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수 “요즘은 선수 뒤에 있는 가족들이 보인다 그래서 더 잘하고 싶다”
  • 이영미 스포츠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5.24 09:55
  • 호수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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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FC서울 되살린 최용수 감독…“백수 때 절감했다. 잠그는 축구가 얼마나 재미없는지…”

지난 시즌 창단 후 처음으로 승강 플레이오프를 경험했던 FC서울에 ‘봄’이 찾아왔다.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가까스로 K리그1에 잔류했던 FC서울은 지난해 10월 ‘구원등판’한 최용수 감독과 함께 올시즌 신바람 행진을 벌이고 있다. 5월21일 현재 FC서울은 7승3무2패 승점 24점으로 3위를 달리고 있다. 1위 울산과는 승점 2점 차에 불과하고, 2위 전북과는 승점이 같고 다득실에서 밀려 2위를 내줬다. 올시즌 새롭게 선보인 외국인 선수들의 활약과 ‘비운의 천재’로 내몰렸던 박주영이 살아나면서 FC서울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 모든 중심에는 최용수 감독의 지도력이 존재한다. 5월15일 오후 FC서울 훈련장이 위치한 구리 챔피언스파크에서 최용수 감독을 만났다.

ⓒ 시사저널 최준필
ⓒ 시사저널 최준필

FC서울에 진정 봄이 찾아온 건가. 시즌 개막 전까지만 해도 FC서울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보일 거라고 예상한 전문가들은 거의 없었다.

“봄도 좋지만 나는 따뜻한 겨울을 맞이하고 싶다. 시즌 초에 좋은 성적을 내다가 중반 넘어서 고꾸라지는 팀들이 많다. 따뜻한 봄이 뭐가 중요한가. 최종 성적표 받을 때 선수들이 서로 따뜻한 손을 잡고 성취감, 만족감을 느끼는 게 더 중요하지 않겠나.”

지난해 FC서울은 참담한 시즌을 보냈다. K리그 명문팀으로 꼽혔던 FC서울이 정규리그를 11위로 마무리한 후 2부리그의 부산 아이파크와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른 끝에 가까스로 1부에 잔류했다.

“지금도 그때의 상황을 떠올리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처음에는 FC서울이 왜 이렇게 됐나 싶더라. 시즌 막판에 팀을 맡은 것도 그런 안타까움이 컸기 때문에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선수들은 이미 이전 감독 체제에 적응된 상태이고, 팀 내부는 모래알 조직이 된 상태라 내가 뒤늦게 팀을 맡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 어려웠다. 결국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됐는데 개인적으로는 매우 슬펐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팀이 FC서울인데 그런 팀이 이런 상황에 처했다는 게 수치스러웠다.”

만약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패했다면 여러 가지로 힘든 상황을 맞이했을 것 같다.

“어휴, 상상도 하기 싫다.”

상상조차 하기 싫은 경험이었지만 그런 시즌을 보내고 재정비한 FC서울은 올 시즌 환골탈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좋은 일과 안 좋은 일은 같이 온다는 말을 믿는다. 악몽과도 같았던 시즌을 보내고 살아남은 선수들은 생존에 대한 간절함이 생겼다. 이 고비만 잘 넘기면 깊은 터널 속에서 빠져나가 밝은 빛을 볼 수 있다는 믿음도 잃지 않았다. 그래서 괌·가고시마 전지훈련 동안 미친 듯이 훈련을 이어갈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선수들 눈빛이 달라지는 걸 느꼈다. 그때 선수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내가 너희들을 위해 무엇을 도와주면 되겠니?’라고. 이전의 감독 최용수한테는 있을 수 없는 질문이었다. 이전의 나는 선수들에게 무조건 따라오라고 강하게 압박하는 스타일이었다. ‘야인’으로 1년4개월의 시간을 보내며 나도 변했다. 선수들을 압박하기보다는 대화와 소통을 하면서 배려와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3월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9 K리그1 FC서울과 포항 스틸러스의 경기에서 최용수 감독이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3월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9 K리그1 FC서울과 포항 스틸러스의 경기에서 최용수 감독이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외국인 선수들 외에는 스쿼드에 별다른 변화가 없음에도 이전과는 전혀 다른 팀 색깔을 보이고 있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우리는 도전자 입장이다. 바닥까지 떨어진 팀이라 올라가면서 이기는 맛을 느껴야 한다. 팀 성적이 하위권을 맴돌면서 선수들도 많은 상처를 받았다. 팀을 재정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수들의 자존감을 세워주는 게 더 급선무였다. 프로 선수는 상품이다. 좋은 상품이 되려면 선수의 가치를 끌어올려줘야 한다. 시장에서 파는 평범한 과일이 아니라 백화점 진열대에 올려놓을 명품 과일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지금까지는 선수들이 내 진심을 잘 이해해 준 것 같다. 열심히 따라오고 있는 걸 보면.”

J리그에서의 생활을 제외하면 선수 시절부터 코치·감독까지 항상 FC서울과 동행했다. 2012년 정식 감독으로 첫 시즌을 보낸 후 K리그 우승,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AFC 올해의 감독상, FA컵 우승 등 화려한 업적을 남기고 2016년 6월, 중국 장쑤 쑤닝과 계약하며 FC서울을 떠났다.

“열거한 대로 나는 FC서울로부터 많은 특혜를 받으며 성장했다. 선수 시절에도 득점왕에 오르며 부귀영화를 누렸고, 지도자가 돼서도 다른 지도자들이 쉽게 누리지 못하는 영광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잃어버린 FC서울의 정체성을 되찾고 명예회복을 이루기 위해서 말이다. FC서울에 대한 책임감이 없었다면 지난 시즌 막판에 나락으로 떨어진 팀을 다시 맡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장쑤 쑤닝에서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1년 만에 중도 하차했다. 지도자 생활에 오점을 남겼다고 생각하나.

“전혀 그렇지 않다.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오히려 많은 배움을 갖고 돌아왔다. 중국의 축구 시장, 팬들의 열기 등 엄청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후 방송 등에 출연하며 축구장 밖에 머물렀다. 특유의 입담으로 꽤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안)정환이의 꼬임에 빠져 잠시 방송에 발을 담갔지만 필드가 아닌 관중석, TV로 본 축구는 또 다른 느낌을 갖게 했다. 오히려 그 시간 동안 축구를 새롭게 설계할 수 있었다. 만약 내가 다시 현장에 복귀한다면 질 때 지더라도 팬들이 티켓을 구매한 일을 후회하지 않도록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해 보자고 다짐했다. 솔직히 어느 정도의 죄책감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이전 FC서울을 이끌 때 공격보다는 수비 축구를 지향하며 팬들에게 재미없는 경기를 선보인 게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성적에 대한 부담, 중간에 경질될 수 있다는 압박감에 축구에 대한 시야가 넓지 못했다. 선취점을 올리면 무조건 잠그는 축구를 펼쳤다. 그게 얼마나 축구를 재미없게 만드는지 ‘백수’였을 때 절감한 것이다. 그래서 올 시즌 우리 팀 목표는 ‘팬들에게 감동을 주는 축구’다.”

올 시즌 FC서울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가 박주영이다. 한때 ‘축구 천재’로 불렸던 그가 오랜 시간 동안 제 역할을 하지 못했지만 올 시즌에는 팀의 구심점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중이다. 박주영의 변화 요인이 궁금하다.

“내가 다시 FC서울을 맡았을 때 박주영이 2군에서 뛰고 있더라. FC서울의 상징이었던 박주영이 왜 2군에서 뛰는지 이해가 안 됐다. 주영이랑 많은 대화를 나눴고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주영이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싶었는데, 주영이도 내 진심을 이해해 줬다. 해외 전지훈련 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에 참가했던 선수가 박주영이었다. 그동안 뛰고 싶어도 기회를 얻지 못했던 한이 그라운드에서 발휘되는 것 같다. 요즘 주영이를 보면 ‘아, 이 친구가 정말 축구를 하고 싶어 했구나’ 하는 걸 느끼게 된다.”

최용수 감독은 팀 성적을 끌어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수들이 축구를 재미있게 즐기는 모습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선수단의 변화는 홈 관중들의 증가를 불러일으켰다. 월드컵경기장을 찾는 만원 관중들을 볼 때마다 절로 ‘감사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그리고 여운이 남는 한마디. “요즘은 선수뿐만 아니라 선수 뒤에 있는 가족들이 보인다. 그래서 더 잘하고 싶다. 재미있게, 신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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