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美에 ‘인민전쟁’ 카드 빼들었으나…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5.31 18:00
  • 호수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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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드라마 송출 중단하고 ‘반미항전’ 외쳐…현실은 ‘이러다 경제 무너질라’ 전전긍긍

5월27일 관영 중국중앙(CC)TV 국제채널은 《위대한 항미원조(偉大的抗美援朝)》 다큐멘터리 5부작을 방송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항미원조는 1950년 한국전쟁을 가리키는 중국식 용어다. 본래 이 다큐는 베이징TV가 6부작으로 제작해 2014년에 방송했다. 이처럼 로컬방송사가 제작했고 방송한 지 5년이나 지난 다큐를, 중국을 대표하는 CCTV가 다시 재방영하는 일은 굉장히 희귀하다. 하지만 최근 격화된 미·중 무역전쟁 이후 CCTV의 행보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CCTV는 5월16일부터 27일까지 영화채널을 통해 한국전쟁에 관한 극영화와 기록영화 9편을 연속으로 방송했다. 영화는 모두 한국을 도와 전쟁에 참전한 미군에 맞선 중국군 장병의 영웅적인 활약상을 그리고 있다. 주목할 점은 방송 시간대가 저녁 8시의 골든타임이었다. 심지어 본래 편성됐던 다른 프로그램을 뒤로 미룬 채 이뤄진 긴급 편성이었다. 5월23일에는 더욱 극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종합채널 아침뉴스에서 아나운서들의 인사말에 뒤이어 중국 국가를 돌연 방송했던 것이다.

중국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3월11일 중국남방항공의 보잉 787 여객기(맨 위)가 착륙하고 있다. ⓒ AFP 연합
중국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3월11일 중국남방항공의 보잉 787 여객기(맨 위)가 착륙하고 있다. ⓒ AFP 연합

중국 방송부터 항공사까지 대놓고 ‘반미’

대내외적으로 CCTV는 단순한 언론매체가 아니다. 중국 정부의 입장을 전달하고 중국 체제를 홍보하는 프로파간다 기관이다. 실제 CCTV는 공산당 중앙선전부의 관리·감독을 받고 있는 중앙광파전시총대에 속한다. 이런 ‘항미원조’ ‘반미(反美)바람’은 CCTV뿐만 아니라 중국 각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우선 방송에서 미국과 관련된 콘텐츠가 사라지고 있다. 5월19일 중국 로컬방송사 두 곳과 모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동시에 방송할 예정이었던 드라마 《아빠를 데리고 유학 가다(帶著爸爸去留學)》가 방영 하루 전에 취소됐다. 지난 3월부터 OTT를 통해 방송됐던 《베이징에서 너를 기다려(我在北京等你)》도 방영이 중단됐다. 두 드라마는 모두 미국 생활을 매력적으로 묘사한 공통점이 있다.

5월20일에는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방송이 중단됐다. 8시즌 6회가 OTT인 텅쉰(騰迅)을 통해 방영될 예정이었으나 갑자기 연기된 것이다. 이에 대해 텅쉰은 SNS를 통해 “전송상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텅쉰은 중국 최대 인터넷 업체다. 인터넷 회선에 문제가 생겼다는 건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홍콩매체 명보(明報)는 “이런 분위기가 2016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를 둘러싼 갈등으로 한한령(限韓令)이 내려지고, 한국 연예인의 출연과 한국 문화 콘텐츠의 방영이 중국에서 전면 금지됐던 상황을 연상시킨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중국 관영 언론은 일전불사와 반미항전을 소리 높게 외치고 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연일 미국 비난에 열을 올렸다. 5월28일 사설에서는 “미국은 국제 사무에서 이중 잣대를 적용한다”며 “문명 우월주의로 다른 나라들을 이끌어내려 한다”고 비판했다. 인민일보 자매지이자 국수주의 성향이 강한 환구시보(環球時報)는 한술 더 떴다. 5월14일 환구시보는 사설을 통해 “미·중 무역분쟁은 중국 인민 전체가 협박을 받은 것으로 중국인 입장에서는 인민전쟁이다”고 규정했다.

‘인민전쟁’은 냉전 시기에 사용했던 용어다. 금세기 들어 중국 언론이 미국을 상대로 쓴 건 처음이다. 중국인들에게 미국과의 결사항전을 촉구한 것이다. 실제 후시진(胡錫進) 환구시보 총편집인은 SNS에서 “미·중 무역전쟁이 갈수록 치열해져 항미원조를 떠올리게 한다”면서 “우리는 상감령(上甘嶺) 정신을 고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감령은 1952년 10월14일부터 11월24일까지 강원도 김화군 상감령의 저격능선과 삼각고지에서 벌어졌던 전투다. 당시 미군 제7보병사단과 국군 2사단·9사단이 중국군과 싸워, 삼각고지 전투는 중국군이 승리했다.


중국의 승리 가능성은 회의적

이에 동조하듯 중국 SNS와 커뮤니티에는 미국산 브랜드를 사지 말자는 글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5월22일 중국국제항공·남방항공·동방항공 등이 미국 보잉에 B-737 맥스8 항공기 운항 중단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중국은 지난 3월 에티오피아항공의 737 맥스8 여객기가 추락하자, 최초로 B-737 맥스8 모든 기종의 운항 중단을 결정했다. 현재 중국이 보유한 B-737 맥스8 기종은 96대에 달해 세계에서 가장 많다. 그동안 어떤 항공사도 장시간 운항 중단에 따른 손실을 보잉에 배상 청구하지 못했다. 하지만 중국 메이저 3사가 약속이나 한 듯 동시다발로 소송을 냈다. 따라서 향후 손해배상을 내는 항공사들이 뒤이을 전망이다. 하이난(海南)항공과 샤먼(廈門)항공은 이미 소송 계획을 밝혔다. 다른 한쪽에서는 미국의 무역보복 조치 타깃이 된 화웨이 상품을 구매하자는 ‘애국소비’ 캠페인도 일어났다.

그렇다면 중국의 인민전쟁은 승리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능성은 별로 없다. 중국인들이 미국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태도가 다른 나라들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은 정치·경제·산업·군사·문화·교육 등 모든 영역에서 ‘슈퍼파워’다. 중국인들에게 경외의 대상이다. 그들에게 미국 상품을 쓰는 건 첨단 및 최신 유행을 향유하는 행위다. 실제 5월 중국 극장가는 미국 영화가 휩쓸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42억3882만 위안(약 7300억원)의 흥행 수입을 거뒀다. 5월24일 개봉한 《알라딘》도 박스오피스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물론 불매운동에 일부 미국 제품은 직격탄을 맞았다. 애플은 올해 1분기 중국 시장점유율이 7%로 전년 동기보다 2.1% 하락했다. 그에 반해 화웨이는 지난해 26.4%에서 올 1분기에는 29.4%로 증가했다. 2018년 미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290만 명에 그쳐 전년보다 5.7% 줄어들었다. 이는 15년 만에 처음으로 방미 중국인이 감소한 것이다. 올해 중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유학 선호지 설문조사에서도 사상 처음으로 미국이 2위(17%)로 밀려났다. 1위는 20%인 영국이었다.

그러나 애플의 고전은 가성비를 중시하는 중국인들의 소비 변화와 관련이 깊다. 또한 미국 여행이나 유학이 줄어든 것은 미국 정부가 중국인의 비자 발급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벌써 1년을 넘긴 미·중 무역전쟁에 중국인들의 불안감이 늘고 있다. 이는 최근 부동산시장이 침체한 데다 증시 주가가 급락하고, 식료품 가격이 뛰어오르면서 증폭되고 있다. 상하이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는 허이밍(가명)은 필자에게 “향후 경제 상황에 먹구름만 끼어 있고, 언제 부동산에서 거품이 터질지 몰라 가끔씩 잠을 설친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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