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는 과연 혁신하고 있는가
  • 여선웅 쏘카 새로운규칙그룹 본부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5.16 11:00
  • 호수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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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버 기업 가치, 폭스바겐 시가총액 넘어서…‘모빌리티 시대’로의 패러다임 전환 시급

작년 여름 생소한 모빌리티 업계로 이직하고 새로운 걱정이 하나 생겼다. 대기업과 연예인 걱정은 하지 말라지만 현대자동차를 생각하면 밤잠이 달아난다. 모빌리티 업계가 전진할수록 자동차업계는 후진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걱정은 2018년 11월 현대차 주가가 10만원 아래로 떨어졌을 때 극심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주가가 10만원 밑으로 떨어진 이래 9년 만이었다. 도요타와 폭스바겐에 천문학적 벌금을 부과한 미국 뉴욕 연방검찰이 현대차를 조사하고 있다는 소식이 여의도를 강타했다. 현대차가 살림도 어려운데 추가 리콜이나 벌금을 맞으면 정말 큰일이 날 것 같았다. 올해 1월 현대차가 정부의 수소경제 활성화 정책과 삼성동 현대차 신사옥(GBC·글로벌비즈니스센터)의 수도권정비위원회 통과로 숨통이 트여 주가가 올라갈 때도 걱정이 앞섰다. 현대차의 혁신과 구조조정은 더 멀어질 게 뻔했기 때문이다.

‘차알못(차를 알지 못하다)’인 내가 쏘나타 신형과 팰리세이드로 이제 꽃길이라는 유명 자동차 애널리스트의 분석을 뒤로하고 현대차의 전망을 어둡게 생각하는 이유는 현대차의 신차 발표보다 모빌리티의 성장이 더 빨라서다.

모빌리티 업계가 전진할수록 자동차업계는 후진할 수밖에 없다. 우버의 기업 가치는 약 1000억 달러(약 116조원)로 평가된다. ⓒ AP 연합
모빌리티 업계가 전진할수록 자동차업계는 후진할 수밖에 없다. 우버의 기업 가치는 약 1000억 달러(약 116조원)로 평가된다. ⓒ AP 연합

모빌리티의 전진, 자동차 산업의 후진

대표적인 예가 리프트(Lyft)다. 나스닥에 상장한 리프트는 자동차 한 대 없이 현대차 시가총액에 육박하는 기록을 썼다. 한국에서 불법인 우버(Uber)는 뉴욕 증권거래소 데뷔를 앞두고 있다. 리프트가 미국 2위라면 우버는 세계 1위의 모빌리티 기업이다. 최근 우버의 기업 가치는 약 1000억 달러(약 116조원)로 평가된다. 세계 2위 자동차기업 폭스바겐의 시가총액(879억 달러)을 넘는 규모다. 현대차의 시가총액은 29조원 수준(5월8일 기준)이다.

모빌리티 기업의 등장은 자동차기업엔 위기 신호다. 자동차가 자동차 그 자체가 아니라 이동으로서 소비되고 있다는 변화를 의미해서다. 이른바 ‘통합이동서비스(MaaS·Mobility as a Service)’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은 16세부터 운전면허 취득이 가능한데, 1983년 46%였던 면허 보유율이 2017년 26%로 급감했다. 밀레니얼 세대들은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고 공유 서비스로 이용한다. 자동차 산업의 위기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모빌리티와 함께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 시프트를 이끄는 다른 한 축은 자율주행기술의 발전이다. 넓은 의미에서 스마트카(Smart Car)라고 불리는 자율주행차(AV·Autonomous Vehicle)는 자동차 메커닉 관점에서 보면 혁명이다. 스스로 알아서 움직이는 자동차는 자동차가 아니라 로봇에 가깝기 때문이다. 빨리 달리는 차보다는 더 똑똑한 차를 만드는 것이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PC가 온라인 시대를 열고, 스마트폰이 모바일 시대를 만들었다면, 스마트카는 모빌리티 시대를 열고 있다. PC와 스마트폰으로 온라인에 접속했다면 이제 스마트카로 온라인에 로그인하게 된다.

모빌리티 시대에는 스마트폰보다 스마트카가 더 편리하고 똑똑한 플랫폼이다. 스마트카는 AI(인공지능), IoT(사물인터넷), 5G 등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의 집합체다. 20세기 인류 최대 공산품인 자동차가 4차 산업혁명의 기수가 되고 있다. 스마트카를 주도하는 자율주행기술에 천문학적인 투자금이 몰리는 이유다. 

스마트폰이 단일 시장으로서도 굉장히 큰 규모지만 스마트폰이 가져온 디지털 경제 발전에는 비할 바는 아니다. 스마트카가 여는 모빌리티 시대 역시 마찬가지다. 스스로 움직이는 자율차는 교통·물류 등 이동 혁명을 촉진하고, 나아가 도시 구조와 삶의 형태를 바꿔놓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스마트 시티의 핵심을 스마트 교통이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빌리티와 자율주행차는 자동차업계는 물론이고 교통·물류 업계의 블랙홀이다. 누가 승자가 되고 패자가 될지 모른다. 자율주행 시대엔 쏘카의 경쟁 상대가 ‘쿠팡’이나 ‘배달의민족’이 될지 모른다. 사람이든, 택배든, 음식이든 모든 배달은 자율주행차로 묶이기 때문이다.

나스닥에 상장한 리프트는 자동차 한 대 없이 현대차 시가총액에 육박하는 기록을 썼다. ⓒ AP 연합
나스닥에 상장한 리프트는 자동차 한 대 없이 현대차 시가총액에 육박하는 기록을 썼다. ⓒ AP 연합

GM과 애플의 변신에서 배워야 할 것

4차 산업혁명의 파고에 가장 잘 대응하는 자동차기업은 GM(제너럴모터스)이다. ‘GM의 이익은 미국의 이익’이라고 했던 GM은 2009년 파산한 경험이 있다. 그 경험 덕분인지 위기에 선제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2015년 러시아와 태국, 인도네시아 공장 문을 닫은 데 이어, 2017년에는 유럽, 남아공, 호주 시장에서 철수했다. 

2014년 취임한 메리 바라 GM CEO는 “자동차 산업은 향후 5년이 지난 100년간 변했던 것보다 더 많이 변할 것”이라며 구조조정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를 통해 생긴 여유 자금은 모빌리티와 자율주행차 관련 분야로 고스란히 흘러가고 있다. GM은 2016년 리프트에 5억 달러를 투자했고, 같은 해 자율주행기술 스타트업 ‘크루즈 오토메이션’을 5억 달러에 사들였다. GM 크루즈는 구글 웨이모와 함께 자율주행 분야에서 선두다. 세계 최대 자동차기업이 자동차 만들 생각을 하지 않고, 모빌리티와 자율주행에 푹 빠져 있는 것이다. 애플 컴퓨터(Apple Computer)가 2007년 아이폰을 만들고부터 과감하게 사명에서 컴퓨터를 빼버리고 애플로 바꾼 것처럼 GM(General Motors)도 사명에서 ‘Motors(자동차)’가 빠질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간판 자동차기업인 현대차는 어떤 상황인가. 현대차는 1974년 상장 후 44년 만에 처음으로 지난해 적자를 냈다. 중국 진출의 상징인 베이징 1공장이 2002년 첫 가동한 지 17년 만에 문을 닫았다. 해외 자동차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하고 모빌리티와 자율주행에 대한 투자를 준비할 때, 현대차는 강남구 삼성동 금싸라기에 본사 사옥을 짓겠다고 10조원의 거금을 쏟아 부었다.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이 작년 9월 인도 무브 서밋에서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변신하겠다고 선언했지만 GM의 혁신에 비춰보면 아직 답답한 수준이다. 자동차 연료를 석유에서 수소로 바꾸고 신형 자동차로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현대차의 발상은 여전히 과거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 시프트를 넘어서려는 혁신이 보이지 않는다. 2015년 디터 제체 벤츠 회장은 “벤츠는 애플의 폭스콘(애플의 하청업체)이 되지 않겠다”고 말했다. 바로 대한민국 국민이 현대차에서 듣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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