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 반열에 오르고자 하는 황교안의 고집
  •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5.17 17:00
  • 호수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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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종찬의 민심풍향계] 청와대와 한국당, ‘1대1 영수회담’ 놓고 ‘밀당’하는 3가지 속사정

패스트트랙(신속안건처리)으로 깊어진 여야 간 골이 좀처럼 메워지지 않고 있다. 이 와중에 문재인 대통령은 야당 대표들에게 회담을 제의했다. 각 당 원내대표와의 여·야·정 협의체 만남 제안도 뒤따랐다. ‘영수회담’은 주로 정치세력의 양대 리더가 만나는 담판적 성격이 강하다. 일각에서 영수회담이라는 표현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지만, 여당은 권위주의 시대의 산물이라며 명칭 사용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역력하다. 최근 이 영수회담을 놓고 청와대와 제1야당 간 신경전이 뜨겁다.

영수회담은 왜 하는 것일까. 대체로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의 만남은 대통령이 먼저 제의하게 된다. 역대 만남을 보더라도 대통령의 힘이 좀 빠지고 있을 때 만나는 경우가 많았다. 국정 동력이 주춤하는 시기에 야당 대표와 만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시도로 볼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임기 동안 모두 8번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표와 만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두 번 만났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손학규· 정세균 전 통합민주당 대표를 만났다. 모두 ‘영수회담’으로 일컫는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의 일대일 독대 자리였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5월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3차 장외집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 연합뉴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5월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3차 장외집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대중, 제1야당 대표 8번이나 만나

수평적 정권교체에 성공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임기 동안 8차례나 야당 대표를 독대한 것은 지금 국가 지도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임기 동안 일대일 회담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여당 대표와 야당 대표를 함께 불러 만난 회담 한 번이 고작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4월13일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를 청와대에서 만났다. 정리하면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일대일 회담은 대통령의 지지율이 빠질 때이고 야당 대표는 대선후보급의 강력한 리더였던 경우가 많았다. 영수회담이 협치의 척도라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는 셈이다. 

그렇다면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일대일 만남은 효과가 있었을까. 서로의 주장을 반복하다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러나 효과가 있기는 했다. 부분적인 정치적 조정이 이뤄지기도 했다. 특히 지난해 문 대통령은 홍준표 전 대표를 만나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협조를 구했고 인사 문제에 대한 홍 대표의 의견을 경청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임기 만 2년을 넘어 3년 차에 본격 접어든 문 대통령은 갈 길이 멀다. 여론조사기관이 내놓은 취임 2주년 정부 평가는 대체로 싸늘하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40%대로 높은 편이지만 부정 평가 또한 그에 못지않은 수준이다. 문 대통령은 돌파구 마련을 위해 야당 대표들과의 회담을 제의해 둔 상태다. 그러나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대통령의 회담 제의에 대해 자신과의 단독회담을 역제안하고 있다. 청와대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양측 간 조금의 양보도 없이 밀고 당기기가 이어지고 있다. 과연 어떤 속사정이 있는 것일까. 

청와대, 한국당 배제한 회담도 어려워

먼저 문 대통령은 국면 전환이 절실하다. 취임 2주년 성적표는 초라했다. 야당과의 협치에 대한 평가 역시 뼈아픈 대목이다. 알앤써치가 데일리안의 의뢰를 받아 지난 5월6~7일 실시한 조사(자세한 개요는 그래프에 표시)에서 ‘문 대통령이 야당과 협치를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물어본 결과, ‘잘하고 있다’는 긍정 평가는 41.9%로 절반을 넘기지 못했다. 반면에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 평가는 51.9%였다. 지역별로 호남을 제외한 서울, 충청, TK(대구·경북), PK(부산·울산·경남)는 문 대통령이 야당과 협치를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과반을 웃돌았다(표①).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연일 몸살을 앓고 있는 문 대통령은 중도층 지지층마저 흔들리고 있다. 선거에서 소속 정당 후보들의 당락에 중도층 표심은 결정적이다. 임기 3년 차 국면 전환을 해야 하는 문 대통령으로선 회담 제의가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렇지만 황 대표와 단독회담을 하는 경우 야당 대선후보의 존재감을 부각시켜주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계속 ‘밀당’을 하게 되는 이유다.

황교안 대표가 ‘밀당’하는 이유는 더 뚜렷하다. 극적인 존재감 부상을 노리기 때문이다. 아직 초보 정치인이나 다름없는 황 대표는 차기 대선후보로 떠올랐지만 아직 3년이나 남았다. 내년 총선까지 당을 흔들림 없이 이끌어 가야 하는 당 대표로서 정통성을 제고하거나 대통령 수준에 버금가는 존재감을 확보하려는 노림수다. 보수진영의 차기 대선후보로 급부상했지만 아직 파괴력은 제한적이다.

칸타코리아가 SBS의 의뢰를 받아 지난 5월7~8일 실시한 조사(자세한 개요는 그래프에 표시)에서 ‘내일 대통령선거가 있다면 누구에게 투표할지’ 물어본 결과, 황 대표 16.1%, 이낙연 국무총리 14.1%로 나타났다. 압도적이지 않다. 특히 향후 확장성에 있어 중요한 무당층에서 황 대표는 10.5%에 그쳤다(표②). 야당 대표가 모두 회담하는 자리라면 패스트트랙으로 정치적 ‘왕따’가 되어 버린 한국당 대표가 부각될 리 만무하다. 대통령과 단독회담을 해야만 권위적인 용어지만 ‘영수’ 반열에 오르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한국당 대표를 제외하지 못하고 ‘밀당’을 계속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민심이다. 리얼미터가 YTN의 의뢰를 받아 5월3일 실시한 조사(자세한 개요는 그래프에 표시)에서 ‘민생·경제·재난예방 및 피해자 지원을 중심으로 한 추경 예산안을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보는지’ 물어본 결과, ‘현 추경안에 동의하는 정당들만 시급처리’가 40.9%로 가장 높았다. 다음은 ‘현 추경안을 여야 전체가 합의처리’ 의견이 32.3%로 나타났다. ‘정부가 재해 추경안만 다시 제출’은 18.1%였다. ‘동의하는 정당들만 시급처리’해야 한다는 응답이 가장 높았지만, 나머지 두 의견을 합하면 절반이 넘는다. 추경안마저 강행 처리하면 패스트트랙의 갈등 상처는 더 깊어지게 된다. 선거에서 부동층 투표자인 무당층에서 가장 높은 의견은 ‘현 추경안을 여야 전체가 합의처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표③). 

민생투쟁대장정에 나선 황 대표 역시 현장에서 추경안 관련 민심을 듣지 않을 리 없다. 임기가 3년이나 남은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다. 포용·협치를 뭉개고 3년 동안 국정을 이어가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깨는 것만큼이나 무모한 태도다. 대통령과 제1야당의 대표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이다. 국민의 요구에 응답해야 하는 두 인물이 머리를 맞대야 하는 이유는 분명해졌다. 서로의 정치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밀당이 전략적으로 필요할지 몰라도 명분은 없다. 답은 정해져 있다. 먼저 내려놓는 쪽이 당장은 몰라도 궁극적으로 승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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