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화폐 등장할 한반도 침략 인물, 시부사와는 시작에 불과
  • 류애림 일본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5.28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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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부터 일본 1만 엔권 인물은 일제시대 한반도 경제침탈 당사자인 시부사와 에이이치

20년 만에 바뀌는 일본 지폐의 인물 도안을 두고 한국에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 이유는 최고액 권인 1만 엔권 인물로 등장하게 될 시부사와 에이이치에 대한 평가 때문이다.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은 지난 4월9일 기자회견을 열어 2024년 상반기부터 새 지폐를 유통시킬 계획이라며 새로운 디자인의 견본을 공개했다. 유통량이 적은 2000엔권을 제외하고 1000엔, 5000엔, 1만엔권의 앞뒷면 도안이 모두 바뀐다. 일본 재무성은 새 지폐 도입 이유를 ‘위조 방지’를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새로운 지폐는 보는 각도에 따라 3D그림의 방향이 바뀌는 첨단 기술의 홀로그램을 사용해 위조 방지 기능을 한층 강화한다. 지난 2004년 지폐 쇄신 당시에는 2년 전인 2002년에 계획을 발표했지만 이번에는 5년이나 앞서 발표했다. 아소 재무상의 기자회견에 따르면 당시에는 위조지폐 유통량이 증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긴급히 지폐를 쇄신할 필요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충분한 기간을 두고 준비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하지만 새로운 연호 ‘레이와’ 발표와 함께 지폐 쇄신을 공표함으로써 새로운 시대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한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였다. 세계에서 처음 도입한다는 최첨단 위조 방지 기술을 전면적으로 내세웠지만 무엇보다 논란이 된 것은 새 지폐 앞면에 들어갈 한 인물 때문이다. 

먼저 1000엔 권의 인물로는 기타자토 시바사부로(1853~1931)가 선정됐다. ‘일본 세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기타자토는 페스트균 연구자이자 파상풍 치료법 개발자로 일본의 근대 감염증의학 발전에 공헌했다. 1901년 제1회 노벨 생리의학상의 최종후보에 오르기도 했지만 수상에는 실패했다.

5000엔 권의 새 인물은 쓰다 우메코(1864~1929)로 여성이다. 쓰다는 일본 최초의 여성 유학생이었다. 1871년 만 6세의 나이로 메이지 정부 구미 시찰단인 이와쿠라 사절단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귀국 후 1900년에는 현재 쓰다주쿠대학(津田塾大學)의 전신인 ‘여자영학숙’(女子英學塾)을 설립, 일본 여성교육의 선구자로 평가 받고 있다.

일본 1만 엔권 지폐 ⓒ연합뉴스
일본의 현 1만 엔권 지폐 ⓒ연합뉴스

1만 엔권의 주인공은 ‘일본 자본주의의 父’ 

누구보다 주목받고 있는 인물은 최고액권 1만 엔권의 새 인물이다. 1만 엔권의 경우 40년만에 후쿠자와 유키치(1835~1901)에서 시부사와 에이이치(澁澤榮一, 1840~1931)로 바뀐다. 후쿠자와는 19세기 일본의 대표적인 계몽사상가이자 교육자, 저술가로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한다. 후쿠자와는 조선의 급진 개화파와의 친교로도 유명하다. 1882년 일본을 방문한 김옥균, 박영효와 처음 만난 후쿠자와는 조선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1884년 갑신정변 후 일본에 망명한 김옥균을 자신의집에 머무르게도 했다. 40년 동안 1만 엔권의 인물이었던 만큼 일본에서는 1만 엔권을 부를 때 ‘유키치’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번에 새롭게 1만 엔권에 등장하는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불린다. 19세기 근대 일본의 여러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유럽 파견 사절단의 일원으로 근대적 산업설비와 경제 제도를 경험한 시부사와는 메이지 정부의 대장성(현 재무성) 관리로 등용돼 화폐, 금융, 재정 제도 제정과 개혁에 참여했다. 1873년에는 대장성을 그만두고 일본 최초의 민간은행 제일국립은행(현 미즈호 은행)을 창립했다. 이후 일본 재계의 지도자로 활약하며 도쿄증권거래소를 비롯해 제지 회사, 방적 회사 등 수많은 기업과 단체의 설립에 기여했다. 일본 재계의 사상적 리더이기도 했던 그는 ‘실업가는 국가 목적에 기여하는 비지니스맨이어야 한다’는 ‘경제 도덕 합일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시부사와는 한때 한반도에서 사용된 지폐에 그 초상이 실리기도 했다. 시부사와가 설립한 제일국립은행은 1878년 조선에 진출했고 제일은행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 은행이 조선의 금융계를 장악할 목적으로 1902년 무단 발행한 것이 제일은행권으로 이때 1엔, 5엔, 10엔 권을 만들어 유통시켰는데 이 지폐들 모두에 당시 경영자였던 시부사와의 초상이 사용됐다. 시부사와는 제일은행의 조선 진출뿐만 아니라 경인철도합자회사 설립, 조선흥업주식회사 설립 통해 일본의 한반도 경제 침탈에 앞장서기도 했다.

 

韓日 논란의 여지 있는 인물 재등장할 수도

일본의 지폐 속 인물 선정 기준은 아소 재무상이 기자회견에서 밝혔듯 메이지(1868년) 이후의 ‘문화인’이다. 그중에서도 사진이 남아있는 인물로 정치색이 강한 인물과 군인은 제외한다. 1984년부터 적용된 이 기준은 이번에도 적용됐다. 아사히 신문의 취재에 따르면, 되도록 널리 알려진 인물을 선정하기 위해서 일본사 교과서를 조사하고 등장 횟수 등을 고려했다고 한다. 쇼와(1926년) 이후에 활약한 인물들을 평가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판단 하에 선정대상에서 제외했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1841~1909)는 1963년에 발행된 1000엔 권의 주인공이었다. 1984년 현재의 인물 선정 기준이 정해진 후에는 제외됐다. 정치색이 강한 정치가, 군인을 제외하는 이유에는 근대 일본의 침략 역사와 관련된 인물들을 피하려는 의도도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인물의 활약 시기로 정하고 있는 메이지 시대는 일본의 한반도 침략이 시작된 시점이다. 따라서 ‘문화인’을 선정한다 해도 시부사와 에이이치와 같이 양국의 역사를 고려할 때 앞으로도 계속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인물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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