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자제들이 마약상들 옥살이 도와준다”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19.05.20 08:00
  • 호수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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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마약 중독자’의 ‘VIP’ 마약 유통실태 증언
“마약상들, 경찰에는 ‘서민 고객’ 명단만 발설”

“손등 보고 알았지. 저 놈 ‘초짜’구나.”

서울 영등포구 마약류중독재활센터에서 만난 김아무개씨(53)는 최근 필로폰 투약 혐의로 구속된 배우 박유천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김씨는 “손등에 상처까지 내가면서 약을 했다는 건 마음이 급했다는 것이다. ‘걸릴 수 있다’란 생각도 못할 만큼 빠져 있었다는 건데, 경력이 오래된 ‘프로(pro)’들은 그런 짓을 절대 안 한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박유천의 애인 황하나는 지인한테 직접 주사를 놓았다지 않나. 마약을 모르던 사람을 중독시키면서 희열을 느끼는 ‘VIP’들이 많아서 놀랍지도 않다. 원래 마약이란 게 그렇다. 절대 혼자서 안 하고, 조용히 안 하고, 한  번만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씨는 경찰도, 마약 관련 전문가도 아니다. 그런 그가 마약에 관해 얘기할 수 있는 이유는 본인이 ‘마약 중증 중독자’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마약과 함께 30년 세월을 보냈다. ‘88서울올림픽’으로 온 나라가 들썩일 때,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팔에 직접 주사를 꽂았다. 그때부터 그의 삶에 마약이 없었던 시간은 없었다. 매일 마약을 하거나 팔다가 나중에는 마약 공급 정점에까지 섰다. 그의 인생이 곧 대한민국 마약 시장의 ‘근현대사’인 셈이다.

5월9일 시사저널과 만난 김씨는 최근 대한민국 뉴스면을 도배하고 있는 마약 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도 마약을 뿌린 ‘상선’들이 돈 있는 재벌들로부터 금전 지원을 받고 옥살이를 하고 있다”며 국내 마약 공급 시장의 적나라한 실체에 대해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 시사저널 임준선
ⓒ 시사저널 임준선

1988년 ‘아는 형들’과 꾸린 ‘마약 패밀리’

마약 범죄자인 김씨의 삶에 반전은 없다. 할머니 손에 자란 그는 어릴 적부터 불우했다. 환경이 범죄의 핑계는 될 수 없지만 적어도 계기는 됐다. 집이 싫어 거리로 나갔고, 거리에서 만난 동네 형·동생들과 무리 지어 다녔다. 그 무리가 곧 동네 골목의 왕이 됐고, 힘을 과시하기 위해 괜한 사람을 때렸다. 그래서 그는 10대 시절 소년수로만 네 번 복역했다. 단, 그때까지만 해도 그의 삶은 남들보다 거칠었을 뿐, ‘약’과는 거리가 멀었다. 

“10대 시절 늘 사고를 쳤다. 소매치기에 강도에, 온갖 범죄를 저질렀다. 경찰에 여러 번 잡혀갔다. 동네에서 ‘나쁜 짓’으로 유명했지만 그렇다고 10대부터 마약을 하지는 않았다. 1980년대의 마약은 일반인들로서는 정말 구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정말 깡패들 중에서도 힘 있는 깡패들이나 구하는 그런 게 마약이었다.”

남의 일이라 생각했던 마약의 유혹은 예고 없이 김씨를 덮쳤다. 김씨가 23세 되던 1988년 어느 날, 동네에서 만난 형·동생 7명이 모였다. 그중 축구 선수 출신이던 한 형이 ‘좋은 것’이 있다며 그의 손에 무언가를 쥐여줬다. 그는 그날 처음으로 일명 ‘필로폰’으로 불리는 마약 *메스암페타민을 마주했다. 온갖 범죄를 저질러온 그에게도 마약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러나 “마치 전국 축구대회에서 첫 골을 넣은 기분”이라는 형의 권유에 그는 필로폰을 투약하게 된다. 그날 같이 마약을 한 4명의 친구들은 훗날 모두 대한민국 마약계에서 유명한 ‘상선’(공급책이나 밀수책)이 된다.

“그냥 좋다고 하니까 (필로폰을) 놓은 것이다. 이유도 없었고 계획도 없었다. 그런데 막상 필로폰을 했는데, 잠깐 짜릿하고 생각보다 큰 느낌이 없었다. 아쉽더라. 머릿속에 ‘더 센 자극’이 맴돌았다. 그래서 바로 다음 날 다시 그 형을 찾아가서 전날보다 3배 가까운 양의 필로폰을 투약했는데 심장이 미칠 듯이 뛰더라.”

그날 이후 김씨는 매일같이 마약을 구했다. 필로폰뿐만 아니라 대마·해시시·엑스터시 등 온갖 종류의 마약을 접했다. 물론 약을 하면서도 사랑을 했고, 결혼도 했다. 딸아이도 얻었다. 그러나 남들에겐 ‘1순위’였을 소중한 가정도 ‘마약의 그늘’에 가린 채 금세 잊혔다. 주변의 상선들은 김씨에게 돈 한 푼 받지 않고 매달 수백만원어치의 마약을 줬다. ‘뽕쟁이(마약 중독자)’  세계에서도 유명인이 된 김씨의 환심을 사 마약 판매망을 넓히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5월9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사무실에서 마약 중독 경험자 A씨가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5월9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사무실에서 마약 중독 경험자 A씨가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재벌 뽕쟁이’가 수사받지 않는 이유

1988년부터 2017년까지 김씨는 그렇게 마약의 바닥부터 꼭대기까지 30년을 훑었다. 국내 마약 시장을 굴리는 ‘카르텔(제조·판매 등을 하는 조직)’과 시스템에 관해서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 보니 최근 국내 언론을 도배하고 있는 각종 이슈들이 그에게는 낯설지 않다. 뉴스에 나오는 이름들과 범죄 행태, 각종 사건들이 그의 지인이자, 과거이자, 곧 본인이 저질렀던 ‘그 범죄’들이기 때문이다. 김씨가 언론 인터뷰에 어렵사리 응한 것도 공개된 뉴스 이면에 감춰진 마약의 실상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다.

가장 먼저 건넨 질문은 세간에 돌고 있는 ‘의혹들’이었다. 최근 언론의 도마에 오른 건 일부 재벌가 제자들과 마약상 간에 모종의 거래관계가 형성돼 있다는 의혹이다. 실제 올해 들어 SK그룹과 현대그룹의 3세가 잇따라 마약 수사 선상에 오른 가운데, 4년 전 마약범죄 수사 때 ‘봐주기 의혹’이 제기된 남양그룹 외손녀 역시 마약을 투약한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VIP 마약파티’가 실제 성행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새어 나왔다. 이 같은 일이 자행될 수 있는 배후로 국민들은 ‘경찰-마약상-재벌’ 간의 유착 관계를 지목하고 있다. 과연 이 같은 의혹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과장일까. 

한참을 고민하던 김씨는 “이걸 꼭 말하고 싶었다”며 얘기를 시작했다. 김씨는 “제발 돈 없는 사람들이 쉽게 마약을 시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말이다. 그런 사람들은 그냥 마약상들이 경찰에게 넘기는 ‘보험’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말한 ‘보험’이란 무엇일까. 김씨는 “마약을 수없이 사고팔다 보면 경찰에 잡힐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상선들이 계속 풀려나고, 또다시 장사를 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며 기자에게 되물었다. 이어 “경찰은 검거 과정에서 무조건 마약 상선들과 딜(거래)을 한다. 같이 (마약을) 한 사람이나 약을 사간 사람들을 말하면, 형을 줄여주거나 (수사 선상에서) 빼주겠다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상선은 준비해 뒀던 ‘리스트’를 제공하고 형량을 낮추거나 풀려나게 된다. 이 리스트가 바로 보험이고, 쉽게 말해 자신이 잡혔을 때 경찰에게 팔아넘길 마약 구매자의 명단”이라고 했다. 

김씨는 이 리스트에 적히는 기준이 곧 ‘부’나 ‘권력’이라고 했다. 즉, 돈과 사회적 지위가 있는 재벌이나 정치인, 고위층의 자녀들은 리스트에 포함시키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마약상들이 십여 번 가까이 잡혀가고 경찰의 수사를 받으면서도, 소위 강남 바닥의 ‘이름난 자제’들은 수사조차 받지 않는 상황이 연출된다는 것이다. 다만 마약상과 ‘VIP’ 간에도 암묵적인 룰(rule)이 있다고 했다. VIP 고객의 이름을 불지 않는 대신, 이 VIP들이 마약 상선들의 옥살이를 돕는 ‘스폰서’ 역할을 하거나 재판당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변호사 비용을 대신 내준다는 게 김씨의 주장이다. 마약상들은 이 과정에서 형량을 줄이면서 돈도 벌고, VIP들은 마음 편히 다시 마약을 즐길 수 있는 ‘검은 상생(相生)’ 관계가 형성되는 셈이다.

결국 이 리스트에는 ‘만만한 이들’의 이름이 오를 수밖에 없다. 돈은 없지만 이미 마약에 빠진 서민층이 주 타깃이다. 마약상들에게 이들은 ‘큰돈’이 되지도 ‘큰 위협’이 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이들과 마약을 주고받은 정황들을 고의적으로 기록하고, 저장하고, 흘린다. 그래서 때가 되면 이 명단을 경찰에 넘기고, 경찰은 건네받은 리스트를 통해 실적을 낸다는 게 김씨의 주장이다. 

김씨는 이 리스트를 만드는 작업이 최근 들어 부쩍 쉬워졌다고 고백했다. 과거와 달리 마약 판매가 SNS를 통해 얼굴을 맞대지 않고 이뤄지다 보니, 구매자들이 판매상을 너무 쉽게 믿고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다. 마약 매매 과정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판매채널로 알려진 게 ‘텔레그램’이다. 텔레그램은 보안성이 강한 메신저로 알려져 있어 마약 거래의 장터로 악용되고 있다. 구매자들은 텔레그램을 통하면 자신의 신분 정보 등을 감쪽같이 속일 수 있다고 믿는다. 또 판매상들이 ‘대포통장’이나 비트코인 등을 이용해 돈을 받기에 구매자와의 거래 내역을 남기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순진한 착각’이란 게 김씨의 주장이다. 

김씨는 “마치 얼굴을 보지 않고 마약을 사고파니까, 이런 시스템이 정말 안전한 것이라고 착각하곤 하는데 미련한 생각”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마약 상선들은 텔레그램이나 비트코인을 사용해 거래를 하더라도, 그 사람의 프로필부터 접속 시간, 소위 마약을 ‘떨구기’ 한 장소, 대포통장으로 거래한 금액과 일시 등등을 전부 기록해 둔다. 마약을 파는 사람들은 늘 이런 식이다. 돈 없는 이들을 보험 삼아 돈 있는 자들에게 마약을 파는 구조가 대한민국의 마약 시스템”이라고 강조했다.

2018년 10월15일 서울지방경찰청에 압수된 대량의 필로폰이 놓여 있다. ⓒ 연합뉴스
2018년 10월15일 서울지방경찰청에 압수된 대량의 필로폰이 놓여 있다. ⓒ 연합뉴스

말하지 못한 진실…“힘 있는 자들은 다르더라”

김씨는 수사 당국이 VIP들과 실제 유착됐을 수 있다는 의심을 마약상들도 갖고 있다고 했다. 대중이 검경에 보내는 의혹의 시선이란 게 이른바 ‘멋모르는’ 사람들의 무지(無知) 탓이 아니란 얘기다. 마약 탓에 수도 없이 잡혀가고, 수사를 받았다는 업계 내의 범죄자들조차 권력가들이 수사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실제 사례가 자유한국당 소속 김무성 의원의 사위인 이아무개씨의 마약 투약 사건이었다. 

“검찰에서 이씨 집을 압수수색하면서, 제3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주사기가 발견됐는데, 결국 검찰은 그걸 끝까지 추적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감옥에서 그 뉴스를 봤는데, 다른 애들(마약사범들)과 보면서 의아했다. 마약은 늘 행위중독이 따르고 공범이 있기 마련이다. 마약을 하고 성관계를 하든, 도박을 하든 절대 혼자는 안 한다. 그런데 그 ‘누구’를 잡는 걸 검찰 스스로 포기한다? 처음 보는, 이해가 안 가는 장면이었다.”

김씨는 이 같은 말을 하면서도 한참을 고민했다. 본인은 이 업계에서 은퇴했지만, 자신이 입을 잘못 열면 다른 ‘동생들’이 다칠 수 있다는 게 그의 염려였다. 그러면서도 인터뷰 중간중간 본인도 모르게 VIP들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유명 배우와 정치인의 이름도 노출됐다. 두 사람 모두 언론의 마약 관련 사건으로 구설에 오르내렸지만, 본인들은 이를 전면 부정했던 인물들이다. 

“형님, 한 번 하시죠?” 끝나지 않은 유혹 

30년 마약 경험자인 김씨가 마약으로 달게 된 전과는 모두 10개. 김씨는 약으로 얼룩진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고 있다. 언론과의 인터뷰에 응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자신과 같은 삶’을 남들은 살아가지 않았으면 한다는 게 김씨의 바람이다. 필로폰을 투약하며 얻었던 쾌락은 신용불량의 늪과 가족과의 단절 등으로 돌아왔다. 그에게는 23살 된 딸이 있지만, 자신의 과오(過誤) 탓에 지금은 연락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김씨를 힘들게 하는 것은 같이 마약을 했던 ‘어릴 적 친구들’의 몰락이다. 김씨는 “마약의 최후는 곧 비관이다. 나이 들어가면서 몸도 마음도 망가지는 자신을 보면 큰 좌절감을 느낀다. 그래서 같이 마약을 했던 이들 대부분이 자살을 하거나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고 전했다. 

김씨는 2017년 1월 출소했다. 마약을 끊어낸 지 2년4개월 가까이 지난 셈이다. 그러나 아직 김씨 스스로가 벌이는 ‘마약과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도 주변에는 마약을 권하고, 마약을 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는 게 김씨의 전언이다. 출소한 당일부터 아는 동생이 찾아와 “형님, 드릴 건 없고 이거(마약) 한 번 하시죠?”라고 다시금 필로폰을 권했다고 김씨는 말했다. 김씨는 “자다가도 전화가 오면 떨린다. 그래서 아예 (마약을 권하는) 사람들의 번호를 차단하고 연락을 받지 않는다. 30년을 했는데, 마약을 끊는 데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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