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후 첫 행보 나선 안상수 전 창원시장
  • 황최현주 부산경남취재본부 기자 (sisa520@sisajournal.com)
  • 승인 2019.05.14 15:3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안상수 前시장 “고향에 봉사, 행복했다”

안상수(73) 전 창원시장이 지난 5월 11일 자신의 책 《나의 꿈, 창원의 꿈》 출판기념회 개최를 시작으로 퇴임 후 첫 공식 행보에 나섰다. 그는 작년 지방선거 이후 이렇다 할 공개 활동을 자제해왔다.

안 전 시장은 “지나온 길을 기록하는 차원에서 책을 쓴 것”이라며 정치 활동 재개 등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여당 대표와 창원시장을 지낸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지난 5월 12일 창원 마산합포구 오동동 사무실에서 안 전 시장을 만났다.

안상수 전 창원시장 ⓒ시사저널
안상수 전 창원시장 ⓒ시사저널

변호사 사무실이다.

“변호사 활동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저 고향 분들의 아픔을 듣는 자리다. 돈과 명예를 바라지 않는다. 대외 활동도 피하고 있다. 괜히 오해를 부를 수 있는 터라, 출판기념회도 조심스럽게 열었다. 나를 도와준 분들과 그간의 기록을 공유하며 책을 나눠 줬다”

책에서 '보람' 이란 단어가 눈에 뛴다.

“태어나서 자란 고향은 재도약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중앙정치 경험, 인맥으로 해결해야 했다. 4년 길지 않은 기간에 많은 일을 했다. 고향에 대한 책임감이었다. 보람이 컸지만 아쉬움도 없지 않다”

꿈과 도전을 강조했다.

“인생은 도전이다. 끊임없이 목표를 세우고 도전해야 한다.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한 것이 내 첫 도전이었다. 이후 사법고시에 합격해 검사, 인권변호사, 국회의원, 고향의 시장에 도전했다. 그러나 꿈만 가지곤 안 된다. 용기가 있어야 한다.

돈과 권력에 대한 욕심을 지나치게 가질 필요는 없다. 꿈을 이루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꿈을 위해서 도전하고 이뤄내는 과정이 삶이자 행복이다. 내 좌우명이 '꿈과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는 삶'인 이유다.“

시장 재임기간, 특히 당선 당시 창원은 어땠나?

“지역경기가 침체하고 있었다. 창원공단의 기계공업이 한계에 도달하면서다. 창원이 40년 동안 기계공업으로 먹고 살았지만, 첨단산업으로 제때 전환하지 못하면서 쇠락하고 있었다. 또 서비스 산업, 특히 관광산업은 불모지에 가까웠다. 그 탓에 일자리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됐다. 창원의 미래 먹거리로 첨단산업, 관광산업을 선정한 이유다”

‘창원광역시’ 추진이 발목을 잡았다는 평가가 있다.

“창원광역시 승격은 내가 고향에 내려온 큰 이유 중 하나다. 의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창원은 인구, 면적, 지역내총생산(GRDP)이 대전, 광주보다 컸다. 하지만 인구 5~10만 규모의 기초자치단체와 같은 권한으론 대도시의 행정수요를 감당하긴 어려웠다. 이는 국가적 손해다.

창원이 광역시로 승격하면 창원의 교육, 문화, 첨단·관광산업의 획기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다. 정부기관 유치, 국책사업 추진 등에 유리하다. 또 진주 등 서부 경남은 도청 등 핵심기관이 이전하면서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자연스레 제공된다. 하지만 홍준표 전 경남지사나 일부 시장·군수가 부정적인 성명을 발표했다. 이해는 하지만 아쉬울 수밖에 없다“

창원이 한류 메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5년 5월 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 회장을 만났다. 창원을 한류 메카 도시로 만들어달라는 취지였다. 앞서 창원은 2011년부터 매년 ‘창원 K-POP 월드페스티벌’을 열어 한류 컨텐츠 기반은 갖췄지만,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2016년 6월 SM이 운영에 참여한 ‘창원 SM타운’ 시행사를 선정했다. 연간 30만명 이상의 국내·외 관광객이 찾아와 5600억 원의 생산 유발효과, 3477명의 고용 등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사업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일부 언론의 의혹제기로 우여곡절을 겪었다. 많이 섭섭했다. 2017년 5월 첫 삽을 뜨면서 2020년 4월 완공될 ‘창원 SM타운’을 떠올렸다. 감개무량했다“

후진 양성에 매진하겠다고 했다.

“퇴임 후 잠과 휴가만으로 시간을 보낼 생각은 없었다. 고향에 개인 사무실을 마련해 어려운 사람들의 아픔도 듣고 있다. 후진 양성도 목표다. 젊은 인재들이 충분히 활동할 수 있도록 내 역량을 공유하겠다”
 

정치 재개 질문엔 손사래만 쳐

정치 재개에 대한 추가 질문을 반복했지만, 그는 오해를 피하려는 듯 몇 차례 더 손사래만 쳤다. 

안상수 전 창원시장은 1946년 마산 석전동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가 7살 되던 해 기와공으로 일하던 아버지가 돌림병으로 유명을 달리며 경제적으로 더 궁핍해졌다. 안 전 시장은 “어머니는 은행원이 되길 원했지만, 내 꿈과 맞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가정 형편은 어려웠지만, 열심히 공부해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안 전 시장은 대학 졸업 후 사법고시에 합격해 검사로 일했다. 그는 검찰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10년 동안 요직을 두루 거쳤지만,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계기로 옷을 벗었다. 사인을 규명하는 부검을 직접 지휘하면서였다.

그는 인권변호사로서 반인륜적인 고문 희생자가 더 나와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 안 전 시장은 자신의 결심을 현실화하기 위해 ‘당직변호사’ 제도를 만들고 외국인 노동자 법률사무소도 열었다.

이후 안 전 시장은 1996년 4·11 총선을 통해 정계에 입문했다. YS의 권유였다. 그는 “변호사에서 국회의원으로 신분만 바뀌었다. 인권을 위한 일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고 했다. 안 전 시장은 경기 과천·의왕 지역구에서 내리 4선을 했다. 18대 국회 때인 2010년에는 한나라당(자유한국당의 전신) 대표최고위원을 지냈다.

2014년 7월 안 전 시장은 통합창원시 2대 시장에 당선돼 두 번째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당시 창원은 성장 동력을 상실해 도시 쇠락의 문턱에 선 상황이었다. 안 전 시장은 ‘도시철도 건설사업’을 포기하면서 1조원이 넘는 재정혁신 효과를 이뤄냈다. 가장 시급한 ‘재도약’을 위해 LG전자 R&D센타를 유치했고, ‘창원 SM타운’도 착공했다. 안 전 시장의 상징과도 같은 ‘창원광역시 승격 운동’도 이때 전개했다. 2019년 현재 창원은 ‘특례시’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에겐 지금 우리 정치인들에게 실종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정신이 있었다” 출판기념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안 전 시장을 특권에 따르는 의무를 다한 '진정한 창원시장'으로 불렀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