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시선은 나루히토 일왕의 동생 후미히토에?
  • 류애림 일본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5.15 10:00
  • 호수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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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총리, 여성 왕위 계승 논란에 부정적
왕위 계승 1순위는 나루히토 새 일왕의 딸 아닌 남동생 후미히토

5월1일 새 일왕 나루히토(德仁)가 즉위했다. 이번 일왕 교체는 여러 가지 면에서 주목받고 있다. 먼저 생전(生前) 퇴위와 양위 결정이다. 2016년 8월 아키히토(明仁) 전 일왕은 고령을 이유로 퇴위 의사를 밝혔고, 1817년 이후 처음으로 양위가 이뤄졌다.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황태자가 없다는 점이다. 일본 황실전범은 아버지가 황족인 남성(男系男子)에 한해서만 황위 계승을 인정하고 있는데, 나루히토 일왕에게는 아들이 없다. 따라서 그 동생 후미히토(文仁)가 왕위 계승 1순위 ‘왕세제’가 됐다. 

나루히토 일왕이 후미히토 왕세제(가운데)와 함께 5월4일 도쿄 왕궁에서 즉위 후 처음으로 열린 국민 초대 행사(일반참하·一般參賀)에 참석, 연설하고 있다. ⓒ EPA 연합
나루히토 일왕이 후미히토 왕세제(가운데)와 함께 5월4일 도쿄 왕궁에서 즉위 후 처음으로 열린 국민 초대 행사(일반참하·一般參賀)에 참석, 연설하고 있다. ⓒ EPA 연합

‘정치적 발언’ 후미히토에 “왕위 욕심” 의심도

후미히토는 1965년생으로 나루히토 일왕보다 다섯 살 아래다. 가쿠슈인대학 법학부 정치학과에 입학하지만 정치보다는 생물학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이때 1년 후배였던 지금의 왕세제비 기코(紀子)와 만났다. 학부 졸업 후에는 영국 옥스퍼드대학 대학원 동물학과에 유학, 이후 런던 자연사박물관에 재직하기도 했다. 현재는 저명한 메기 연구자이기도 해 ‘메기 전하’로 불리기도 한다. 어릴 적부터 메기에 관심이 많았던 후미히토를 위해 약혼 당시 기코가 메기 문양 반지를 준비한 것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후미히토는 종종 정치적 발언으로 주목받기도 한다. 특히 작년 11월 생일 기자회견에서 올해 11월14~15일 이틀 동안 열리는 다이조사이(大嘗祭)의 비용을 국비가 아닌 왕실 사비로 치러야 한다고 발언하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다이조사이는 새로 즉위한 일왕이 오곡의 풍작을 기원하는 행사로 종교적 성격이 강하다. 후미히토는 일본 헌법이 정하고 있는 정교분립의 관점에서 거액(22억5000만 엔, 약 238억8000만원)이 들어가는 종교색 짙은 행사에 국비의 투입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자신의 의견을 밝힌 것이다. 발언의 내용도 주목을 받았지만 왕실의 일원이 ‘정치적 발언’을 했다는 것에 눈길이 쏠렸다. 일본 헌법 4조는 ‘천황(일왕)은 국정에 관한 권능을 가지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어서다. 정치적 발언을 피해 온 아키히토 상왕이나 나루히토 일왕과는 확실히 다른 행보다. 

그동안 일본의 일부 언론들은 후미히토가 왕위에 욕심이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사히신문은 지난 4월 후미히토가 “형이 80세가 되면 나는 70대 후반이다. 그때부터는 불가능하다”고 주위에 말했다고 보도했다. 또 일왕이 되는 것을 강력하게 의식하고 있다는 보도에 대해서는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후미히토의 가족들도 일본 국민의 관심 대상이다. 형 나루히토보다 일찍 결혼하고 두 딸도 먼저 봤다. 최근에는 첫째 딸 마코의 약혼자 문제로 세간이 떠들썩하기도 했다. 마코 공주는 2017년 9월 대학 동창인 회사원과 약혼한다고 발표했으나 이후 약혼자 가족을 둘러싼 금전 문제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며 결혼이 연기됐다. 금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의 세금이 사용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이 생기면서 후미히토와 그 가족을 둘러싼 신뢰가 떨어지고 있다. 

여기에 왕위 계승 서열 2위인 후미히토의 아들 히사히토(悠仁)도 주목받고 있다.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히사히토는 2006년생 늦둥이로 나루히토, 후미히토 이후 왕위를 이을 남자 왕족이 없는 상황에서 태어났다. 나루히토 일왕 부부는 왕세자 지위에 있을 당시 후사 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결혼 8년 만인 2001년 공주 아이코(愛子)를 얻었다. 따라서 2000년대 초반에는 여성 일왕을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졌으나 2006년 사촌동생인 히사히토가 태어나면서 이에 관한 논의는 중단되었다. 


아베, ‘여성 일왕’ 인정하는 보고서 채택 막아 

하지만 여성 일왕 또는 어머니가 왕족인 여계 일왕에 관한 논의가 다시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시대의 변화가 가장 큰 이유지만 후미히토 가족을 둘러싼 신뢰도 하락도 그 바탕에 있는 듯하다. 나루히토 일왕 즉위 다음 날인 5월2일 발표된 교도통신의 긴급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여성 일왕 인정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79%였다. 지난 4월 이뤄진 아사히신문의 여론조사에서도 75%가 여성 일왕을 인정해도 좋다고 응답했다.

이런 여론이 반영돼 제도 개정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다만 여성·여계 일왕 논의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2017년 6월 일본 국회는 아키히토 현 상왕의 생전 퇴위를 위한 특례법을 제정하면서 결혼 후에도 여성 왕족이 왕실에 남을 수 있도록 하는 등 안정적 왕위 계승 방안을 마련하도록 정부에 요구했다. 일본 정부는 새 일왕의 즉위 절차가 모두 마무리되는 오는 11월 이후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일본 역사에 여성 일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왕은 남계(男系)로 이어져 왔지만 총 8명의 여성 일왕이 존재했다. 일왕의 자격을 남성으로 정한 것은 근대 이후로 비교적 그 역사가 짧다. 근대적 제도 개혁과 헌법 제정이 이루어졌던 메이지 시대 일본에서는 남계남자로 왕실 계승 자격을 성문화해 1889년 왕실전범을 마련했다. 당시에는 남성 왕족이 많았기 때문에 남계남자로 계승 자격을 한정해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이후 일부일처가 자리 잡게 되고 새 헌법 공포 후인 1947년 만들어진 현행 왕실전범에서 왕족의 범위를 축소하면서 왕위 계승의 안정성이 흔들리게 됐다. 현재의 제도 속에서 왕위 계승이 가능한 이는 후미히토, 히사히토 그리고 아키히토 상왕의 동생 마사히토(正仁) 셋뿐이다. 마사히토가 83세의 고령인 점을 감안한다면 실질적으로 두 명밖에 계승 자격을 가지지 않는다. 

일본 정부는 여성·여계 일왕에 신중한 입장이다. 특히 아베 신조 총리의 경우 부정적 입장을 유지해 왔다. 히사히토가 태어나기 전인 2000년대 초반 고이즈미 정부에서는 아이코의 왕위 계승을 인정할 것인가를 두고 여성 왕위 인정에 관한 논의가 활발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2005년 왕실전범 개정을 위한 고문기관을 발족하고 같은 해 11월에는 사실상 여성·여계 일왕을 인정하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채택하고 왕실전범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려 했다.

당시 관방장관이었던 아베 총리가 후미히토의 부인 기코의 임신 소식이 알려지자 고이즈미 당시 총리를 설득해 개정안 제출을 단념하도록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지지 기반인 보수층이 남계남자를 고집하고 있는 만큼 여성·여계 일왕에 대해 아베 총리는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아베의 시선은 나루히토 일왕보다 그 동생인 후미히토 왕세제에게 갈 수밖에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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