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열풍] 어벤져스가 ‘그저 그랬던’ 몇 가지 이유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9.05.13 08:00
  • 호수 154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린 매일 홀로 싸운다”
훨씬 강력한 ‘현실의 세계관’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저 그렇던데?” 말이 끝나기 무섭게 후배들에게 둘러싸였다. 입사 이래 이런 분위기가 연출된 적은 없었다. 아군은 없었다. 겨우 용기를 내 외쳤다. “재미없다고 느낀 이유를 설명해 줄게!” 그렇다. 이 기사는 ‘다름’ 때문에 시작됐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그저 그렇게’ 본 죄. 그 이유를 낱낱이 고하고, 너그러운 이해를 구하고자 한다. 

영화는 전작을 보지 않아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친절한 방식으로 내러티브가 구성됐다. 곳곳에 마블의 역사를 훤히 꿰는 관객만 이해할 수 있는 유머와 디테일(가령 디즈니를 상징하는 생쥐가 나오는 장면처럼)이 있었겠지만, 서사의 큰 흐름은 전편들을 보지 않아도 따라가는 데 무리가 없도록 짜였다. 

문제는 ‘너무 친절했다’는 점이다. 시간 여행을 하기까지 히어로들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너무 자세히’ 설명을 했다. 러닝타임의 절반가량을 할애해서! 말 그대로 히어로들이 모인 ‘어벤져스’이기에 불가피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히어로 모두의 서사를 설명하려는(telling) 욕심을 조금 내려놓았다면 어땠을까. 그러다 보니 영화가 전반전·후반전으로 나눠졌다는 느낌도 들었다.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인간 같은’ 히어로들이 그리는 서사의 한계

‘마블 유니버스’라는 세계관은 거대했고 새롭기까지 했지만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지는 못했다. 어떤 화두를 던져주지도 못했다. 물론 히어로들이 인간처럼 상실과 부재의 쓰라린 아픔에 고뇌하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도망치고, 갈등하고 다투지만 끝내 힘을 모아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가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인간다웠다.  

하지만 ‘인간처럼’의 한계는 분명했다. 오히려 히어로들이 부러웠다. 그들의 적은 분명했다. 그리고 ‘하나 되어’ 싸웠다. 이 점이 감동을 반감시켰다. 사실 적이 분명하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타노스처럼 적이 강해도 하나 되어 싸울 수 있다면 그 싸움은 할 만하다. 그 과정에서 내가, 동지가 비극적 결말을 맞이해도 그 죽음은 기억된다.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히어로도 아닌 우리는 매일 홀로 싸우고, 겨우 버틴다. 아무도 기억해 주지 못하지만 그렇게 매일 살아낸다. 마블 유니버스가 그럴듯한 판타지일 수는 있지만 공감할 만한 무언가를 남기지 않았던 이유다.

이번 영화의 폭발적인 흥행 비결 중 하나였던 영화사의 영리한 ‘스포일러 마케팅’은 영화의 감정선을 충분히 느끼게 하지 못하는 ‘독’으로 작동했다.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아이언맨이 비극을 맞이한다는 암시를 너무 또렷이 알려줬다. 예고된 비극은 히어로가 비극적으로 사라질 때의 슬픔과 울림을 반감시켰다. 

오히려 그 순간 현실에서 존재했던, 우리의 히어로들이 떠올랐다. 국가재난사태가 선포됐던 강원도 산불을 끄기 위해 전국에서 밤새 달려간 영웅들 말이다. 목숨을 걸고 국가와 국민을 지켜냈고, 그리고 자신들도 ‘살아남은’ 우리의 히어로들. 맞다. 그들은 살아남았고, 그래서 우리는 더더욱 감동했다. 우리는 더 이상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으로 지켜지는 그런 ‘유니버스’를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였을까. 영화의 비극적 결말로 가슴이 흔들리기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2019년 대한민국의 현실이 훨씬 더 극적이고 서사적이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