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악인전》, 뻔할 것이라는 예상은 버려라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5.18 15:00
  • 호수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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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 없는 폭주기관차

The Gangster, The Cop, The Devil. 《악인전》의 영어 제목이다. 이는 영화의 인물 구조를 한눈에 제시한 제목이기도 하다. 조직폭력배 두목 장동수(마동석), 강력반 열혈 형사 정태석(김무열), 연쇄살인마 K(김성규)라는 세 개의 꼭짓점. 《악인전》은 이 세 인물이 격돌하는 과정을 추동 삼아 나아간다. 보기도 전에 피로감과 기시감이 느껴지기도 하는 범죄 액션이지만, 이 장르에 이골이 난 관객에게도 새롭게 다가갈 만한 지점이 있다. 브레이크 없는 폭주기관차. 《악인전》 같은 영화를 두고 하는 말이다.

영화 《악인전》의 한 장면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 《악인전》의 한 장면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악인 잡기 위해 손잡은 악인들

나쁜 놈들이 더 나쁜 놈을 잡기 위해 손을 잡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 《악인전》은 이 질문에서부터 출발한 영화다. 조직폭력배, 형사, 연쇄살인마라는 키워드는 범죄 액션영화에서 이미 익숙할 대로 익숙한 소재다. 보통 형사를 중심으로 관계가 엮인다. 폭력배와 형사, 살인마와 형사로 인물 관계가 제시되는 식이다. 《악인전》은 이 모든 캐릭터를 한데 모았다는 점에서 차별점을 지닌다. 각각은 친숙하지만 셋의 조합은 신선하다.

태석은 최근 일어난 무차별 살인을 같은 자의 소행으로 짐작한다. 그사이 동수는 우연찮게 K의 표적이 되었다가 격투 끝에 간신히 목숨을 구한다. 거대 조직폭력배 두목이 유일한 생존자이자 목격자가 된 상황. 범인 잡기에 혈안이 돼 있던 태석은 K를 함께 찾자는 동수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태석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K를 심판하기 위해, 동수는 놈을 찾아 복수하기 위해 둘은 손을 맞잡는다. 먼저 찾는 사람이 각자의 방식대로 K를 처벌하려는 것이다. 누가 먼저 K를 찾아 응징할 것인가. 이는 영화 전체를 지탱하는 중요한 긴장이다.

《악인전》은 범죄 액션 장르에서 관객이 느끼는 진부함을 애초에 정확하게 파악한 작품이라는 인상을 준다. 이 영화의 선택들은 예상을 조금씩 비껴간다. 연쇄살인마의 타깃이 되는 자가 누구도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조직폭력배의 두목이라는 것부터가 그렇다. 이는 K를 무차별 살인을 저지르는 존재로 묘사하면서 가능해진 설정이었다. 이 영화 안에서는 희생자의 범주가 적어도 연약한 부녀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선이 악을 이기는 구도 역시 피해 간다. 가령 《베테랑》(2015)과 《범죄도시》(2017)처럼 형사 조직이 분투 끝에 악을 소탕하는 식의 익숙한 쾌감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동수의 출발점은 개인의 복수심이었으나 그는 의도치 않게 사회 공익의 목적에 기여한다. 영화 중간중간 동수의 조직은 다른 조직과 세력 다툼을 벌이지만, 이들은 마치 강력반 형사들처럼 범인의 흔적을 찾아 헤집고 다니며 활약한다. 반면 태석에게는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한 명분보다 경찰 내 다른 조직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더 크게 보인다. 이 과정에서 선과 악의 경계는 흐려진다.

표면적으로는 동수와 태석의 버디무비지만,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6)처럼 인물들의 심리를 눅진하게 따라가는 드라마도 아니다. 오히려 《악인전》은 인물들의 개별적 사연과 심리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인물들은 각각의 목적을 완수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뿐이다. 심지어 K에게서조차 뚜렷한 살인의 동기가 드러나지 않는다. 오로지 쫓고, 잡는다는 단순한 행위에만 집중한 선택은 오히려 강점이 된다.

이원태 감독은 “악과 악이 대결하는 모순적 상황을 통해 상대적으로 작동하는 선악의 문제를 다뤄보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밝힌 바 있다. 그는 2005년 성인오락실을 둘러싼 조직폭력배들의 이권 다툼을 다룬 기사들에서 영감을 얻어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극 중 시대 배경 역시 2005년이다.

《악인전》은 개봉 전부터 낭보가 잇따랐다. 제72회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초청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현지시간으로 오는 5월22일 오후 10시30분 칸 뤼미에르 극장에서 레드카펫과 공식 상영을 가진다. 해외 선판매도 호조를 보였다. 3분짜리 프로모션 영상만으로 미국, 캐나다, 일본 등 104개국 선판매가 이뤄졌다. 할리우드 리메이크도 확정이다. 실베스터 스탤론이 이끄는 발보아픽처스가 제작을 맡는다.


믿음직한 마동석, 발군의 김성규

중심에는 뭐니 뭐니 해도 마동석이 있다. ‘장르가 마동석’이라 불릴 만큼 연타석 흥행 홈런을 날려온 그다. 마동석의 파괴력은 악한 세력에 맞서는 정의의 주먹, 거기에 더해 외모와는 맞지 않는 귀여움을 갖춘 캐릭터를 연기했을 때 나오곤 했다. 《부산행》(2016), 《범죄도시》 등이 그 예다. ‘한국형 슈퍼 히어로’로 불려도 이상할 것 없는 그는 아닌 게 아니라 《신과 함께-인과 연》(2018)에서는 아예 인간을 지키는 성주신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정반대다. 동수는 분명한 악인이며, 격렬한 태석의 캐릭터에 견주면 되레 차갑게 가라앉는 캐릭터다. 배우의 이미지 활용 역시 예상을 비껴가는 것이다. 첫 등장에서부터 이 인물이 보여주는 잔혹함은 상상 이상이다. 《범죄도시》, 《성난황소》(2018), 《챔피언》(2018) 등으로 이어진 마동석 표 캐릭터의 또 다른 변주다. 확고하게 자신만의 이미지를 갖춘 배우이자 명석한 기획자라는 점은 마동석을 특별하게 만든다. 《악인전》 역시 시나리오를 본 그가 BA 엔터테인먼트 장원석 대표에게 소개하며 제작이 이뤄진 경우다. 할리우드 리메이크에서는 마동석이 주연과 프로듀서를 겸한다. 

그와 합을 맞추는 김무열이 좋은 카운터파트가 되어 주는 가운데, 살인마 K 역을 연기한 김성규가 발군이다. 《범죄도시》에서 장첸파 조직원을 연기했던 그는 《악인전》을 통해 기이하리만큼 섬뜩한 매력을 뿜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에서 의문의 남자 영신을 연기하며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은 배우다. 《범죄도시》가 진선규를 충무로에 널리 알렸다면, 이번엔 이 배우의 차례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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