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한 에너지 전환인가”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5.14 12:00
  • 호수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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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거창한 구호에서 벗어나 전기요금 인상 고려한 접근 필요

지난 2월 한국전력공사는 ‘2019년 재무위기 비상경영 추진계획안’을 통해 올해 영업적자 2조4000억원에 당기순손실 1조900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추산했다. 한전은 2015년 4조4254억원, 2016년 4조881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던 회사다. 대체 무슨 일일까. 원자력발전 비중이 줄고 LNG 및 재생에너지 비중이 늘어난 것이 주요 배경이라는 분석이다. 발전원가가 이전보다 상승한 만큼 전기요금 인상이 당연하지만 이는 용납되지 않고 있다. 반면 누진제 완화로 인한 매출 감소, 태양광을 비롯한 재생에너지 투자 증가로 인해 한전의 적자는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6월19일 부산 기장군에 있는 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열린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탈핵정책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6월19일 부산 기장군에 있는 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열린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탈핵정책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갈등과 혼란에 빠진 에너지 전환 정책

문재인 정부 들어 많은 것이 변했지만 가장 큰 변화를 겪고 있는 곳이 ‘에너지’ 분야다. 문 대통령은 공약으로 ‘원자력 제로’를 목표로 신규 원전 건설 백지화, 노후 원전 수명연장 중단, 월성 1호기 폐쇄,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 등을 내세웠다. 이를 위해 원전 비중을 2030년까지 30%에서 18%로 감소시키고, LNG를 20%에서 37%로, 신재생에너지는 5%에서 20%로 끌어올릴 것임을 밝혔다. 집권 첫해 문 대통령은 ‘3호 업무지시’를 통해 노후 석탄화력발전소의 일시 가동중단을 지시했으며, 2017년 6월19일 고리원자력 1호기 영구정지 기념식에서 ‘탈원전 시대’의 시작을 선포했다. 12월에는 원전 6기 신규 건설 백지화, 노후 10기 수명연장 중단, 노후 석탄발전소 10기 폐지 및 2030년까지 신재생 비중 20% 확대를 골자로 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확정했다. 독일을 모델로 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에너지 전환은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그렇지만 2년이 지난 2019년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한전의 대규모 적자를 비롯해 원전 퇴출을 둘러싼 관련 업계의 반발, 태양광발전을 둘러싼 자연환경 훼손 논란, ESS(에너지저장시스템) 화재 원인 규명 실패 등 갈등과 혼란 상황에 놓여 있다. 

기후변화 및 대기오염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석탄화력발전소의 비중 감소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거의 이견이 없다.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하는 대기오염물질의 경우 환경시설투자를 통해 상당 부분 감소시킬 수 있으나, 석탄 연소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경우 현실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없으므로 석탄화력발전 비중 축소는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원전의 경우 대기오염물질 및 온실가스 발생은 없지만 발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용 후 핵연료의 저장 및 관리를 위한 방안이 마련돼 있지 않다. 비중 확대가 곤란한 상황임을 감안할 때 석탄화력 및 원자력 비중 축소는 일면 타당한 면이 있다. 

문제는 이렇게 비중이 감소하는 석탄화력 및 원자력발전이 전력생산에 있어 일정 부분 기저부하를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발생했다. 발전원가가 저렴한 석탄화력과 원자력은 수요변화에 맞춰 출력 조절이 어렵기 때문에 기본적인 전력 수요를 감당하는 기저부하를 담당하고, 수요증가에 따른 변화는 보다 발전원가가 비싼 LNG, 수력, 재생에너지 등이 담당하는 것이 전력수급의 기본이다. 이런 기저부하를 LNG로 대체하려면 당연히 전력요금 인상을 수반해야 하지만 이를 용납하지 않는 데서 한전의 대규모 적자를 비롯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오염물질 및 온실가스 발생이 없지만 오랫동안 비싼 가격으로 인해 경쟁력이 없는 것으로 간주됐다. 최근 급속한 기술발전으로 인해 재생에너지의 발전원가는 급속히 감소함에 따라 석탄화력을 비롯한 화석에너지를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는 지속적인 전력 생산이 불가능한 ‘간헐성’의 문제를 안고 있다. 전기라는 존재는 저장이 매우 어렵다. 수요가 없는 심야에 풍력발전을 통해 생산하는 전력은 의미가 없다. 한낮에 태양광을 통해 수요를 초과해 발생하는 전력은 송전망을 붕괴시켜 블랙아웃을 가져올 수 있다. 리튬이온 배터리를 이용해 대규모 전력을 저장할 수 있는 ESS는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상쇄시킴으로써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간주돼 정부는 ESS 보급을 위한 각종 보조금 및 지원책을 강화했다. 그러나 2018년부터 연이어 발생한 ESS 화재는 6개월 이상의 조사에도 불구하고 원인 규명에 실패했다. 여기에 더해 투기적 수요가 결합된 무분별한 태양광발전은 산림훼손으로 인해 사회적 반발이 가중되고 있다. 


정책 변화 위한 재원 마련 논의 ‘지지부진’

에너지 전환은 화석연료에 의존한 전력 생산체계를 태양광 및 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단순한 것이 아니다. 에너지 전환은 전력 생산뿐만 아니라 소비에 있어서도 가장 효율적인 측면이 고려돼야 한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발전원가가 전력요금에 반영되고, 소비자는 이를 고려해 최적화된 소비패턴을 만들어감으로써 비용절감, 온실가스 및 대기오염물질 감축이 이뤄져 전력생산 및 소비체계 전반을 변화시키는 것이 진정한 에너지 전환이다. 이런 체계 구축을 위해서는 수많은 전력 생산자와 소비자 관련 데이터 수집, 가동, 활용이 필수적이다. 이미 세계 주요국의 전력회사는 전통적인 전력 판매를 통한 이익창출에서 벗어나고 있다. 전력 데이터를 중심으로 한 데이터 수집·가공 기업으로의 전환을 속속 진행 중이다. 이를 위해서는 막대한 투자와 비용이 소요될 수밖에 없는데, 현재 한전은 대규모 적자로 인해 이런 투자를 제대로 집행하지 못하고 있다. 지능형 전력망, 스마트 그리드의 핵심 요소라 할 수 있는 스마트계량기(AMI)의 보급이 계속 지연되고 있는 것이 대표 사례다. 명분을 위해 미래를 위한 기반을 위축시키고 있는 것이다.

에너지 전환은 단순히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중앙집권적인 시스템에서 탈피해 다양한 에너지 생산 주체의 역할을 인정하고, 에너지 수요의 분산을 통해 전력생산 및 관리·운영비용을 절감함으로써 더 효율적이고 더 깨끗한 에너지 체계로 바꿔 나가는 것이 에너지 전환이다. 이를 위해서는 더 높은 건축물을 포함한 산업시설 등의 에너지 효율 향상, 송·배전망 재구축, 빅데이터에 기반한 전력이용체계 구축 등이 필요하다. 

‘탈원전’ ‘재생에너지 ○○%’와 같은 거창한 구호에서 탈피해 보다 거시적인 차원의 전력 및 에너지 체계 확립, 그리고 이와 연관된 산업 생태계의 변화까지 아우르는 접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이를 위한 재원 마련이 시급하다. 결국 전기요금을 포함한 에너지 가격체계의 전반적인 조정이 필요한 것이다. 과연 우리는 이러한 것을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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