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뿌리’ 제대로 찾으면 신생도 원조”
  • 조철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5.26 11:00
  • 호수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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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가는 법칙 알려주는 비주얼 머천다이징 전문가 이랑주

“오래간다는 것은 자신만의 본질을 갖고, 지속적으로 시대와 호흡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노력이 반드시 ‘눈에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사람들에게 와닿게 하기란 쉽지 않다. 오래 사랑받는 곳들은 결국 ‘자기만의 가치를 보여주는 데 능한 곳’이라고 더 정확하게 정의돼야 한다.”

비주얼 머천다이징 전문가 이랑주 ‘이랑주VMD연구소’ 대표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새로운 것을 만들려는 이들을 위해 오래 사랑받는 법칙을 담은 《오래가는 것들의 비밀》을 펴냈다. 죽어가는 곳도 살리는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며, 27년 동안 수많은 가게와 기업들을 컨설팅해 온 그는 한국 최초의 비주얼 머천다이징 박사로 1993년부터 13년 동안 현대백화점, 롯데백화점, 이랜드 등에서 근무했다. 삼성생명, LG전자, 하이마트, 풀무원, 한솥도시락 등 유수의 기업들은 물론 전국의 수많은 지자체와 전통시장에서 그의 도움을 받아 운명을 바꾼 사례들을 포함해, 디자인이 단순한 시각적 효과가 아니라 경영 전략의 핵심임을 알려주는 그의 독보적인 활동은 수많은 미디어를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

“기업이나 노포를 살펴보면 한국에는 100년 이상 된 곳이 8개 정도밖에 없다. 가까운 일본은 3만 개가 넘는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생각해 봤는데, 전쟁을 겪으면서 많은 점포들이 사라지는 현실적 문제가 있었고, 무엇보다 애초에 오래가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어떤 일을 오래 해 온 사람뿐 아니라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반짝이는 트렌드나 타인의 경험을 쫓아가는 경우가 많으니 대다수 가게와 상품들이 찍어내듯 비슷해질 수밖에 없다.”

이 대표는 40개국, 200개 기업, 100개의 가게에서 한 번 봐도 잊히지 않는 존재가 되는 법을 발견했다. 그는 그들에게서 남들은 흉내 낼 수 없는 ‘자기만의 상징 찾기’부터 어떤 유행에도 흔들리지 않는 ‘내 제품의 뿌리 만들기’까지, 팔리지 않는 시대에 필요한 7가지 방법을 배웠다. 100년 된 명품부터 1000년 된 전통시장까지, 오래 사랑받는 것들을 살펴보면 사람들의 무의식까지 스며드는 자기만의 고유한 이미지가 있다. 사람들의 기억에 촘촘히 스며들어, 새로운 세대까지 열광시키는 놀라운 비주얼의 힘이다.

이랑주 지음|지와인 펴냄|272쪽|1만5800원 ⓒ 지와인 제공
이랑주 지음|지와인 펴냄|272쪽|1만5800원 ⓒ 지와인 제공

 

개인과 기업 경영에 필요한 ‘비주얼 전략’ 제시

“집중해야 하는 것은 고객들이 문밖을 나설 때, 마지막으로 가지고 갈 ‘단 한 장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사람들은 한 공간에서 여러 개의 이미지를 담아 가지 않는다. 그러기를 바라는 것은 공급자의 욕심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브랜드에 대한 연상 이미지를 약화시키는 일이다. 내 브랜드나 내 매장을 기억시킬 ‘단 한 장의 이미지’를 정했다면, 그것이 어떤 감정과 연결돼 있는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이 대표는 좋은 물건을 만들어도 팔리지 않는 시대에, 새로운 것을 만들려는 이들일수록 처음부터 가져야 할 ‘비주얼 전략’을 제시한다. 스타트업 CEO부터 대기업 마케터까지, 작은 가게에서 대규모 프랜차이즈까지, 이 시대에 필요한 경영의 핵심이다.

“애플 스토어는 여러 면에서 놀라운 곳인데, 그중 하나는 전 세계의 모든 애플 스토어가 마치 하나의 이미지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각 지역의 애플 스토어를 밖에서 사진을 찍어 모아 보면 마치 틀로 찍어낸 듯 똑같다. 유수의 전자제품 기업이 자신들의 제품을 진열하는 매장을 공들여 운영한다. 그러나 애플 스토어처럼 모든 매장을 동일하게 보이게끔 운영하는 곳은 거의 없다.”


“자기만의 가치 잘 살려 타인의 무의식까지 스며들어야”

이 대표는 어떤 기업에 대해 고객의 입장에서 특정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 기업의 본질을 표현하는 상징이 없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설령 그런 상징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상징을 통해 고객과 소통하는 힘이 약하다는 것이다.

“한 나이키 매장에 들렀는데 인상적이었다. 공간을 가득 채운 것은 나이키 제품이 아니었다. 바로 ‘에어’라는 콘셉트였다. 사람이 공기를 눈으로 볼 수 있을까? 거기서는 볼 수 있었다. 나이키 에어가 진열돼 있는 벽면은 수많은 작은 팬들로 이뤄져 있어, 러닝화를 집어 들고 살펴보는 동안 그 팬에서 들고 나는 바람이 고객의 얼굴과 몸에 가닿았다.”

이 대표는 이런 이야기들을 취업을 하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새겨들을 만한 사례라고 힘주어 말한다. 취업해도 오래가지 못하거나 사업을 한 지 얼마 안 돼 중도 포기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자기를 제대로 알고 시작하는 것만이 오래 성공하는 유일한 비법이라고 설명한다.

“특정한 이미지를 가진 사람을 손꼽을 때 떠오르는 사람으로 ‘스티브 잡스’나 ‘앙드레 김’이 반드시 순위 안에 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졌다는 것.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았고, 이를 비주얼로 나타내는 데 전략적이었다. 스티브 잡스와 앙드레 김은 살아 있는 동안 계속 같은 스타일의 옷을 입었다. 이렇게 자기가 추구하는 이미지를 찾았다면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가는 게 중요하다. 자신을 표현하는 데 적합한 컬러나 아이템을 먼저 찾은 뒤, 끊임없이 그걸 노출시키는 거다.”

이 대표는 ‘한국에 100년 가는 기업 100개 만들고 죽자’고 다짐하면서 책을 썼다. 골목골목마다 100년 이상 된 가게들이 있고, 100년 후에도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오래가는 풍경을 상상하면서.

“사람들이 오래 기억하는 제품은 자기만의 고유한 비주얼과 철학이 있다. 남들에게 기대지 않고 자신을 설명하는 ‘나만의 뿌리’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만약 내 제품에 고향이 있다면 그곳은 어디일까? 상상해 보라. 그럴 때 신생도 원조가 될 수 있는 날이 온다. 140년 된 하인즈를 이긴 켄싱턴 경의 케첩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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