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소리 “뭐든 적당히 하는 성격은 아니죠”
  • 하은정 우먼센스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5.11 12:00
  • 호수 154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영화 《배심원들》 재판장 역 맡은 문소리

문소리가 민낯으로 기자와 마주했다. 예쁘다. 게다가 털털한 모습이 부담스럽지 않고 적당하다. 인간적인 매력이 느껴진다.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표현하면서도 진심이 묻어나는 언변 때문에 그녀와의 인터뷰는 늘 특별하다. 그녀가 신작 《배심원들》을 들고 컴백했다. 2008년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의 실제 사건을 재구성한 영화로, 생애 처음 누군가의 죄를 심판해야 하는 배심원들과 사상 처음으로 일반인들과 재판을 함께하는 재판부까지, 보통 사람들의 가장 특별한 재판 이야기를 그린다. 극 중 문소리는 첫 국민참여재판의 재판장 ‘김준겸’으로 분했다. 18년간 내리 형사부를 전담했을 만큼 강단과 실력 있는 판사다. 

ⓒ 쇼박스
ⓒ 쇼박스

완성된 영화를 본 주연 배우의 소감은.

“개인적인 감상보다는 관객들에게 어떻게 비춰질까 걱정이 돼요. 늘 마음은 그래요. 우선 배우들은 영화를 보고 만족해했어요. 우리가 생각했던 방향대로 결과물이 나왔으니까요. 이번 영화는 조금 특별했어요. 튀는 배우가 없었고, 서로 세워주고 만들어주는 연기를 했어요. 많은 걸 얻어간 영화예요.” 

판사 역할이라 그런지 말투가 독특하다. 롤모델이 있었나.

“촬영에 들어가기 전 실제 판사를 만나 조언을 들었고, 재판을 방청하기도 했어요. 비법조인은 판사들 말의 무게를 비슷하게 느끼는데, 실제 재판을 방청해 보니 판결문 문체도, 판사들의 말투도 저마다 스타일이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제 스타일대로 소화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실제 판사들이 응원을 많이 해 주셨어요. 저보다 나이가 어린 판사들이 많았는데 시나리오를 모니터해 주며 ‘문 부장님’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카톡으로도 ‘부장님’이라고 호칭해 물어봤더니 ‘실제로 법원에 계신 부장님 같다’며 용기를 주더군요.” 

연기를 하면서 가장 우려했던 점은.

“‘말’이라는 게 감정이 담기면 의미가 잘 통하잖아요. 그런데 법률용어가 섞인 판결문은 마음속에 그다지 와 닿을 것 같지 않았어요.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제가 판결문을 읽는 장면인데, 그 장면이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내내 걱정스러웠어요. 양수리 세트장에서 그 장면을 촬영했는데, 촬영 전에 한 시간 정도 강가를 걸었어요. 그때까지도 명확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거든요.”

잠을 못 잤다고도 들었다. 

“계속 고민이 됐죠. 관객들에게 마음을 움직이는 말로 다가갈 수 있을까, 하고요. 촬영 하루 전날 세트장 근처에 미리 가 있었는데 잠이 안 오는 거예요. 조한철 선배와 1층 커피숍에서 만났어요. 둘이 맥주 한 잔 두고 앉았는데 선배가 ‘박근혜 탄핵’ 주문을 읽은 이정미 판사의 판결 동영상을 틀어 놓고 중얼거리는 거예요. 연기에 반영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 선배의 그 마음이 느껴졌어요. 응원도 위로도 받았던 현장이었어요.”

법복이 꽤 잘 어울렸다. 

“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제가 대법관이 될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때마다 저는 웃으면서 착한 딸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속으로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라고 말하곤 했죠. 지금도 TV에서 방영하는 무서운 사건을 못 봐요. 화면으로 피를 보는 것도 무섭고 공포영화도 못 봐요. 그래서 어렸을 때 판사나 의사보다는 선생님이 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죠.” 

함께 극을 이끄는 후배 배우 박형식에게는 어떤 조언을 했나.

“첫 상업영화라 초반에는 긴장을 한 것 같았어요. 본인이 가진 재능을 마음껏 펼쳐놓지 못했죠. 제게 SOS를 치더라고요. 연기에 대한 조언보다는 제 첫 영화 얘기를 들려주며 다독였어요. 연기에 대한 얘기를 하면 조마조마한 마음이 더 흔들릴 수도 있거든요. 그러다가 차츰 마음을 열고 다른 배우들과 하나가 돼 움직이더라고요. 사실 형식이는 드라마에서 주인공도 많이 했지만 아이돌 출신이잖아요. 그 부담감을 떨치지 못할까 걱정이 된 것도 사실인데, 어느 순간 확 변하는 모습을 보고 감탄했어요. 빛이 났다고 해야 할까요. 현장에서 좋은 태도를 보여줘서 참 고마웠어요.”

감독 문소리의 차기작은 언제 볼 수 있나.

“계획된 바는 없어요.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몰라도 직업인으로서 감독이 되고 싶은 마음은 크지 않아요. 배우로 충분해요. 감독은 집안에 한 명만 있으면 되지 않나요(웃음)?”

문소리는 지난 2006년 장준환 감독과 결혼해 2011년 딸 연두양을 품에 안았다. 두 사람은 영화사 이름을 ‘연두’라고 지으며 남다른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어떤 아내인가.

“처음 결혼했을 때 몇몇 분들이 준환씨가 저에게 잡혀 살지 않을까 걱정하듯 이야기했는데 저희와 시간을 보낸 분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재미있어 해요. 설경구 선배와 개인적으로 친해 다 같이 술을 마시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남편과 저는 존대를 하는 반면 경구 오빠와는 말을 편하게 해요. 제가 경구 오빠에게 ‘번데기 시켜?’ 하다가도 남편한테는 ‘번데기 괜찮으시죠?’ 물어봐요. 그러면 경구 오빠가 ‘누가 보면 너랑 나랑 부부인 줄 알겠다’며 웃어요. 주변에서는 그런 저희 부부의 모습을 보고 재미있어 하더라고요.”

존대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결혼 직전까지 주변 사람들에게 교제 사실을 비밀로 하다 보니 자연스레 영화 하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소리씨’ ‘감독님’이라고 호칭했고, 그게 습관이 됐어요. 한데 지금은 장점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요.”

일상에서나 일을 할 때 변함없이 완벽주의자인가.

“‘적당히’는 안 되는 성격이에요. 얼마 전에 부모님이 열흘간 여행을 가셨어요. 일도 하면서 아이를 케어하려니까 체력적으로 힘들더군요. 간단히 먹여서 학교에 보내면 될 텐데 그게 안 돼요. 결국 나물을 무치고 있는 제 모습을 보고 남편이 걱정을 하더라고요. 이런 성향은 타고나는 거 같아요. 적당하고 산뜻하게 ‘스톱’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있는 반면, 엔진이 한번 발동되면 끝에 뭐가 있는지 가봐야 하는 사람도 있죠(웃음).”  

데뷔 19년이다. 매너리즘에 빠진 적은 없나.

“배우라는 직업 특성상 매너리즘에 빠지긴 어려운 것 같아요. 연기 햇수가 늘어나고, 작품 편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안정적이진 않거든요. 새로운 작품, 새로운 감독, 새로운 캐릭터를 만날 때마다 처음 마주하는 상황이 되니까요. 어느덧 데뷔 19년이 됐네요. 배우로서 책임감이 느껴지는 나이죠. 배우로서 지향점보다는 동료들과 함께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