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해남發 ‘농민수당’, 일선 지자체로 확산
  • 전남 = 정성환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19.05.08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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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군, 6월부터 전국 최초 60만원씩 농민수당 지급
“농업가치 보상을…” 농촌판 기본소득 실험 신호탄
전남도 참여 여부가 농민수당 확산 분수령 될 듯

전남·북 등 일선 지자체들이 농촌판 기본소득 실험의 신호탄을 쏘고 있다. 전남 해남발 ‘농민수당’이 일선 지자체로 확산되면서다. 해남군은 6월부터 모든 농가에 매년 60만원을 지급하는 ‘농민수당’ 제도를 시행한다. 해남군에서 시작된 농민수당은 전남지역 이웃 시·군으로 퍼지고 있다. 특히 최근 지자체가 사회보장제도 신설·변경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보건복지부 협의를 완료하면서 농민수당 추진에 가속도가 붙는 양상이다.

복지부 사회보장심의위원회의는 5월 3일 화순과 함평, 광양, 해남, 강진 등 5곳 시·군이 제기한 농민수당 도입 여부에 대한 협의신청에 대해 서류 미비 지적을 받은 광양시를 제외한 4곳에 대해 “추진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통보했다. 이는 농민수당 실험이 확산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형평성 논란과 재원마련 등 풀어야 할 과제도 많다. 

벼 수확 장면 ⓒ해남군
벼 수확 장면 ⓒ해남군

일선 시·군 제도 도입 활발 

기본소득은 재산이나 소득 수준, 노동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조건 없이 지급하는 수당을 뜻한다. 농민수당은 특정 세대나 계층, 지역에 지급하는 ‘부분 기본소득’에 해당하는 셈이다. 국내 기본소득의 도입에 물꼬를 튼 것은 2017년 쌀 농가에 연간 70만 원의 경영안정자금을 지급한 전남 강진군이다. 하지만 농민수당 대상이 7100가구에 그쳤다. 

현재 농민수당을 도입하려는 전남지역 지자체는 광양시와 화순·함평·해남·강진군 등 5개 시군이다. 나주시는 지난 3월 ‘농민 기본소득제 추진협의체’를 구성했다. 영광, 장성, 순천, 담양 등도 관심을 갖고 있다. 전북에서는 고창, 부안군도 도입을 검토 중이다. 해남군은 6월부터 군 전체 농가 1만4579가구에 농민수당을 지급한다. 연간 예산은 90억 원이다. ‘농민수당’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농가’에 일정액을 지급하는 사례는 전국에서 처음이다. 

군은 지역 농민들에게 연간 60만 원을 지역화폐인 해남사랑상품권으로 지급해 지역 상가 등에서 사용하게 함으로써 소상공인에게도 도움을 주도록 했다. 농민수당을 지역화폐로 제공하는 것은 지역 유통을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지자체의 복안이 깔려있다. 함평군도 해남군보다 두 달 뒤인 8월부터 농민수당을 지역화폐인 함평사랑상품권으로 지급할 예정이다. 화순군은 내년부터 지급할 계획이고, 광양시는 전남도가 추진하는 전남형 농·어민 공익수당’기준에 맞춰 도입한다는 입장이다. 

강진군과 진도군은 이미 농민수당과 유사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강진군의 경우 쌀 농가에만 지급했던 경영안정자금을 지난해 전체 농가로 확대했다. 지급액은 연간 70만원이다. 35만원은 현금, 나머지 35만원은 지역화폐로 지급했다. 진도군은 농민수당의 원조 격인 ‘어르신 소농 직불금’을 3년째 지급해 호응을 얻고 있다. 1ha 이하 농경지를 경작하고 있는 65세 이상 농업인에게 최대 40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 

전남도와 전북도 등 광역 지자체들도 농민 기본소득제도 논의가 활발하다. 이번 복지부 결정으로 전남도가 협의 요청한 ‘(가칭)전남형 농·어민 공익수당’ 추진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도는 내년 1월 1일부터 농민수당을 지급하기 위해 오는 7월 말께 관련 용역이 나오는 대로 농민단체들과도 협의를 거쳐 ‘전남형 농·어민 공익수당제’를 내년에 도입할 방침이다. 이는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김영록 지사가 공약한 ‘전남형 기본소득제’의 일환이다. 전북도도 최근 내년도 ‘농민 공익수당’ 도입을 위해 설명회를 개최하고, 하반기 조례제정과 예산확보에 나설 계획이다. 

ⓒ해남군의회
ⓒ해남군의회

지급기준 제각각 형평성 논란…통일기준 마련 팔걷은 전남도    

하지만 농민수당 도입을 두고 단순히 자치단체의 포퓰리즘 정책이 아니냐는 논란을 떠나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지자체별로 지급 대상과 액수, 방식이 모두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전남의 경우 현재 농민수당 규모가 시군별로 연간 60만~120만원으로 들쭉날쭉하다. 화순·함평은 연 120만 원, 광양·해남·강진은 연 60만원으로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지급 대상을 놓고도 지자체와 농민단체가 맞서고 있다. 전남도와 일부 시군은 농가 경영체별로 농민수당을 지급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농민단체는 개별농민이 지급대상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농업 경영체에 등록된 농가 중심으로 지원하면 여성 농민과 농업경영체에 등록되지 않는 소농, 청년, 고령 농민들은 사회보장 정책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급 범위도 다르다. 화순·광양·해남·강진 등은 지급대상을 농민으로 한정했다. 하지만 함평은 농민과 어민을 포괄하고 있다. 

이처럼 지역마다 농민이 받는 액수가 달라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자 전남도와 시·군 지자체들은 지급기준을 통일하기로 했다. 농민수당을 시행하는 시·군의 재정 일부를 전남도가 부담하고 농민에게 지급되는 수당의 액수를 시·군 차이 없이 맞추는 방식이다. 전남도 관계자는 “헌법과 법령에 따라 농·어업을 보호하고 진작하는 것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이기 때문에 농어민수당을 도입하자는 것인데, 시·군별로 지급 기준이 다르면 상대적 박탈감을 야기하는 등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사업 추진으로 전남지역 농민 간 논란은 어느 정도 줄겠지만, 지자체별 형평성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농업이 아닌 임업이나 수산업, 축산업 종사자들의 불만이 제기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왜 농민에게만 주고 어민이나 임업, 축산업 종사자에게는 안주냐”는 불만도 있다. 농업에만 공익적 가치가 있고 다른 1차 산업 업종에는 없느냐는 이의 제기로 기본소득개념의 확산을 요구하는 목소리다. 

순천시 농민수당 도입 토론회 ⓒ순천시
순천시 농민수당 실현을 위한 토론회 ⓒ순천시

대상·재원마련 논란…재정난 우려도 

농민수당 도입이 가뜩이나 열악한 지자체 재정에 과도한 부담을 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전남도의회 우승희 의원은 “1인당 10만원씩 농민수당만 해도 연간 1800억 원의 예산이 필요한데 이를 감당할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지 의문이다”고 지적했다. 전남지역 농가는 지난해 기준 약 14만6481가구이며 농업경영체 수는 21만7290곳에 달한다. 전남지역 모든 농가에 월 10만원을 지급한다 해도 1758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농업경영체를 지원 기준으로 정하면 필요한 예산은 2607억 원에 달한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전체 농가에 농민수당을 지급하기로 한 해남군의 경우 전체 농가 1만4500여 가구에 달해 연 60만 원을 지급할 경우 해마다 예산 90억 원이 들어간다. 이는 군 전체 예산(7800억 원)의 1%를 조금 넘는 수준이지만 순수 군비로만 환산하면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함평군의 경우 대상에 축산업과 임업에 종사하는 농가도 포함돼 전체 가구의 절반에 가까운 8000여 명이 수당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농어가수당에 필요한 예산은 연간 96억 원, 순수 군비로만 채워야하는데 함평군의 자체수입은 연간 200억 원을 약간 웃도는 수준이다. 이에 따라 수입의 절반가량을 농어가수당에 써야하는 형편이다. 

결국 농민수당 도입은 예산 뒷받침이 되느냐가 최대 관건이다. 이와 맞물려 전남도의 참여 여부가 확산의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해남의 경우 농민수당을 위해 군비 100%, 90억원을 들어야 하지만, 전남도가 나서면 최대 50%는 분담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남도가 참여하면 시·군으로 확산 속도가 더욱 빨라질 가능성이 높다. 

일선 지자체의 한 관계자는 “재정자립도나 재정자주도가 낮고 인구감소와 노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농촌지역 자치단체 현실을 감안할 때 농민수당에 대한 국도비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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