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들은 왜 금감원에 아이쿱을 진정했나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19.06.05 08:00
  • 호수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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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원대 차입금 위법 의혹…반환 불능 우려 커져

28만여 명 조합원을 둔 국내 1위 생활협동조합 아이쿱생활협동조합연합회(아이쿱)의 유사수신행위 의혹 등을 조사해 달라는 진정이 금융감독원에 제기됐다. 진원은 조합원들로 구성된 아이쿱바로세우기평조합원모임(조합원모임). 이들은 지난 5월24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런 내용이 담긴 진정서를 냈다.

아이쿱의 유사수신행위 의혹은 2015년 시사저널 보도를 통해 처음 공론화됐다. 아이쿱이 인허가를 받지 않은 채 시중금리보다 높은 이자율을 제시하며 자금을 모집하고 있다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또 아이쿱의 경영상황으로 미뤄 조합원들이 차입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그로부터 3년9개월여가 지난 지금에 와서 조합원모임이 문제를 제기한 까닭은 무엇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차입금 반환 불능에 대한 위험성이 체감될 정도로 커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면, 아이쿱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경기도 군포시 공단로 군포 아이밸리에 위치한 아이쿱생협 ⓒ 시사저널 임준선
경기도 군포시 공단로 군포 아이밸리에 위치한 아이쿱생협 ⓒ 시사저널 임준선

“유사수신행위 여부 조사해 달라”

시사저널이 입수한 진정서에 따르면, 조합원모임이 조사를 요구한 부분은 크게 세 갈래다. 먼저 상기한 아이쿱의 유사수신행위에 관한 법률 위반 여부가 있다. 아이쿱은 2012년부터 조합원들에게 시중금리보다 높은 6% 전후의 이자율을 내세워 차입금을 모집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유사수신행위는 인허가를 받지 않거나 등록·신고를 하지 않고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업(業)으로 하는 행위를 말한다. 사실상 무허가 금융기관을 운영하는 셈이다.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은 장래에 출자금의 전액 또는 이를 초과하는 금액을 지급할 것을 약정하고 출자금이나 예금·적금·부금·예탁금 등의 명목으로 금전을 받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조합원모임은 아이쿱이 이런 법규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조합원모임이 지금까지 파악한 차입금 규모는 1000억원을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쿱이 고율의 이자를 무릅쓰고 거액의 자금을 모집한 가장 큰 이유는 충청북도 괴산군과 전라남도 구례군에 대규모 클러스터를 조성하기 위해서였다. 클러스터는 식품의 제조와 유통이 한곳에서 이뤄지는 복합시설이다. 아이쿱은 조합원 차입금 등을 동원해 2014년 구례자연드림파크를 조성했고, 지난해 11월에는 괴산드림파크도 문을 열었다. 이곳 클러스터에서 생산·가공된 식품은 전국 아이쿱 자연드림 매장에서 판매된다.

아이쿱 관계사인 협동지기상조회의 은행법 위반 여부에 대한 조사 요구도 있다. 이곳은 조합원들로부터 모집한 자금으로 운영되는 상조회다. 조합원모임은 협동지기상조회가 아이쿱으로부터 구례자연드림파크를 관리하는 오가닉클러스터 주식을 매입한 것과 쿱도우·쿱스토어 등 관계사들에 연 4.4% 금리로 대출을 해줘 연간 수십억원의 이자 수익을 올린 점 등을 은행법 위반으로 봤다. 은행업은 예금을 받거나 유가증권 또는 그 밖의 채무증서를 발행해 불특정 다수로부터 채무를 부담함으로써 조달한 자금을 대출하는 것을 업(業)으로 하는 행위다. 은행법에 따른 인가를 받지 않고 은행업을 영위했다는 것이 조합원모임의 주장이다.

또 다른 아이쿱 관계사 파머스쿱은 협동조합기본법을 위반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파머스쿱은 협동지기상조회와 마찬가지로 오가닉클러스터·쿱청과·쿱도우·쿱스토어·쿱양곡 등에 최고 6.9%의 이자를 약속하고 수십억원대 대출을 내줬다. 문제는 파머스쿱이 생산자들로 구성된 사회적협동조합이라는 데 있다. 협동조합기본법에는 협동조합이 금융 및 보험업을 영위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조합원모임이 파머스쿱이 협동조합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아이쿱바로세우기평조합원모임은 5월24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이쿱생협 차입금 모집과 관련한 금감원의 조사를 촉구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아이쿱바로세우기평조합원모임은 5월24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이쿱생협 차입금 모집과 관련한 금감원의 조사를 촉구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아이쿱 측 “차입금 상환 못 한 적 없다”

이와 관련해 아이쿱 관계자는 “협동조합의 경우 조합원 출자금이 부채로 취급돼 금융권 대출이 어렵고 주식회사처럼 주식이나 회사채를 발행하지도 못하는 데다 금융이나 보험 분야의 사업은 아예 진입조차 못하게 돼 있다”며 “이런 제약 때문에 불가피하게 조합원들로부터 자금을 차입하는 방법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조합원이 생협과 협력하는 생산자와 관계사에 자금을 빌려주는 것을 유사수신행위로 치부하는 건 너무 악의적인 주장”이라며 “유사수신행위를 규제·감독하는 금감원에서도 아이쿱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거나 위법하다는 판단 또는 조치를 취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최근 금감원에 진정서를 제출한 조합원모임의 입장은 달랐다. 이들은 최근 아이쿱 경영의 난맥상이 드러나는 여러 징후가 포착됨에 따라 차입금 반환 불능에 대한 위기감이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그 대표적 사례로 오가닉클러스터의 경영성적표를 제시했다. 이 회사는 2013년부터 매년 12억원에서 41억원에 달하는 적자행진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에는 34억7800만원의 순이익을 냈지만 그해 보유 중이던 부동산을 42억4200만원에 매각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7억원대의 순손실을 낸 셈이다.

반면, 차입금 증가로 인한 이자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2012년 오가닉클러스터의 이자 비용은 3억2800만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자 비용은 계속 증가했고, 지난해엔 18억8400만원까지 늘어났다. 상황을 반전시킬 카드도 마땅치 않다. 생협업계 환경이 날로 어려워지고 있어서다. 유통업계 전반의 불황과 부진한 조합원 모집 등이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여기에 대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친환경식품 시장에 진출하면서 업계 전반의 성장성은 둔화되고 있다. 

조합원모임은 오가닉클러스터의 자금 흐름에 문제가 생긴 정황도 포착했다고 주장했다. 최근 보유 자산을 현금화하고 있다는 점을 들면서다. 실제, 오가닉클러스터는 지난해 매각한 부동산(42억4200만원) 외에 올해 2월에도 구례자연드림 내 공장 부지 등 부동산 두 곳을 매각했다. 만일 조합원모임의 우려대로 조합원들이 차입금을 변제받지 못할 상황이 초래될 경우 문제는 심각하다. 아이쿱은 금융기관이 아니어서 돈을 내준 조합원들은 예금자보호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어서다.

이와 관련해 아이쿱 관계자는 “구례자연드림은 현재 사업 초기 단계로 계속된 투자가 이뤄지다 보니 적자 발생이 불가피했던 것”이라며 “사업이 궤도에 오르면 재무 상황은 호전될 것이고 차입금 상환에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실제 그동안 한 번도 차입금 상환을 못한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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