼성이 인텔을 누르고 파운드리 분야에서 TSMC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양적 투자만으로는 곤란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시스템 반도체 비전과 전략 보고회’에서 밝혔듯이 시스템 반도체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협력과 상생, 사람과 기술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해야 한다. 선도 기업을 따라가는 모방에서 벗어나 창조적 혁신을 달성하려면 133조원 투자 이전에 유연하고 수평적인 조직문화 조성이 삼성 내부에 선행돼야 한다고 필자가 생각하는 이유이다.

삼성그룹이 133조원을 시스템 반도체에 투자한다는 건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삼성에 분식회계, 노조 와해, 임직원 미행과 사찰 등 어두운 그림자가 함께 존재하는 것 역시 사실이다. 예전에 필자가 인텔에 근무하는 R&D 연구원에게 “삼성에서 더 많은 돈을 주면 가겠느냐”고 질문한 적이 있다. 그의 대답은 1초의 망설임 없이 ‘No’였다. 삼성의 조직문화가 유연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유연하지 못한 삼성은 결코 글로벌 기업을 넘어설 수 없다. 초일류 기업의 전제 조건은 늘 구성원을 존중하고 신뢰하는 수평적인 조직문화에 있음을 이재용 부회장은 기억해야 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