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하나’부터 ‘임블리’까지…‘SNS 자경단’이 직접 나선다
  • 유지만 기자 (redpill@sisajournal.com)
  • 승인 2019.05.28 13:00
  • 호수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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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 수사력 불신 시대…숨은 정보 찾아내는 익명의 폭로자들

#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선 A씨. 그는 출근길에 지난 밤 사이에 온 인스타그램 DM(다이렉트 메시지)을 확인한다. 그의 메시지함에는 밤새 수십 통의 DM이 도착해 있었다. 어제 저녁에 올린 폭로 내용이 꽤나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DM 내용 대부분은 폭로 대상의 온라인 활동과 댓글을 캡처한 이미지 파일, 포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 링크 등이다. 간혹 자신을 공격하는 악의적인 메시지도 눈에 띈다. 대략적인 내용을 파악한 A씨는 일과를 마치고 퇴근한 후 본격적인 정리 작업을 시작한다. 구체적으로 폭로할 만한 내용인지, 신빙성이 어느 정도인지 판단한 후 이를 간략한 이미지로 정리해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다. 물론 개인 신원이 노출될 만한 부분은 모두 가려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제보자에게 DM을 보내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새로운 정보를 입수한다. 이제 이 정보도 곧 정리작업을 통해 자신의 인스타그램 피드에 올릴 예정이다. 내일은 더 큰 건이 하나 기다리고 있다. 조만간 사실이 확인되는 대로 온라인에 뿌려질 것이다. 

ⓒ 일러스트 정재환
ⓒ 일러스트 정재환

황하나 사건 ‘정보 1번’은 인스타그램

위 내용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폭로 계정 운영자의 일상을 재구성한 것이다. 최근 온라인을 통해 ‘폭로성 계정’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황하나 사건과 임블리 사건에서 이 폭로 계정들의 활동이 두드러졌으며, 장자연 사건의 증언자로 활동한 윤지오씨의 신빙성에 대한 폭로도 SNS를 통해 시작됐다. 

과거에도 온라인의 익명성을 이용한 폭로들이 간혹 있었다. 당시 단순한 흥미성 폭로가 대부분이었다면, 최근에는 문제의식을 가진 익명의 개인들이 직접 나서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일종의 ‘SNS 자경단’인 셈이다. 이들의 문제의식에는 분노와 불신이 공존한다. 부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에 대한 분노와, 문제를 제기해도 외면하고 해결하려 하지 않는 국가에 대한 불신이다. 실제로 최근 활동하는 폭로 계정들의 활약은 사정기관의 능력을 웃돌기도 하며, 문제를 널리 알려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이 같은 익명의 폭로에는 정부 기관이 직접 나서서 해결하기 힘든 문제를 제기한다는 순기능이 있지만, 심각한 명예훼손을 저지를 수 있다는 역기능도 존재한다. 특히 성적인 요소와 결합해 특정인에게 모욕을 주기 위한 악의적인 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폭로 계정이 가장 활발한 SNS는 인스타그램이다. 가입 시 본인 인증 절차가 없고, 외국 업체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과거 강남 유흥업계 종사자들을 폭로해 세간의 화제가 된 ‘강남패치’란 계정도 인스타그램에서 운영된 바 있다. 

이 같은 폭로 계정들은 속칭 ‘까판’으로 불린다. ‘폭로한다’는 의미인 ‘깐다’에 비슷한 부류나 업종을 의미하는 ‘판’이 합성된 신조어다. 다른 단어로는 ‘까계정(까는 계정)’으로도 불린다.

올해 굵직한 사건들의 중심에는 바로 이 ‘까판’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마약 사건을 일으킨 황하나씨에 대한 폭로 계정이다. 이 계정은 황씨의 마약 투약 및 유통 의혹이 알려지기 이전부터 활동하고 있던 중, 황씨에 대한 사건이 세간의 관심을 받으면서 더욱 활발하게 활동했다. 

황씨에 대한 폭로 계정은 황씨 마약 사건의 내밀한 부분까지 접근했다. 실제로 이 계정에는 황씨가 마약을 투약한 후에 지인들과 입을 맞추려고 강요하는 정황이 담긴 녹취, 황씨 지인 중 마약 유통과 투약을 도운 인사들에 대한 내용까지 올라왔다. 물론 자세한 내용까지 담기진 않았지만, 언론의 취재나 수사 당국의 수사력를 웃도는 성과를 보였다. 황씨 사건을 취재했던 한 언론사 기자는 “황씨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온 이후, 이 폭로 계정이 취재기자들에게 굉장히 주목받았다. 누구도 접근할 수 없었던 정보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기자와의 접촉은 소수에 그쳤다. 폭로 계정 운영자들이 엄격하게 선별한 기자들과만 접촉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정보는 황씨를 수사한 경찰 쪽에서도 파악하지 못할 정도였다. 실제로 황씨를 수사한 수사팀에서 DM을 통해 수사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황씨 사건을 수사한 경찰 관계자는 “수사팀 입장에서도 수사에 도움을 받기 위해 접촉할 수밖에 없었다. 내밀한 내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 보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쇼핑몰 ‘임블리’에 대한 폭로 계정에 올라온 피해사례
온라인 쇼핑몰 ‘임블리’에 대한 폭로 계정에 올라온 피해사례

‘임블리 사태’ ‘윤지오 의혹’도 폭로 대상

‘호박즙 사태’에서 시작된 ‘임블리 사건’의 공론화 역시 인스타그램 폭로 계정의 힘이 컸다. 자신을 ‘평범한 육아맘’으로 소개한 폭로 계정 운영자는 본래 온라인 쇼핑몰 ‘임블리’의 VVIP 고객이었다. 하지만 임블리에서 판매한 호박즙에 곰팡이가 생겨났고, 이에 대한 항의 과정에서 임블리 측이 미온적으로 대응하자 폭로 계정으로 돌아섰다. 

폭로 계정이 운영되면서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임블리 제품들의 문제점이 하나씩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했던 소비자들의 불만이 봇물처럼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폭로 계정 운영자는 “호박즙 사태 이후 댓글을 보다가 기가 막힌 일이 많다고 느껴졌고, 그러던 중 팔로워와 제보자가 늘어나면서 소비자 알권리 차원에서 업데이트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 ‘곰팡이 호박즙’을 비롯해 ‘도매 업체에 대한 갑질’ ‘에센스와 쿠션 팩트 제품 불량’ ‘악플 기사 의도적 은폐’ ‘명품·타사 브랜드 제품 디자인 표절’ ‘터무니없은 소비자 대응’ 등의 문제가 추가적으로 제기됐다. 

검찰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가 재조사한 ‘장자연 사건’에서도 폭로 계정이 등장했다. 바로 ‘유일한 증언자’를 자처한 윤지오씨에 대한 폭로 계정이다. 이 계정은 윤씨가 언론 인터뷰에 나와 “10여 년간 숨어다니다시피 했다”는 취지의 증언을 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됐다. 폭로 계정 운영자는 “윤지오씨가 장자연 사건을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과거부터 최근까지 윤씨의 행보에 의문을 제기했다. 

왼쪽부터 ‘임블리’ 임지현 상무, 윤지오씨, 황하나씨 ⓒ 연합뉴스·유튜브 캡쳐
왼쪽부터 ‘임블리’ 임지현 상무, 윤지오씨, 황하나씨 ⓒ 연합뉴스·유튜브 캡쳐

“불신·분노 표현 창구가 생긴 것”

이 폭로 계정은 윤씨가 과거 친분이 있었던 김수민 작가로부터 고소를 당하면서 더욱 주목받았다. 김 작가 역시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이용해 윤씨에 대한 의혹을 계속 제기하고 있다. 고소 직후 윤씨는 일정을 취소하고 본래 거주하던 캐나다로 급히 떠났고, 캐나다 현지에서 김 작가 및 폭로 계정 운영자에 대해 비난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더 이상 국가 시스템에서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불신과, 부당한 일을 참고만 있을 수 없다는 분노에 기반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황하나씨 마약 사건과 버닝썬 사건 등에서 드러난 수사기관에 대한 불신이 곧 익명성을 활용한 SNS ‘까판의 세계’에 눈을 돌리게 만들었고, 이 방법이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내면서 성공하자 더욱 활성됐다는 것이다. 온라인 세계에 익숙한 현재의 젊은 세대들에게는 오히려 제도권 뉴스보다 더욱 정확하고 깊이 있는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창구가 되는 셈이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이러한 SNS 폭로에 대해 “숨겨진 사건을 드러내는 순기능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개인들이 경찰에 신고도 하지 못할 때 결국 온라인의 고발 기능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며 “누군가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면 많은 사실들까지 쏟아내게 된다. 황하나씨에 대한 폭로 계정에 올라온 정보들도 결국 황씨에 대한 혐의사실을 입증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기능이 있다”고 말했다. 

익명의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폭로가 대중의 관심뿐만 아니라 제도권을 움직이는 기능을 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법무법인 폴라리스의 전인규 변호사는 “그동안 사회·경제적 약자의 입장에 있던 개인에게는 자신의 부당함을 널리 알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최근 젊은 세대들은 뉴스보다는 온라인상에 떠다니는 얘기들을 더 많이 접하기 때문에 공론화하기도 좋은 환경이 됐다”고 분석했다. 

전 변호사는 최근의 트렌드로 ‘무차별적 폭로’가 아닌 나름의 작동 방식이 있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그는 “최근 ‘까판’의 활동을 보면 마치 언론사 기자와 같은 ‘게이트키핑’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신들에게 들어온 제보 중 사실에 가까운 것이 무엇인지 구분하고, 이 중에서 무엇을 공개할지를 결정하는 방식을 보인다”며 “이는 과거 익명성에 기댄 ‘무차별적 폭로’에서 한 단계 더 진화한 양상”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여전히 검증을 받지 않기 때문에 왜곡될 여지가 많고, 이 과정에서 특정인에 대한 악의적인 공격이 벌어질 수 있는 위험성을 여전히 내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특정 개인에 대해 고의를 가지고 ‘헐뜯기’를 할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과거에 특정 연예인의 어린 시절 노출 사진을 온라인에 공개해 망신을 준 사례들처럼 단순한 악의에서 시작돼 특정인을 공격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고 말했다. 전 변호사 또한 “성공한 폭로의 경우에는 계정 운영자들의 엄격한 관리 기준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악의적인 왜곡에 의한 공격이 발생할 수 있다”며 “공권력에는 여러 감시·견제장치가 있지만, SNS상의 폭로에 대해서는 이 같은 장치가 없기 때문에 운영자의 소양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맹점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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