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강원 산불 한 달…“이재민 지원법이나 패스트트랙 태워 달라”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19.05.10 17:00
  • 호수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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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속초 현장|“자식에게 미안해서 새집 어떻게 짓나. 움막집에 살다 가야지…”

생선 썩은 내가 코를 후벼 팔 만큼 진동했다. 흩날리는 쇳가루 사이로 초파리가 날아다녔다. 입 한번 쉽사리 열기 힘들었다. 눈앞의 거대한 건물은 성한 부분을 조금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타버렸다. 원래 뭐 하는 곳이었는지 전혀 가늠되지 않았다. 

“대형 냉동고였죠. 저기는 세척장이었고요. 그 뒤는 생선 해체하는 작업실이었어요.” 지난 4월4일 늦은 밤, 강원도 고성군의 1200평짜리 수산물 가공공장은 산불로 인해 잿더미가 됐다. 연매출 30억원을 올리는 곳이었다. 공장을 운영하는 곽철신 한일건업 대표(54)는 이번 강원 산불에서 가장 피해가 큰 주민으로 알려졌다. 그가 신고한 피해 금액은 총 120억원. 하지만 곽 대표는 보상금을 전혀 받지 못했다. 주택이 아닌 사업장은 국가의 재난복구 지원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화마가 강원도를 삼킨 지 한 달이 지났다. 그러나 책임 소재와 보상안을 둘러싼 갈등은 여전히 주민들의 속을 태우고 있다. 시사저널이 5월7~8일 만난 주민들 대다수는 한국전력을 향해 울분을 토했다. 한전이 관리하는 전신주가 산불의 원인으로 지목돼서다. 7일 만난 곽 대표는 “이제 남은 건 궐기뿐”이라고 했다. 다음 날 그는 한전 속초지사 앞에서 ‘결사투쟁’이라 적힌 빨간색 머리띠를 두르고 규탄 집회에 참가했다. 

5월7일 강원 고성군 원암리 마을 이재민 김동섭씨(66)가 전파된 본인의 집 2층을 둘러보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5월7일 강원 고성군 원암리 마을 이재민 김동섭씨(66)가 전파된 본인의 집 2층을 둘러보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주민의 찢어지는 고통, 한전은 아는가”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마을은 120가구 중 절반 이상이 불에 탔다. 문제의 한전 전신주는 이 마을에서 약 2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한 달째 마을회관에서 숙식 중인 김영준씨(74)는 “30년 넘게 산 집이 홀라당 타버렸는데 한전은 한 번 와보지도 않았다”며 삿대질을 했다. 또 다른 이재민 정채봉씨(86)는 “우리같이 힘없는 노인들은 남한테 싫은 소리 한번 안 하고 살아왔다”며 “한전에서 도와줬다면 이렇게까지 (비판을) 했겠나”라고 했다. 이재민 김동섭씨(66)는 기자에게 먼저 다가와 하소연했다. 그는 “재를 많이 삼켜 기관지가 안 좋다”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 “대기업 다니면서 1997년 봄에 융자 끼고 집을 지었습니다. 그해 가을에 IMF 터졌죠? 다행히 회사에선 안 잘렸지만 빚 갚으며 근근이 살았습니다. 그렇게 20년 동안 빚 겨우 다 갚고 작년에 기념으로 명패 달았어요. 지금 이게 그 명팹니다.”

김씨가 가리킨 명패는 글씨가 잘 안 보일 만큼 타버렸다.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라고 그가 말했다. 김씨는 마을 뒤편으로 기자를 안내했다. 족히 20m는 넘어 보이는 소나무가 불에 타 쓰러져 있었다. 밑동엔 커다란 상처가 파여 있었다. 김씨는 “일제 때 일본이 송진을 채취한 흔적”이라며 “100년 넘은 역사를 간직한 문화유산이 소실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전이 책임져야 한다고 보나’란 질문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장현 고성산불 비대위원장은 “한전과 협의에 이르지 못하면 우리의 선택은 상경투쟁과 민사소송밖에 없다”며 “이달(5월) 중엔 협의를 시작하려 한다”고 했다. 노 위원장은 운영하던 갈빗집과 경양식 레스토랑을 모두 화재로 잃었다. 주택마저 파손된 상황이다. 마을을 나와 이동하는 동안 ‘살인자 한전사장 즉각 구속하라’ ‘주민의 찢어지는 고통을 한전은 아는가’ 등 한전을 비판하는 플래카드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주민들의 분노는 한전을 넘어 정부에도 미쳤다. 정부는 주택이 전파된 주민에게 최대 6300만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 가운데 4월30일 1차로 지급된 3000만원은 국민 성금으로 조성됐다. 나머지 3300만원은 정부(1300만원)와 지자체(2000만원)가 나눠 낸다. 원암리 이재민 전상인씨(82)는 “성금 뺀 정부 지원금으론 헛간 하나 못 짓는다”면서 “내가 글은 몰라도 정부의 꼼수는 다 안다”고 했다. 격정을 토하는 그의 목소리는 수차례 갈라졌다. 속초시 장천리는 비교적 한옥이 많은 마을이었다고 한다. 최영길씨(77)는 “이 동네에서 내가 살던 한옥이 제일 좋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직접 증명할 길이 없다. 고성에서 퍼진 불길이 주로 목재 위주의 한옥을 집어삼켰기 때문이다. 최씨는 “한전 책임이 크다고 하지만 결국 한전도 정부 소유 아닌가. 1차 책임은 정부가 져야 한다”고 했다. 

5월8일 강원 속초시 장사동에서 최영길씨(77)가 전소돼 철거된 본인의 집터를 배경으로 서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5월8일 강원 속초시 장사동에서 최영길씨(77)가 전소돼 철거된 본인의 집터를 배경으로 서 있다.

“정부 지원금으론 헛간도 못 지어”

다만 법적인 측면에서 정부 지원금이 잘못됐다고 비판할 근거는 없다. 최문순 강원지사가 4월8일 기자회견에서 “주택복구비의 70%를 국고로 지원해 달라”고 말했지만, 법률에 기초한 요구는 아니다. 국토교통부 고시 ‘자연재난 복구비용 산정기준’은 전파 주택의 복구비용 단가를 4200만원으로 정해 놓았다. 여기서 약 30%인 1300만원이 정부가 현금으로 주는 금액이다. 행정안전부 복구지원과 관계자는 “법정 주택복구비는 실손보상 개념이 아니다”며 “주택이 10억짜리든 1억짜리든 집을 잃었을 때 느끼는 상실감은 같기 때문에 동일하게 (복구비 단가가)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현금 지급액을 뺀 나머지 복구비는 융자와 자부담으로 해결해야 한다. 장천리 마을의 어두훈 통장은 “이재민들은 연세가 많으신 고령층이 대다수”라며 “장기융자를 받아 집을 구했는데 빚 다 못 갚고 돌아가시면, 남은 빚은 결국 자식들이 떠안아야 한다”고 했다. 최영길씨는 “자식에게 미안해서 새집을 어떻게 짓나. 움막집에 살다 가야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노 위원장은 국회 책임론도 꺼내들었다. 국회가 지원금 확대를 입법으로 도와줄 수도 있지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관련 갈등에 밀려났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이양수 자유한국당 의원은 5월7일 ‘피해액의 70% 지원’ ‘소상공인 피해복구 지원’ 등의 내용을 담은 특별법을 발의했다. 노 위원장은 “민생과 무관한 법안을 두고 패스트트랙에 태우니 마니 싸우지 말고, 제발 이재민 지원법이나 태워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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