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 대립 그대로 드러난 서른아홉 번째 5·18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9.05.19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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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5·18 왜곡 논란
관련 법안들은 수개월째 국회 계류 중

5·18광주민주화운동 39주년 기념식이 끝난 지 하루가 지났지만, 이를 둘러싼 정치권의 신경전은 계속되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촉발시킨 각종 5·18 관련 논란들로 연신 으르렁대던 여야는 황교안 한국당 대표의 기념식 참석과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사 내용 등으로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그 가운데 국회 5·18진상규명위원회 출범과 5·18특별법 통과 등의 논의는 수개월째 정체돼 있다.

잊을 만하면 5.18 관련한 망언들로 끊임없이 충돌하던 여야는 이번 5·18을 앞두고 황교안 한국당 대표의 기념식 참석 여부를 중심으로 거센 말들을 주고 받았다. 정부여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 그리고 광주 시민들은 황 대표가 5.18 망언을 한 소속 의원들의 징계를 제대로 매듭짓지 못한 상태에서 기념식에 참석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거세게 항의했다. 이들은 5.18민주화운동이나 유가족에 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할 시, 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 5.18특별법 개정안도 한국당 탓에 발목이 잡혀 있다고 주장했다.

5월18일 광주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9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시민의 항의를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5월18일 광주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9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시민의 항의를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러한 정치권의 싸움에 시민들도 둘로 나뉘어 대립하면서, 기념식 전부터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5·18 하루 전 보수단체 회원들은 직접 광주를 찾아 5·18유공자 명단 공개를 외치며 들끓고 있던 광주 민심에 기름을 붓기도 했다. 광주 시민들은 “5·18이 언제까지 정치놀음에 휘둘려야 하느냐”며 기념식 시작도 전부터 울분을 토해냈다.

당일 기념식에 참석한 황 대표와 한국당 의원들은 물을 뿌리고 의자를 던지는 등 시민들의 거센 항의를 뚫고 힘겹게 기념식에 참석했다. 황교안 대표는 기념식 참석 후 입장문을 통해 “제가 기념식에 참석한 것은 환영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반드시 참석해야 할 곳이기 때문”이라며 “광주의 상처가 치유되고 시민들의 마음이 열릴 때까지 진정성을 갖고 광주를 찾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 대통령 "독재자 후예 아니면 5·18 다르게 볼 수 없어"

이날 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사를 두고도 정치권은 엇갈린 반응을 보이며 갈등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를 통해 “5·18을 부정하고 모욕하는 망언들이 거리낌 없이 큰 목소리로 외쳐지는 현실이 국민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 부끄럽다. 개인적으로는 헌법 전문에 5·18 정신을 담겠다고 한 약속을 지금까지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송구스럽다”고도 했다. 또한 “5·18 진실은 보수와 진보로 나뉠 수가 없다”고 강조한 문 대통령은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가 없다”고도 말했다.

이에 즉각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반쪽짜리 기념식’이라고 지적하며 “문 대통령은 독재자의 후예를 운운하며 사실상 우리 당을 겨냥한 발언을 했다”고 발끈했다. 정양석 원내수석부대표 역시 기념식 직후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이 너무 편 가르기보다는 아우르는 발언을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별히 문 대통령과 함께 이날 기념식에 참석했던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도 자신의 SNS에 한국당을 겨냥하는 입장을 내놓았다. 조 수석은 “5‧18은 현행 1987년 헌법의 뿌리”라며 “5‧18 폄훼 망발을 일삼는 자들, 정략적 목적과 이익을 위해 악행을 부추기거나 방조하며 이용하는 자들에게 이하 말을 보낸다. 우리 사람 되기 힘들어도 괴물이 되진 말자”라고 일침을 놨다.

5월18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 앞에서 광주 시민들이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향해 5·18 망언 의원들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5월18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 앞에서 광주 시민들이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향해 5·18 망언 의원들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치권, 정쟁보다 법안 처리에 몰두할 때

올해 초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5·18 망언 논란부터 시작해, 정치권에 끊임없이 5·18 이슈가 들끓었지만, 정작 통과를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5·18 관련 법안들은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방치돼 있다. 해당 망언 논란 이후 5·18 왜곡을 막기 위해 추진한 ‘5·18 특별법 개정안’은 물론, 5·18 당시 계엄군에 의한 성폭행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5·18 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도 계류 중이다.

2018년 3월 제정된 ‘5·18 진상규명 특별법’에 따라 국회가 진작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야 했지만, 이 역시 조사위원 추천을 두고 여야가 부딪치면서 첫발도 떼지 못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번 기념사에서 조사위 구성이 늦어지는 데 대해 “국회와 정치권이 더 큰 책임감을 가지고 노력해 주실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한국당 측은 “우리가 추천한 위원들을 청와대가 이유 없이 거부해 출범이 늦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어 향후 난항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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