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석·강호동·이경규가 길거리로 나간 까닭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5.12 10:00
  • 호수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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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트렌드, 연예인보다 보통 사람들에 주목

강호동, 이경규에 이어 유재석도 길거리에 나섰다. 한때는 연예인팀을 이끌던 리더였으나, 지금은 길거리에서 만나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청자 역할이다. 무엇이 이런 예능 트렌드의 변화를 만들었을까.

물론 MBC 《무한도전》 시절에도, 또 현재 방영되고 있는 SBS 《런닝맨》에서도 유재석은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특유의 친화력, 배려로 그들의 이야기를 끌어내 왔다. 하지만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이들 프로그램들과는 확연히 다른 지점들이 있다. 《무한도전》과 《런닝맨》에서 메인은 함께 출연하는 동료 연예인들이었다. 그들이 서로 으르렁대고 합을 맞춰 나가는 캐릭터 플레이가 주안점이었고, 유재석은 그 누구보다 그들의 이야기를 유연하게 끌어내고 부각시키는 일인자였다. 그가 스타 MC가 될 수 있었던 이유다. 하지만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다르다. 여기서도 유재석은 조세호와 함께 콤비로 거리에 나서지만, 조세호보다 더 신경 쓰고 이야기를 끌어내는 인물은 길거리에서 만난 보통 사람들이다. 

tvN의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

유재석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 이야기에 재미와 의미를 부여해 그 화자를 순식간에 주목시키는 데 타고난 재능을 보여준다. 추운 겨울을 휴지기로 갖고 봄을 맞아 다시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성북동 어느 길거리에서 만난 할머니들을 통해 유재석의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다. tvN이라는 채널이 뭔지도 모르고 《유 퀴즈 온 더 블럭》을 ‘연속극’이냐고 묻는 할머니들과 나누는 대화는 빵빵 터지는 웃음을 만들어낸다. “테레비에 나올 인물들이 아니잖아”라며 피하려던 할머니들이 막상 상품으로 닭다리 쿠션과 생선 슬리퍼를 받고는 “이건 선물이라고 하지도 말라”고 귀엽게 역정을 내시는 모습은 웃음도 웃음이거니와 어딘가 따뜻한 사람 냄새가 묻어난다. 

이처럼 길거리로 나선 유재석은 그곳에 넘쳐나는 사람들 모두가 자세히 들여다보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저마다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라는 걸 보여준다. 이 프로그램이 굳이 ‘사람 여행’이라고 스스로를 지칭한 건 이런 방향성 때문이다. 이제 유재석은 자신을 중심으로 세워진 연예인팀에서 벗어나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거기서 낮은 자세로 사람들의 평범해 보이지만 사실은 특별한 이야기를 듣는다. 새로운 도전이다. 

JTBC 《한끼줍쇼》의 한 장면 ⓒ JTBC

강호동과 이경규는 JTBC 《한끼줍쇼》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길거리로 나선 바 있다. 숟가락 하나 달랑 들고 아무 집이나 문을 두드려 “한 끼 같이 할 수 있을까요”하고 묻는 이 프로그램의 방식은 예능 베테랑 강호동, 이경규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지금이야 프로그램이 알려져 여건만 맞으면 문을 열어주고, 한 끼를 함께 하려는 이들이 많아졌지만 처음에는 문을 열어주지도 않았다. 심지어 강호동, 이경규의  이름조차 모른다고 해 이들에게 굴욕을 안기는 사례도 많았다. 하지만 걷는 자에게 길은 생긴다는 말처럼 이들은 매주 어느 동네의 골목길을 걷는 것으로 자신들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한때 스타 MC로 불리며 모든 방송사의 러브콜을 받았던 유재석, 강호동, 이경규가 길거리로 나간 건 꽤 상징적인 사건이다. 그것은 특권을 가진 존재들로 여겨졌던 연예인들의 시대가 점점 저물고 있다는 뜻이고, 그 자리에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보통 사람들이 들어서고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된 건 미디어 시장의 변화가 가장 큰 이유로 지목된다. 인터넷을 거쳐 모바일로 미디어의 헤게모니가 바뀌게 되면서 이제 영상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희미해지게 됐다. 알다시피 모바일은 모든 영상의 소비자들을 생산자로 바꿔놓은 미디어다. 우린 어디서나 사진과 영상을 찍고 심지어 간편하게 편집해 인터넷에 올린다. 그리고 그런 짧은 영상들을 기존 방송 프로그램보다 더 많이 소비하는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들이 등장했다. 그들에게 영상은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두가 가질 수 있는 어떤 것이다. 한때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라고 노래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의 아이들은 직접 유튜버가 되고 싶어 하고 실제로 어린 나이에 영상을 찍어 올리기도 한다. 

그러니 방송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이 나와 저들끼리 사는 이야기를 떠들고 놀고 하는 모습들을 지금의 시청자들은 봐야 할 이유가 많지 않다. 한때는 동경하고 선망하던 연예인이었지만 지금은 나와 다를 바 없는 그들은 그래서 이제 거기서 나와야 할 이유를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유재석과 강호동, 이경규가 길거리에 나온 뜻은 그래서 그 보통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세우기 위함이다. 그것이 그들의 새로운 자기 존재 증명이기도 하고 말이다.


연예인들, 본분에 충실하거나 새로운 역할 찾아야

달라진 방송환경 속에서 연예인들은 이제 모두 검증대에 올라서게 됐다. 물론 배우나 가수들 그리고 예능인들은 저마다의 본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즉 배우는 연기를 하고 가수는 노래하며 예능인들은 즐거움을 주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들은 자기 역할에만 머물지 않고 이른바 ‘멀티 플레이’를 하기 시작했다. 배우와 가수가 예능에 나오고, 가수가 연기를 하며, 예능인들은 연기나 노래에 도전하기도 했다. 이른바 ‘연기돌’에 대한 논란이 자주 나왔던 것처럼. 물론 과거에도 이런 타 영역에 도전한 이들에 대한 검증은 늘 있어 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검증이 더 엄밀해지고 있다. 영역을 넘어서는 일에 대한 허용은 커졌지만 잣대는 더 차가워진 것이다.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고 있는 연예인과 그 가족의 관찰 카메라도 점점 호불호가 나뉘고 있는 건, 그것이 주는 공감과 동시에 괴리감이 점점 눈에 띄고 있어서다. 연예인 가족이 처음 등장했을 때 그것은 ‘가족으로서의 연예인’이라는 공감 지점을 갖고 있었지만 차츰 반복되면서 그렇게 쉽게 방송에 나오는 것 자체가 ‘특혜’처럼 느껴질 정도로 ‘상대적 박탈감’을 만들어냈던 것도 이런 대중들이 요구하는 연예인의 역할 변화를 읽어낼 수 있는 대목이다. 이것이 저들의 세계인 스튜디오에 모여 저들끼리 웃고 떠들기보다는 우리들의 세계인 길거리로 한때 스타 MC로 불렸던 이들이 걸어 나온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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