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없이 아파트 안에 숨어버린 살인자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5.13 15:00
  • 호수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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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락인의 사건추적] 남양주 아파트 밀실 살인 사건

경기도 남양주시 북부에 위치한 진접읍은 인구가 10만 명에 육박하는 대읍(大邑)이다. 2009년 12월30일 이곳에 S아파트가 준공됐다. 단지는 총 10개 동 538세대로 이뤄졌다. 박아무개씨(74)와 이아무개씨(69) 부부는 노년을 보내기 위해 도심에서 조금 벗어난 이 아파트에 입주했다. 부부가 사는 곳은 A동 14층에 위치해 조망권이 좋은 로열층이었다. 두 사람은 이곳에서 서로 취미생활을 영위하며 여유롭고 자유로운 일상을 즐겼다. 10억원이 넘는 재산을 소유했던 부부는 돈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2010년 11월17일 남편 박씨는 골프 약속이 있다며 새벽 일찍 집을 나섰다. 아내 이씨도 아침식사를 한 다음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오전 8시에는 서울에 사는 지인에게 전화가 와서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눴다. 주요 관심사 중 하나였던 주식 투자도 화두로 올렸다. 대화가 길어지자 이씨는 “노인회관에 가야 한다”며 전화를 끊었다. 이때가 오전 8시18분쯤이다. 

남편 박씨는 골프를 친 후 일행들과 함께한 술자리가 길어져 귀가가 늦어졌다. 밤 11시20분쯤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었는데 불이 꺼져 있었다. ‘여보’하며 아내를 불렀지만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박씨는 예감이 좋지 않았다. 남편이 귀가하지 않았는데 아내가 벌써 불을 끄고 잠들어 있을 리가 만무했다. 

안방 불을 켜고 들어간 박씨는 충격적인 상황을 목격했다. 아내가 피를 흘린 채 침대 위에 쓰러져 있었고, 방 안은 온통 피로 물들어 있었다. 박씨는 112에 “외출 후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가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다”고 신고했다. 

이씨의 시신은 처참했다. 얼굴과 목 등에는 흉기로 10여 차례나 찔린 상처가 있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이씨의 사망원인은 ‘목 경동맥 절단’으로 나왔다. 사망시간은 이날 오전으로 추정됐다. 

ⓒ 일러스트 오상민
ⓒ 일러스트 오상민

안방 침대에서 발견된 시신

경찰 수사가 시작됐다. 먼저 현장에서 증거물을 찾기 위한 정밀 감식에 들어갔다. 시신 옆에서는 범행에 사용된 흉기가 발견됐다. 남편은 “우리 집에서 사용되던 부엌칼”이라고 말했다. 혈흔이 많이 묻어 범인의 지문 감식은 어려운 상태였다. 

안방과 화장실 사이에는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피 묻은 슬리퍼 발자국이 있었다. 슬리퍼는 원래 집 안 화장실에서 사용하던 것이었다. 이에 따라 범인은 집 안으로 들어온 다음 화장실에 들어가 슬리퍼를 신고 나온 후 부엌으로 가서 칼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가 이씨를 살해한 것으로 추정됐다. 범행 후에는 다시 화장실로 가서 피 묻은 손 등을 씻고 슬리퍼를 제자리에 벗어놓았다. 경찰이 집 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범인의 지문이나 DNA는 검출되지 않았다. 

그래도 범인이 외부에서 침입했다면 검거는 어렵지 않아 보였다. 이 아파트는 입주가 시작된 지 10개월 정도밖에 안 된 신형 고급 아파트였다. 입주 당시 시행사는 최첨단 보안시설을 자랑하며 입주민들의 안전에 철저를 기했다고 밝혔다. 실제 밖에서 아파트 각 세대에 출입하려면 이중 삼중의 보안장치를 통과해야 한다. 아파트 단지 곳곳에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어 쉽게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경찰은 아파트 보안장치를 확인했다. 먼저 범인이 집 안으로 들어가려면 A동 입구에 설치된 1차 보안장치를 뚫어야 한다. 입주민들에게는 출입카드가 지급돼 있다. 이걸 도어록에 대면 문이 열린다. 

비밀번호를 입력해 여는 방법도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세대를 호출해 문을 열어줘야 들어갈 수 있다. 만약 범인이 비밀번호를 알거나 다른 입주민이 들어올 때 함께 들어왔다고 해도 1층 현관에 설치된 CCTV를 피해 갈 수는 없다. 

1층에서 피해자가 살고 있던 14층까지 올라가는 방법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거나 계단을 통해 걸어가야 한다. 범인이 엘리베이터를 탔다면 그 안에 설치된 CCTV에 모습이 찍히게 된다. 14층으로 올라와서 피해자의 집에 들어가려면 초인종을 누르거나 노크를 해야 한다. 이 아파트에는 최신 비디오폰인 ‘삼성 바하(BAHA) 월패드’가 설치돼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면 바깥 카메라에 상대방의 모습이 자동으로 촬영된다. A동 입구에서 인터폰을 누를 때도 마찬가지다. 아파트 단지의 메인서버와 연동돼 경비실을 호출할 수도 있고, 비상버튼을 누르면 요란한 비상음이 울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A동 출입문에 설치된 CCTV, 엘리베이터 CCTV, 월패드 어디에도 범인의 모습은 촬영되지 않았다. 

경찰은 기대했던 보안장치에서 아무런 단서를 찾지 못하자 당황했다. 이어 범위를 좀 더 확대해 아파트 단지에 설치된 CCTV 분석에 들어갔다. 범인이 차량을 이용해 아파트로 들어왔다면 입구에 설치된 CCTV에 차량이 찍히게 된다. 옥외 주차장이 없기 때문에 입주민이나 외부인의 차량은 지하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 지하주차장은 차단기를 통과해야 하는데 이때 출입기록이 남게 된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범인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카드나 비밀번호를 사용할 때 자동으로 저장되는 로그 기록을 삭제한 흔적도 없었다. 경찰은 아파트 출입 시간대를 확대해 살펴봤다. 숨진 이씨의 남편이 골프를 치러 집에서 나간 시각은 새벽 5시쯤. 이때부터 귀가해 시신을 발견할 때까지 A동 출입구, 엘리베이터 내부 등의 CCTV에 찍힌 사람은 모두 188명이었다. 경찰은 이들의 행적과 당일 알리바이를 확인했지만 의심을 살 만한 사람은 없었다. 범인이 미리 아파트 안에 들어왔을 것을 가정해 사건 발생 일주일 전까지 CCTV를 살펴봤지만 별다른 것은 없었다. 

범인이 15층 옥상을 통해 침입했다고 가정할 수도 있다. 그랬다면 14층까지는 줄이나 벽을 타고 내려와야 하고, 줄을 맨 흔적 등이 남아 있어야 한다. 또 당시는 초겨울 날씨여서 이른 아침에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지도 않았다. 

외부에서 창문을 열려고 했다면 이씨가 금방 알아차렸을 것이다. 경찰도 옥상 침입 여부를 확인했으나 아무런 흔적도 찾지 못했다. 경찰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1층에서 15층 계단 전체에서 혈흔 검사를 진행했다. 여기서도 별다른 것은 나오지 않았다.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한 경찰

경찰은 아파트 내부인의 범행 가능성도 염두에 뒀다. 당시 A동에는 모두 48세대가 입주해 있었다. 경찰은 모든 세대에 대해 혈흔반응 등 정밀 검사를 실시했으나 허사였다. 아직 입주가 안 돼 비어 있던 2, 3층에 대해서도 샅샅이 뒤졌으나 특이점은 없었다. 

경찰은 아파트 경비실과 입주민 등을 탐문해 이씨와 주민 간에 갈등이 있는지를 알아봤다. 한 입주민에게서 “아파트 옥상에서 고추를 말리는 것 때문에 이웃과 다툰 적이 있다”는 말을 듣고 해당 주민을 집중 조사했다. 거짓말 탐지기 조사까지 벌였으나 ‘진실’ 반응이 나왔다.  

누군가 집 안으로 들어와 이씨를 살해한 후 나간 것은 분명했지만 어디에도 범인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남편의 알리바이도 확실했다. 새벽에 집을 나간 후 밤에 들어올 때의 모습이 CCTV에 찍혀 있었다. 골프를 치고 술자리에 있었던 것도 일행들에게 확인했다. 

남편이 나간 후 지인과 통화할 때까지 이씨는 살아 있었기 때문에 남편의 혐의점은 없었다. 부부가 원한을 살 만한 인물이 있는지도 찾아봤으나 특별히 의심할 만한 사람은 없었다. 

경찰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 봤다”고 했으나 범인과 관련한 아무런 단서를 확보하지 못했다. 결국 이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고, 지금까지 미제로 남았다. 그래도 수사는 계속되고 있다. 현재 경기북부경찰청 장기미제수사팀에서 이 사건을 맡고 있다. 

범인이 남긴 단서들

1. 범행은 살인이 목적이다. 

금품을 노린 강도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우선 침입이 쉽고 범행 후 도주하기 용이한 곳을 노린다. 또 고층보다는 저층을 범행 대상으로 삼는다. 대부분의 강도가 아파트보다는 단독주택이나 다세대주택 등 저층을 선호하는 이유다. 보안이 철저한 아파트, 그것도 신형 아파트는 기피 대상이다. 특히 5층 이상의 고층 아파트는 범행이 탄로 날 경우 퇴로가 금방 차단되기 때문에 범행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 사건의 경우도 강도로 보기에는 모순이 많다. 작은방에는 범인이 장롱을 뒤진 흔적이 있었다. 하지만 훔쳐간 물건은 아무것도 없었고, 침대 위에는 고가의 명품시계가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보통 집 안의 귀중품은 안방에 놓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도 범인은 안방은 그대로 두고 작은방을 뒤졌고 게다가 없어진 물건도 없다. 이것은 범인이 강도로 위장하려고 연출했거나 다른 목적이 있을 수 있다. 성폭행 등 성범죄를 의심할 만한 것도 없었다. 

2. 범인은 면식범이다. 

범인이 아파트 현관문이나 창문을 강제로 연 흔적은 없었다. 숨진 이씨가 스스로 문을 열어줬다는 뜻이다. 범인이 평소 이씨와 안면이 있거나 친분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범인은 집 안으로 들어온 뒤 태연하게 화장실을 이용했다. 이때 이씨는 안방에 있었다. 

여성 혼자 있는 집 안에 낯선 방문자가 아침 일찍 찾아오면 경계하는 게 사람 심리다. 그런데도 이씨는 경계심 없이 범인이 화장실을 이용할 동안 거실에 있지 않고 안방에 들어가 있었다. 이것은 범인이 그만큼 편안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인식했기에 가능하다. 

3. 범인은 아파트 내부에 있다. 

범행 현장인 S아파트는 보안이 철저하다. 범인이 외부에서 침입했다면 어디에든 흔적이 남아야 한다. 이중 삼중으로 된 보안장치를 뚫고 곳곳에 설치된 CCTV를 피해 갈 확률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보안장치에 아무런 흔적이 없다는 것은 범인이 아파트 내부에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더욱이 범인은 이씨의 남편이 새벽같이 집을 나간 것을 알고 있었다. 평소 부부의 생활패턴을 알고 있거나 지켜보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범인이 아파트 내부인이라면 흔적이 남을 곳은 월패드다. 복도에 설치된 초인종을 누르면 월패드에 자동으로 방문자의 얼굴이 촬영된다. 이걸 피해 가는 유일한 방법은 초인종 대신 노크를 하면 된다. 아파트 내부인이 계단을 통해 14층으로 올라와 노크해서 현관문을 통과해 범행을 저질렀다면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는 것이다. 아파트 내부인은 알리바이를 만들기도 쉽다. 

4. 범행은 철저히 계획됐다. 

범인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고심한 정황이 역력하다. 범행도구를 집 안에서 찾고 화장실 슬리퍼를 이용할 정도로 주도면밀했다. 피해자의 몸은 흉기에 찔려 많은 피를 흘렸다. 범인에게도 적지 않은 피가 튀었을 것이다. 범인의 옷에도 피가 흥건하게 묻어 있어야 한다. 범인이 화장실에서 피가 묻은 손 등을 씻었다고 해도 피 묻은 옷을 그대로 입고 나갔다면 그 흔적이 남아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범인의 몸에서 떨어진 핏방울은 없었다. 범인이 집 안에 들어올 때 범행 후 갈아입을 옷을 들고 왔거나 집 안에 있는 옷을 입고 나갔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럴 경우 이씨 집 작은방 장롱을 뒤진 것도 금품을 찾기보다는 입고 나갈 옷을 찾았을 수 있다. 범인이 화장실에서 속옷만 입은 채로 나와 범행한 후 몸을 씻고 나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피 묻은 옷을 자연스럽게 밖으로 들고 나가 증거를 인멸할 시간은 충분했다. 

5. 범인은 중년 이상의 여성일 확률이 높다. 

범인은 피해자의 얼굴과 목을 집중적으로 흉기로 공격했다. 목의 급소를 노렸지만 한 번에 제압하지 못하고 10여 차례나 찔렀다. 그 사이 피해자가 양손으로 흉기를 막으면서 방어흔이 11개나 생겼다. 범인이 완력이 강한 남성보다는 노약자이거나 여성일 확률이 높은 이유다. 자연스럽게 화장실을 이용하고, 피해자가 경계심을 늦춘 것도 범인이 남성보다는 여성이라는 것에 무게가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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