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열풍] 왜 ‘마블민국’인가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9.05.13 08:00
  • 호수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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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의 성공과 마블 열풍이 가능했던 이유는?
M·A·R·V·E·L 키워드 분석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이하 《엔드게임》)의 흥행은 예상돼 있었지만, 예측 이상을 뛰어넘었다. 한국은 역시 마블의 ‘빅 마켓’답게 압도적인 반응을 보여줬다. 관객 100만 명을 돌파하는 데 걸린 시간은 4시간30분. 1000만 명을 돌파하는 데 단 11일이 걸렸다. 11년에 걸친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대장정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품 《엔드게임》은 전작인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이후 살아남은 어벤져스와 강력한 빌런 타노스의 전투를 그린 영화다. 

MCU는 지난 2008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주연을 맡은 영화 《아이언맨》으로 시작됐다. 어벤져스 신드롬의 시작은 2012년 개봉한 《어벤져스》다. 2015년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개봉하면서 마블 작품 최초로 1000만 관객을 돌파했고, 2018년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는 1100만 명의 관객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마블은 지난 3월 개봉한 《캡틴마블》까지, 총 21편의 영화를 통해 관객들과 호흡하며 마블의 세계관인 ‘인피니티 사가(Saga·영웅들의 대서사시)’를 구축했다. 

한국만의 외사랑은 아니다. 마블의 한국 사랑도 각별하다. 지난 4월 《엔드게임》 개봉을 앞두고 마블 히어로들이 한국 땅을 밟으면서, 마블이 한국을 아시아 정킷의 거점으로 삼았다는 전언은 기정사실화됐다. ‘아이언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아시아 지역에서 유일하게 한국을 방문했고, ‘캡틴마블’ 브리 라슨, ‘호크아이’ 제레미 레너, 안소니 & 조 루소 감독, 케빈 파이기 마블 스튜디오 대표가 한국을 찾았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한국은 폭발적 시장”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 시장의 흥행은 마블의 성공에 큰 역할을 했다. 신작이 개봉될 때마다 전 세계 흥행 수익 순위 상위권에 랭크된 한국을, 마블은 《엔드게임》 최초 개봉 국가로 지정했다. 왜 한국은, 마블이 한국을 사랑하게 될 정도로 마블을 사랑하는가. ‘마블민국’ ‘마블공화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어벤져스 시리즈에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 MCU brand
‘따로 또 같이’ 큰 그림 그린 마블 

“I am Iron Man.”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애드리브였던 《아이언맨》 1편의 엔딩 대사다. 이 대사는 《엔드게임》에서 타노스와 맞서 싸우다 손가락을 튕기기 전, 아이언맨의 대사로 다시 등장했다. 1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유기적으로 연결된 히어로들의 스토리는 ‘마블만의’ 브랜드를 구축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실제로 마블이 구축한 세계관인 MCU는 어벤져스 시리즈의 가장 큰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마블은 여러 히어로들을 하나의 소우주에 등장시키는 방식으로 할리우드 영화 제작 시스템을 바꿔버렸다. MCU를 기반으로 한 ‘따로 또 같이’ 전략이다. 솔로 무비의 주연으로 활약한 이들이 다른 작품에서는 함께 등장하고, 이들이 감정을 교류하고 갈등을 형성하기도 하면서 큰 틀의 이야기를 가져나간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는 아이언맨과 블랙위도우, 호크아이와 스칼렛 위치 등 어벤져스들이 등장하고,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는 캡틴 마블의 등장을 예고한다. 이렇게 유기적으로 얽힌 스토리들은 팬들이 마블 시리즈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기다리게 만드는 전략이 됐다. 이 전략의 중심에는 원작 만화의 열정적 팬, 케빈 파이기 마블스튜디오 사장이 있었다. 

《엔드게임》은 그래서 일반적인 영화의 속편과는 다른, 마블의 시리즈를 하나로 아우르는 대단원으로 관객들에게 받아들여졌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어벤져스는 시공간이 각각 다른 히어로들을 하나의 이야기 속에 녹여냈다. 이런 유기적인 연결은 한 장면 안에서 여러 캐릭터가 공존하는 묘미를 만들어냈다”며 “어떤 캐릭터를 좋아했던 사람들은 새로운 시공간에서 캐릭터를 발견하는 재미를 느낀다. 이 유니버스를 극단적으로 잘 구축한 것이 《엔드게임》”이라고 말했다.  

캡틴 아메리카.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히어로들이 패배하고 난 뒤 느낀 절망과 상실감을 초반부에 보여준다.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캡틴 아메리카.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히어로들의 절망과 상실감을 비롯해 그들의 인간적인 감정들을 보여준다.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 Avengers’ humanity
인간미와 단점을 가진 히어로들의 서사

과거의 히어로물을 기억해 보자. 히어로는 강력했고 죽지 않았다. DC의 대표 캐릭터인 슈퍼맨만 해도 전지전능했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어벤져스 시리즈의 히어로들은 달랐다. 약해지기도, 고뇌하기도, 서로 다투기도 했다.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는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에서 결투를 벌였고, 《엔드게임》이 시작되면서 그들은 화해한다. 

특히 마블은 어벤져스 시리즈 서사 이전에 히어로들 개인의 이야기들을 쌓아 갔다. 그러면서 강조된 것이 그들의 인간적인 모습이다. 아이언맨은 살상무기를 만들던 허세 가득한 사업가였고, 토르는 신이지만 제멋대로인 성격으로 신들 사이에서 전쟁을 일으켜 지구로 추방당했다. 스파이더맨은 숙모 집에 얹혀사는 ‘흙수저’였다. 인간성을 버리는 훈련을 받고 자란 스파이 블랙위도우는 수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살아왔다. 스스로 업보가 많다고 얘기할 정도로. 최약체 군인이었던 캡틴 아메리카는 자신의 의지로 고통을 짊어지고, 자신의 삶을 버린 채 영웅이 된다. 

히어로들의 인간적인 면모는 과거에 국한되지 않는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이후 살아남은 히어로들은 방황하고 상심하고 자책한다. 그 모습을 영화는 가감 없이 비춘다. 토르는 상실감에 현실을 외면하고, 술독에 빠져 배가 나온 아저씨가 돼 집에서 ‘포트 나이트’ 게임을 하고 있었다. 히어로들은 ‘멋있는’ 대사만 하지 않는다. 인류의 반을 되살려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마블은 유머 코드를 놓지 않았다. 과거로 돌아간 토르는 어머니를 보고 징징대는 모습을 보이고, 헐크는 과거의 자신이 차와 건물을 때려 부수는 장면을 보고 스스로를 부끄러워한다. 팬들이 헐크와 사진을 찍고 싶어 하자 질투하는 앤트맨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물했다. 

‘영웅은 죽지 않는다’는 일반적인 생각을 깨버린 것도 관객들에게 주효했다. 비록 되살아난 히어로들이 있을지라도, ‘히어로의 죽음’은 영화 내에서 존재했다. 강력한 적 타노스의 손가락에 수많은 영웅들이 스러졌고, 블랙위도우는 인구의 반을 되살리기 위해 자신의 희생을 선택했다. 아이언맨의 죽음에서는 많은 관객들이 눈물을 훔쳤다. 영화 초반에 영원한 연인 페퍼 포츠의 이름을 불렀던 아이언맨은, 마지막 순간에 앞서 그 이름을 다시 부른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키워드를 관객들의 마음에 심어줬다. 사라졌던 사람들이 돌아오면서 휴대전화에 뜨는 이름, 그들을 포옹할 때 느껴지던 가족의 가치 또한 사람들의 마음을 관통했음은 물론이다. 마블코믹스의 원작자이자 슈퍼히어로 캐릭터의 창시자인 스탠 리가 말한 히어로가 대중에게 사랑받기 위해 반드시 가져야 할 요소, ‘공감’이었다.

캡틴마블, 오코예, 와스프(왼쪽부터 시계 방향) 등 MCU의 여성 슈퍼히어로들이 한꺼번에 스크린을 가득 채운 장면은 영화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로 꼽힌다.
캡틴마블, 오코예, 와스프(왼쪽부터 시계 방향) 등 MCU의 여성 슈퍼히어로들이 한꺼번에 스크린을 가득 채운 장면은 영화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로 꼽힌다.

◆ Response for issue
사회적 문제에 반응한 민첩함

과거의 데이트 약속을 지켜내고 돌아온 캡틴 아메리카는 자신의 방패를 팔콘에게 넘긴다. 팔콘은 마블 최초의 흑인 슈퍼히어로. 백인 성인 남성이 주도권을 가져왔던 히어로 영화의 전통적인 관념을 깨고, 다양성이 있는 히어로들이 중심에 설 것을 강조한 것이다. 사실 마블의 이 태도는 이미 예전부터 적용됐다. 《블랙팬서》는 흑인 히어로를 전면에 내세웠고,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의 결말에서는 전쟁을 해결할 키(key)로 마블 사상 유일의 여성 단독 히어로 영화 《캡틴 마블》의 주인공, 캡틴 마블의 등장이 예고됐다. 

특히 지난 3월 개봉한 《캡틴 마블》은 페미니즘 서사가 돋보였다는 데서, 여성이나 흑인, 소수자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정치적 올바름’을 강조하는 시대적 요구를 반영했다는 평가다. 《엔드게임》의 전투신 중 캡틴 마블과 《앤트맨과 와스프》의 와스프, 아스가르드의 여전사 발키리, 《블랙팬서》의 와칸다 여전사 오코예가 한 장면에 모두 출격하는 신은 이 모든 의미를 담고 있다. 

인종과 성차별 문제는 최근 몇 년간 사회에서 중요한 이슈였다. 마블은 이와 같은 시대적 요구를 재빠르게 따라갔다. 내년에는 블랙위도우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선보일 예정이고, 아시아계 히어로를 내세운 《샹치》도 만들 예정이다.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는 “시대가 요구하는 부분, 혹은 정치적으로 영리해야 하는 부분을 히어로 액션영화라는 기본 장르에 잘 섞어오면서 히어로 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팬 층까지 포섭해 왔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 Viral marketing & spoiler 
스포일러 방지 캠페인, 바이럴 마케팅으로

《엔드게임》은 새로운 관람 문화를 양산했다.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영화 관련 영상을 보지 않고, 심지어 인터넷 접속을 하지 않는 ‘스포일러 경계령’이 발동된 것이다. 이전까지 영화 내용을 ‘스포’하는 것은 하나의 해프닝처럼 여겼지만, 《엔드게임》이 개봉하면서는 사회적인 문제가 됐다. 

온라인에서는 ‘어벤져스 스포 방지법’이 공유되기도 했다. SNS 활동을 자제하고, 어벤져스와 관련된 뉴스뿐 아니라 다른 뉴스의 댓글 확인을 피할 것, 영화를 보기 전까지 이미 영화를 관람한 친구들과 만나지 말 것 등의 조언도 게재됐다. 홍콩에서는 영화관 앞에서 결말을 외친 한 남성이 집단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70만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 프로풋볼리그 선수 리센 맥코이는 자신의 SNS에 결말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남겼다가 마블 팬들에게 뭇매를 맞았다. 네티즌들은 “사람들이 수년간 기다려온 영화를 망치는 법”이라며 그를 비판했고, 일부 네티즌은 소속팀 버펄로 빌스가 그와 계약을 해지해야 한다는 탄원서를 작성하기까지 했다. 

제작사와 감독들도 스포를 방관하지 않았다. 월드디즈니 컴퍼니 코리아는 “타노스는 여전히 당신의 침묵을 요구합니다”라는 내용의 ‘스포일러 방지 캠페인’을 SNS에 올렸고, 영화를 연출한 안소니 & 조 루소 형제 감독도 자신들의 SNS에 스포일러 자제를 부탁하는 공개서한을 올렸다. 이들은 “많은 사람들이 시간과 마음, 영혼을 이 이야기에 투자했기 때문에 다시 한번 관객의 도움을 요청한다”며 “앞으로 몇 주 안에 ‘어벤져스4’를 본 후 다른 이들에게 스포일러 하지 말 것을 부탁한다”고 전했다. 이런 스포 방지 캠페인은 바이럴 마케팅으로 작용했다. 영화에 대한 흥미를 더 고조시켰고, 그동안 어벤져스 시리즈를 보지 않았던 관객까지도 관심을 갖게 만든 것이다. 5월6일 공식적인 ‘스포일러 금지령’은 해제됐다.

마블의 빌런 타노스는 우주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인구 절반을 제거한다.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과 명분을 가진 악당이다.
마블의 빌런 타노스는 우주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인구 절반을 제거한다.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과 명분을 가진 악당이다.

◆ Effective for adults
어른들도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마블

히어로 영화가 유치하다는 공식은 깨졌다. 쫄쫄이를 입은 전지전능한 히어로에 열광하는 시대도 지났다. 타노스라는 악역 캐릭터를 보자. 타노스의 존재는 ‘악’이지만, ‘절대 악’은 아니다. 기존의 악역들이 본인의 이익이나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였다면, 타노스는 한정된 자원에 맞지 않은 과잉 인구가 우주의 문제를 초래한다고 믿었던, 나름 철학적인 존재다. 기존에 비해 유치하지 않은 악역을 설정하면서, 슈퍼히어로를 능가하는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과제를 마블은 충실하게 해냈다. 전작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는 타노스의 승리였다. 히어로들의 패배는 예측하지 못한 반전이고 결과였다. 정덕현 평론가는 “영화 자체가 주는 재미뿐 아니라, 중장년들이 가진 키덜트 취향에 마블의 세계가 조응했다. 유치하지 않고 너무 뻔하지 않은 선악 구조, 철학적 이야기 틀이 어른들에게도 만족감을 줬다”고 평가했다. 

4월15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어벤져스: 엔드게임》 아시아 팬 이벤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제레미 레너, 브리 라슨 등이 참석했다.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4월15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어벤져스: 엔드게임》 아시아 팬 이벤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제레미 레너, 브리 라슨 등이 참석했다.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 Loyalty & Fandom
로열티와 팬덤, 그리고 화답

마블과 한국의 ‘서로 사랑’을 논할 때 충성도와 팬덤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언맨》이 개봉할  때 1020세대였던 관객들은 이제 2040세대라는, 영화 산업의 메인 타깃 층이 됐다. 실제로 관객 연령대를 살펴보면 20~30대가 65% 이상, 40대도 25%에 이른다.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는 “어벤져스 시리즈는 영상에 익숙한 주 세대가 관객층이었기 때문에 빅 히트가 가능했다”고 평했다. 마블과 함께 성장해 온 젊은 세대, 그리고 팬덤을 형성하는 것이 익숙한 세대가 한국의 ‘마블 열풍’을 이끌었다는 평가다. 

특히 캐릭터에 대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솔로 무비와 달리, 《엔드게임》은 자신이 좋아하는 히어로를 한 명 이상 볼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관람 욕구가 증가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11년 동안 21편의 영화로 구축된 팬덤과 충성도다. 특히 원년 멤버인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 헐크, 블랙위도우, 호크아이를 중심으로 전개된 내용은 가장 많은 팬덤을 건드릴 수밖에 없었다. 아이언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한국 팬들에게 남겼던 작별 인사를 기억하는가. “어벤져스 시리즈를 시작할 때 저는 젊었고, 여러분들은 어린아이였습니다. 아름답게 자라주시고, 사랑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것은 11년간 이어진 어벤져스 팬덤과 마블 로열티에 대한 그의 화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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