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자유공원 밖으로 쫓겨난 ‘전두환 비석’
  • 정성환 호남취재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19.05.17 17:3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뒤집힌 전두환 기념석’…5월 단체 반발, 광주시 곤혹
5월 영령 恨 풀릴까…5월이면 ‘전두환 비석 밟기 북적’
‘전두환 비석을 밟느냐’ 정치성향 가늠자,문 대통령 지난 2016년 밟아

5·18민주화운동 당시 무차별한 진압 작전을 수행한 제11공수여단 정문 앞에 있던 이른바 ‘전두환 비석’이 광주 5·18자유공원 주변의 화장실 앞으로 옮겨졌다. 특히 11공수 준공 기념석은 전두환에 분노한 시민들이 밟을 수 있도록 거꾸로 눕혀졌다. 그러나 일부 5.18단체가 11공수 이전 기념석의 5·18자유공원에 이전 자체를 반대하고 나서 광주시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담양 제11공수서 5·18자유공원 화장실 앞으로 뒤집혀 이전 

광주시 등은 16일 오전 전남 담양군 11공수여단의 ‘이전 기념석’을 철거해 광주 서구 치평동 5·18자유공원으로 옮겼다. 이른바 ‘전두환 비석’에는 ‘선진조국의 선봉 대통령 전두환(先進祖國의 先鋒 大統領 全斗煥)’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광주시 등은 16일 오전 전남 담양군 11공수여단의 ‘이전 기념석’을 철거해 광주 서구 치평동 5·18자유공원으로 옮겼다. 이른바 ‘전두환 비석’에는 ‘선진조국의 선봉 대통령 전두환(先進祖國의 先鋒 大統領 全斗煥)’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5월 17일 광주시와 5월 단체에 따르면 시는 16일 오전 11시께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이름이 새겨진 11공수여단 부대 준공기념석을 광주 서구 5·18자유공원 헌병대 영창 밖 화장실 앞으로 옮겼다. 

이날 4톤 크레인 트럭에 실려 온 기념석은 5.18 단체에 의해 시민들이 밟을 수 있도록 거꾸로 눕혀졌다. 준공기념비를 눕혀 놔 시민들이 밟을 수 있도록 한 것은 무고한 시민을 학살하고 헌정 질서를 파괴한 전두환과 신군부에 대한 분노의 의미로 해석된다. 

당초 이른바 ‘전두환 비석’은 5.18기념사업심의위원회의의 결정에 따라 자유공원 내 헌병대 영창 오른쪽 편에 놓일 예정이었다. 앞서 광주시와 국방부, 5월 단체 관계자는 14일 광주시청에서 회의를 열고 이 같이 결정했다.

그러나 5월 단체 회원들이 강하게 항의하면서 광주시는 조율 끝에 전두환 기념석을 영창 옆이 아닌 공원 밖 화장실 앞에 이전키로 했다. 

이 준공 기념석은 1983년 11공수여단이 전남 담양으로 부대를 이전하면서 세워진 것이다. 가로 3m, 세로 2.5m 크기의 자연석에 ‘선진조국의 선봉’이라는 글과 함께 ‘대통령 전두환’이 적혀있다. 

제11공수여단은 5.17 계엄 조치 이후 5·18민주화운동 당시 제7공수와 함께 광주 금남로 옛 전남도청 앞에 계엄군으로 투입돼 집단 발포에 직접 관여했던 부대다. 이 때문에 전두환이 계엄군의 전승기념비 격으로 건립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인 바 있다. 

 

“전두환 비석 절대 안돼” vs “교육자료 활용”  

광주시 등은 16일 오전 전남 담양군 11공수여단의 ‘이전 기념석’을 철거해 광주 서구 치평동 5·18자유공원으로 옮겼다. 17일 5월 단체 회원들이 군화발로 비석을 밟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광주시 등은 16일 오전 전남 담양군 11공수여단의 ‘이전 기념석’을 철거해 광주 서구 치평동 5·18자유공원으로 옮겼다. 17일 5월 단체 회원들이 군화발로 비석을 밟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광주시와 일부 5월 단체는 이 기념석이 5·18민주화운동과 연관된 역사적 상징물이라고 보고 이전을 추진해왔다. 광주시 관계자는 기념석 이전 배경에 대해 “기념석은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역사적 상징물 가운데 하나”라며 “교육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이전했다”고 했다.

하지만 다른 5·18단체의 시각은 다르다. 광주 상무지구 5·18자유공원에서 학생들의 ‘5·18 헌병대 영창체험’을 돕고 있는 5·18구속부상자회 혁신위는 전두환 기념석 이전은 ‘절대 안된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이동계 5·18구속부상회 회원은 “전두환씨가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으로 무차별적인 진압작전을 수행한 11공수여단의 ‘전승기념비’ 격으로 설치한 것인데 이 비석을 5 ·18자유공원으로 옮기는 것 발상 자체가 어처구니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승기념비’가 어떻게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교육 자료가 될 수 있겠는가. ‘대통령 전두환’만 홍보하는 꼴”이라며 격분했다.  

또 다른 5월 단체 회원도 “전두환 이름이 쓰인 비석이 5·18 자유공원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광주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시장부터 정신이 나간  사람들이다. 5·18행사가 끝나면 시청에 따지러 가겠다”고 역정을 냈다.

광주시는 뜻밖의 ’암초‘를 만나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광주시 관계자는 “전두환을 찬양하려는 것도 아니고 비석을 눕힌 채로 두는 것이다. 망월묘역의 전두환 비석처럼 밟기도 하면서 상징적 의미를 가진 교육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전시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자 5·18구속부상회 회원들은 “광주시가 심의위 결정만 믿고 생각없이 이전기념비를 옮겨왔다가 밑바닥이 뾰쪽해 똑바로 세울 수 없는데다 우리가 강하게 반발해 어쩔 수 없이 눕혀놓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1989년 부숴 민주묘지 입구 바닥에 설치, 수많은 참배객들 밟아 닳고 닳아

광주 북구 운정동 민족민주열사 묘역 입구쪽 땅에 반쯤 파묻혀져 있는 ‘전두환 비석’. 수많은 참배객들이 밟아 닳고 닳았다. ⓒ시사저널 정성환
광주 북구 운정동 민족민주열사 묘역 입구쪽 땅에 반쯤 파묻혀져 있는 ‘전두환 비석’. 수많은 참배객들이 밟아 닳고 닳았다. ⓒ시사저널 정성환

광주 북구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 입구 바닥에도 이른바 ‘전두환 비석’이 있다. 전 전 대통령이 담양의 한 마을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전두환  대통령 각하 내외분 민박 마을’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1989년 군부 정권 이후 광주·전남 민주동지회가 이 기념비를 부숴 국립 5·18 민주묘지 묘역 입구에 묻어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도록 했다. ‘전두환 비석 밟기’는 전두환을 향한 광주시민의 분노를 상징한다. 기념비 안내문에는 ‘영령들의 원혼을 달래는 마음으로 이 비석을 짓밟아 달라’고 적혀있다. 

‘전두환 비석 밟기’는 망월동묘지의 통과의례이기도 하다. 여야 정치인들이 묘역 방문 시 ‘전두환 비석을 밟느냐 밟지 않느냐’로 해당 정치인의 역사의식과 정치성향을 엿볼 수 있는 가늠자이기도 했다. 

이낙연 국무총리, 세월호 유가족 등 많은 이들이 이 비석을 밟고 지나갔다. 국가폭력에 스러진 백남기 농민과 김홍일 전 의원도 전두환 비석을 밟고 망월동묘지에 안장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2016년 이 비석을 밟고 지나간 적이 있다. 그간 워낙 많은 참배객들이 밟고 지나간 탓에 비문은 내용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닳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