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샌더스든, 바이든이든 나와!”
  • 김원식 국제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5.21 17:00
  • 호수 154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년 대선 앞두고 계산기 두드리기 시작한 ‘승부사’ 트럼프…“양극단 대결로 美 분열” 우려도

“Crazy Bernie”(정신 나간 버니), “Pathological Liar”(병적인 거짓말쟁이). 내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재선을 목표로 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지난 2016년 민주당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게 아쉽게 석패했지만, 다시 도전장을 던진 버니 샌더스 민주당 예비후보가 서로를 비난하며 부르는 말이다. 

46대 미국 대통령(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할 경우는 그대로 45대 대통령)을 뽑는 날짜는 내년 11월3일이다. 아직 18개월가량 남았다. 하지만 미 정가는 이미 민주당을 중심으로 2020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었다. 공화당은 아직 내부 경선 일정을 확정하지는 않았지만, 특별한 돌출 변수가 없는 한 현 트럼프 대통령이 공화당 후보로 확정돼 재선에 도전장을 던질 것이 확실하다. 

(왼쪽부터)버니 샌더스 미국 상원의원·조 바이든 전 미국 부통령 ⓒ AFP·AP 연합
(왼쪽부터)버니 샌더스 미국 상원의원·조 바이든 전 미국 부통령 ⓒ AFP·AP 연합

‘강세’ 바이든, 선명성 부족 약점

하지만 민주당은 초기부터 20명에 달하는 대선 예비후보들이 난립하는 상황이다. 현재 여론조사에서 가장 선두를 달리는 후보는 제일 늦게 도전장을 던진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다. 그 뒤를 2016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샌더스 상원의원이 바짝 추격하는 모양새다. 대부분의 정치 분석가들은 1년 가까이 펼쳐지는 민주당 내부 경선에서 결국 이 두 사람의 최종 결판으로 민주당 후보가 정해질 것으로 예측한다. 하지만 의외의 다크호스들도 적지 않아 또 어떤 돌풍이 불어닥칠지 섣불리 단정 지을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트위터를 통해 “나는 정신 나간(crazy) 샌더스와 졸린(sleepy) 바이든이 (민주당 내) 마지막 2명이 될 것으로 믿는다”고 비꼬면서 “누가 (최종 후보가) 되든지 맞닥뜨리길 기대하고 있다”고 두 사람을 유력 후보로 거론했다. 동물적인 정치 감각을 가졌다고 자평하는 그도 결국 이 두 사람 중 한 명을 자신과 막판에 상대할 대상으로 예상하고 미리 쐐기를 박는 모습이다. ‘미친’ 등의 뜻이 담긴 ‘crazy’나 ‘졸리고 생기가 없는’ 뜻이 담긴 ‘sleepy’라는 단어로 상대방의 이미지를 미리 폄하하며 특유의 트럼프식 ‘선수 치기’로 들이받는 수법이다.

선거 전문가들은 바이든 전 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맞대결을 펼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상당히 고전을 면치 못할 것으로 전망한다. 최근 한 여론조사의 가상대결에서도 42% 대 34%로 바이든이 8%포인트 앞선 것으로 나왔다. 이는 무엇보다도 바이든이 그만큼 지지층 확장력과 유연성이 더 크다는 것을 나타낸다. 특히 트럼프의 강력한 지지층인 백인 노동자층에서도 조 바이든 쪽으로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결국 선거 막판에는 선명성 결핍으로 이어져 바이든이 최종 승리까지 거머쥘지는 알 수 없다는 비관론도 상당하다. 이런 측면에서 오히려 바이든 전 부통령이 과연 본선 전에 민주당 경선에서 승리를 차지할 수 있느냐가 핵심 관건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다크호스가 속출하는 진보 지향의 민주당 내부에서 선명성이 부족한 그가 최종 결승 티켓을 손에 넣기가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현실에서 다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번 대선 예비후보 중 최고령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77)이다. 그의 ‘아웃사이더’ 돌풍은 이미 지난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위협하며 증명됐다. 3월5일 시카고에서 개최한 그의 2020년 대선 첫 출정식으로 불린 대중집회에도 1만2000명이 넘는 인파가 모여 이른바 ‘버니 열풍’이 그대로 살아 있음을 여실히 증명했다. 그가 지난 2016년에 민주당 경선에서 끌어모은 지지자들만 다시 전면에 나선다면,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이번 민주당 경선이 지난 ‘아웃사이더’ 돌풍을 몰고 온 때와는 다르다는 반론도 나온다. 지난 경선에선 이른바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며 특유의 선명성으로 돌풍을 몰고 왔지만, 이미 다른 젊은 예비후보들 중에 그보다 더 선명성을 부각하며 치고 나오는 후보들도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미 조직력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식상해졌다는 방증이라는 것이다. 이제는 그가 약자나 이른바 ‘언더독’이 아니라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에도 대부분의 정치 분석가들은 만일 그가 최종적으로 민주당 후보 티켓을 거머쥘 경우 본선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모든 측면에서 극과 극을 다투는 진검승부가 펼쳐질 것이라는 데 입을 모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AP 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AP 연합

트럼프, 내심 바이든보다 샌더스 원할 듯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지난 2월 신년 국정연설에서 “미국은 절대 사회주의 국가가 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번 대선 과정을 이념 전쟁을 포함해 이른바 ‘색깔론’ 논쟁으로 끌고 갈 것임을 숨기지 않았다. 샌더스 상원의원을 포함한 일부 민주당 예비후보들은 이런 논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자신들의 정책을 ‘민주적 사회주의’라고 말한다.

하지만 용어 규정 이전에 부자 증세나 대기업 규제 등 정책적인 차이에서도 서로 피할 수 없는 정면대결이 불가피하다. 그래서 그 양쪽의 정점에 서 있는 트럼프와 샌더스가 본선에서 맞붙는다면, 극명한 극과 극의 대결이 펼쳐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 둘은 소득 및 세금 문제, 건강보험, 교육, 이민자 등 거의 모든 정책에서 극과 극의 대립을 표출한다. 샌더스가 이번에도 대권 재수를 선언하면서 “다시 한번 정치적 혁명을 이루자!”고 말한 것이 이를 잘 말해 준다. 

일부 정치 분석가들은 이런 측면에서 오히려 트럼프는 내심 샌더스와 맞붙기를 희망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만큼 양쪽의 선명성이 더 부각할수록 보수 지지층의 표를 더 가져올 수 있다는 계산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근래 들어 거의 모든 대선의 결과가 막상막하의 접전을 펼쳤던 것을 상기해 보면 트럼프가 유리해질 것이라고만 예단할 순 없다. 일부 전문가들은 2020년 대선 결과는 별도로 하더라도 만일 이러한 극단의 맞대결이 펼쳐질 경우 대선 이후의 후유증은 그 어느 역대 선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심각할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는다.

공화당과 민주당이라는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저울에서 모든 유권자들이 양쪽의 극단으로 몰릴 경우 잘못하면 미국 사회라는 저울 자체가 붕괴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다. 하지만 그것 또한 미국 국민들이 안고 가야 할 몫으로 보인다. 어쩌면 2020년 대선 시계추는 ‘정신 나간’ 후보와 ‘병적인 거짓말쟁이’ 후보의 극단적인 대결로 결말이 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