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소비되고 마는 ‘서촌’의 우리 전통들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5.17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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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나의 문화로 도시 읽기] 서울 서촌에 가득한 퓨전한복이 불편한 이유

서촌이 뜨게 된 것은 2000년대에 들어 한옥 경관이 재평가되면서부터였다. 한옥마을이라고 한다면 서울 가회동과 삼청동 일대의 북촌이 대표적이었던 와중에, 서촌은 서울에 숨겨져 있던 새로운 역사적 면모였다. 경복궁의 서쪽을 뜻하는 ‘서촌’이라는 이름도 신선한 것이었다. 무서운 속도로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최첨단의 기술로 무장하고 있는 서울이지만, 그만큼 과거에 대한 향수도 짙어지는 것일까. 고궁과 한옥, 그리고 오래된 노포들이 뿜어내는 도심의 아우라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있다.

특히 ‘전통적’인 것이라 여겨지는 문화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는 일등공신이다. 그런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장소들이 바로 관광의 단골코스가 되는 것일 테다. 서촌도 예외는 아니었다. 경복궁을 지나쳐 서촌의 골목으로 들어서기까지, 한복을 입은 외국인 관광객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다. 우리나라 문화를 즐겁게 경험하고 추억으로 남겨가는 그들의 모습에 고마움과 뿌듯함 같은 감정이 들어야 마땅하겠으나, 한편으론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서촌의 한복 대여점들.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영어 광고판이 눈에 띈다. ⓒ김지나
서촌의 한복 대여점들.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영어 광고판이 눈에 띈다. ⓒ김지나

할로윈 유령분장 하듯 한복 체험

소위 ‘퓨전한복’이라 불리는 대여용 한복들에 대한 불만은 아니었다. 한복의 변신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이제 고리타분하다. 전통은 얼마든지 변형될 수 있고 문화는 향유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진짜 한복’이라 규정하는 것과는 많이 다른 모양새지만, 퓨전한복을 입고 즐기는 사람들의 행위는 이미 경복궁 일대의 문화가 돼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퓨전한복이 성행하는 것이 불편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그것이 우리의 생활 속에서 진화된 문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한복 체험은 마치 ‘코스프레’를 하듯 한나절 즐기는 이벤트다. 할로윈에 유령 분장을 하는 것과 다를 게 없는 것이다.

한옥 경관에 대한 관심도 마찬가지다. 서촌 골목 곳곳에 숨어 있듯 간간이 모습을 드러내는 한옥들은 분명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옥을 경험하는 방법은 ‘거주’가 아니라 ‘소비’다. 게스트하우스나 호텔로 개조한 한옥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카페로 꾸며진 한옥에서 그 이미지를 소비한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인 대오서점은 더 이상 서점이 아니게 됐다. 카페와 기념품 수입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인기 여가수의 앨범 자켓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인증샷’을 찍기 위해 들르는 관광지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한옥 경관에 대한 관심은 서촌의 지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원래 살던 주민들은 내몰리고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상업 공간들이 들어오는, 소위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났다. 이것으로 일상 속 삶에 기반을 두고 한옥을 향유하는 문화가 싹트는 것은 더욱 기대하기 어렵게 된 셈이었다.

카페로 운영되고 있는 한옥 건물. 한옥카페는 서촌에서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 ⓒ김지나
카페로 운영되고 있는 한옥 건물. 한옥카페는 서촌에서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 ⓒ김지나

‘생활화’와는 거리 먼 단순 ‘소비’

서촌에서 ‘전통’이나 ‘역사’는 그저 소비하기 좋은 상품이 되어 가고 있다. 한옥, 한복 등 우리 전통문화를 생활화하겠다는 정책적인 목표가 세워지고 시민들의 공감대를 만들고자 하고 있지만, 서촌에서 마주한 현실은 여전히 생활화와는 거리가 먼 이미지의 소비에 그쳐 있었다.

‘생활화’란 단지 대중적으로 널리 퍼뜨린다는 양적인 측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향유되는 새로운 방법을 제안하는 질적인 문제다. 전통이 ‘트렌디함’의 옷을 입고 대중에게 매력적인 콘텐츠가 되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나, 그것이 상업의 수단으로 치닫기보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을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서촌에서 전통과 역사를 즐기는 것이 서울의 ‘문화’라고 불릴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면,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한 해답도 찾을 수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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