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맨》 시리즈의 최종장, 다크 피닉스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6.08 12:00
  • 호수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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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한 결말, 세계관 소화 능력 아쉬워

슈퍼히어로 영화 전성시대가 열리기 전, 《엑스맨》 시리즈의 뮤턴트들이 있었다.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존재들이지만 세상으로부터 괴물 취급을 받는 돌연변이들. 이들이 자신들의 재능을 이용해 세상을 이롭게 해야 한다는 쪽과, 상처받는 대신 세상을 지배해 버리자는 쪽으로 나뉘며 《엑스맨》 시리즈는 뮤턴트들의 긴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담아왔다.

《엑스맨》(2000)에서 출발한 이 방대한 시리즈가 20여 년의 마침표를 찍고 재정비에 들어간다. 《엑스맨: 다크 피닉스》(이하 《다크 피닉스》)는 프리퀄로 새출발했던 시리즈의 마지막 영화. 진 그레이(소피 터너)가 강력한 힘을 지닌 ‘다크 피닉스’로 진화하며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는 이야기다. 새 영화를 이야기하기 전, 간단히나마 《엑스맨》 시리즈의 유구한 역사를 되짚을 필요가 있다.

영화 《엑스맨: 다크 피닉스》의 한 장면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영화 《엑스맨: 다크 피닉스》의 한 장면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유구한 역사를 지닌 시리즈

같은 핏줄을 타고났으나 가는 길이 달랐던 형제들. 그간 《엑스맨》 시리즈와 MCU 슈퍼히어로 영화들의 운명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영화화 판권을 소유한 회사가 달랐기 때문이다. 《엑스맨》 시리즈의 판권은 20세기 폭스, 《스파이더맨》의 판권은 소니 픽처스, 《아이언맨》을 포함한 MCU 제작 영화들의 판권은 마블 스튜디오 소유로 한동안 갈라져 있었다. 마블 히어로들이 총출동하는 《어벤져스》 1편에 스파이더맨이 출연할 수 없었고, 《엑스맨》 뮤턴트들이 MCU에 한 번도 등장하지 못했던 건 그래서다.

판권은 넘기지€않았지만 소니는 마블 스튜디오와의 협업 형태로 스파이더맨을 MCU에 출연시켰다. 그럼 뮤턴트들은? 디즈니가 20세기 폭스를 인수하면서 《엑스맨》 시리즈의 상황은 좀 더 복잡해졌다. 잘 알려졌듯 디즈니는 앞서 마블 스튜디오 역시 인수했다. 디즈니의 이름 아래 마블의 거의 모든 히어로들이 뒤늦은 한집 살이를 시작한 것이다.

그간 《엑스맨》 시리즈는 MCU와는 전혀 다른 체계로 운영돼€왔다. MCU는 케빈 파이기라는 제작자를 중심으로 히어로들을 순차적으로 선보이고 이후 《어벤져스》, 나아가 우주로까지 세계관을 넓혀왔다. 반면 《엑스맨》 시리즈는 누군가의 장기적 안목으로 이어져 온 세계는 아니다. 애초에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출발시킨 《엑스맨》은 《엑스맨》 《엑스맨2-엑스투》(2003), 《엑스맨-최후의 전쟁》(2006·브렛 래트너 감독)까지 ‘오리지널 3부작’으로 이어졌다. 흥행에 따른 속편 제작 방식이었다.

이후 《엑스맨》은 놀랍다면 놀라운 방식으로 시리즈의 명맥을 이어왔다. 《엑스맨》 시리즈의 핵심 멤버인 울버린(휴 잭맨)을 중심으로 한 개별 스핀오프 시리즈를 선보인 것이다. 그리고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프리퀄을 선보인다. 뮤턴트들은 어떻게 프로페서 X의 편과 매그니토의 편으로 갈라지게 됐는지 그 기원을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 프리퀄 시리즈의 첫 영화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2011·이하 《퍼스트 클래스》)가 그렇게 탄생했다.

이후 이 프리퀄 시리즈는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2014)에 이르러 시간여행 설정을 통해 《엑스맨》 시리즈의 타임라인 전체를 조정했고, 이후 《엑스맨: 아포칼립스》(2016) 그리고 이번 《다크 피닉스》까지 이어졌다. 그사이 울버린 캐릭터는 《로건》(2017)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엑스맨》 시리즈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데드풀 캐릭터 또한 독자적인 시리즈로 탄생했다.

따라서 《엑스맨》 시리즈는 어긋난 타임라인, 각 편당 설정 충돌 등을 꾸준히 지적받아 왔다. 하나의 커다란 계획 안에서 개별 영화들이 진행된 것이 아니기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다행인 건 프리퀄 시리즈부터는 《엑스맨》 시리즈가 하나의 일관된 세계관을 나름 착실하게 유지하려 노력을 기울인다는 사실이다. 시리즈로 다시 컴백한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프리퀄의 2·3편을 이끌어줬고, 《다크 피닉스》의 연출은 《퍼스트 클래스》부터 프리퀄 시리즈의 각본과 제작에 연이어 참여해 온 사이먼 킨버그가 맡았다. 이번 작품의 각본을 직접 쓰기도 했다.

시리즈가 거쳐온 긴 세월의 바통을 넘겨받은 《다크 피닉스》는 어떨까. 영재 학교를 세운 찰스 자비에(제임스 맥어보이)는 뮤턴트들과 함께 화양연화를 보내는 중이다. 세상은 이제 뮤턴트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슈퍼히어로처럼 대한다. 그사이 우주선에 갇힌 이들의 구출작업을 시도하다 정체불명의 에너지에 노출된 진은 어둠의 힘에 눈을 뜨고, 미스터리한 외계 존재 부크(제시카 차스테인)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진에게 접근해 온다.

영화 《엑스맨: 다크 피닉스》에서 행크와 찰스의 모습(왼쪽부터)
영화 《엑스맨: 다크 피닉스》에서 행크와 찰스의 모습(왼쪽부터)

히어로와 빌런 모두 여성이라는 특이점

우선 히어로와 강력한 빌런 모두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다크 피닉스》는 시리즈 안에서도, 또한 모든 슈퍼히어로 영화들 안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점한다. 두 캐릭터는 스스로 “감정 때문에” 약해지는 여성 캐릭터의 약점을 이야기하면서도, 역으로 바로 그 점 때문에 강해지는 캐릭터들을 완성한다. 다크 피닉스를 대하는 뮤턴트들은 그를 맞서 싸워야 할 대상으로 봐야 할지, 사랑하는 친구로서 지켜야 할지 혼란에 처하며 새로운 종류의 갈등을 겪는다. ‘다른 존재’라는 사실 때문에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때론 사랑하는 이들을 다치게 한 뮤턴트들의 고뇌는 진의 캐릭터가 안은 상처를 중심으로 여전히 작품 전체를 지탱한다.

다만 프리퀄 시리즈의 세계를 강력하게 다져온 찰스 자비에와 에릭 랜셔(마이클 패스벤더), 레이븐(제니퍼 로렌스)과 행크(니콜라스 홀트) 등 기존 멤버들의 퇴장을 처리하는 방식은 조금 아쉬운 편이다. 《엑스맨》 시리즈의 가장 큰 숙제였던 ‘세대교체’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해도 심심한 결말이다. 코믹스 원작 중에서도 걸작으로 손꼽히는 ‘다크 피닉스 사가’의 깊이 있는 세계관을 전부 소화해 내지 못한 점도 아쉬움으로 지적될 만하다.

대신 《다크 피닉스》까지 마무리되면서 이제 《엑스맨》 팬들의 시선은 좀 더 먼 곳을 향하게 됐다. 이후 마블 스튜디오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달고 호러로 재탄생하는 《뉴 뮤턴트》(2020년 개봉 예정)부터 다시 새롭게 쓰일 《엑스맨》의 서사는 어떨까. MCU와 통합된다면 어떤 모습일까. 《엑스맨》의 여정은 아직 완전히 끝난 게 아니다.

 

베스트 엑스맨 시리즈

‘공존’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엑스맨》(2000)은 지금 다시 돌아보면 더 좋을 영화다. 단순한 액션 오락영화에 그치지 않고 인종차별, 소수집단에 대한 편견을 철학적으로 녹여낸 작품이다. 《엑스맨》의 기본 정신이기도 하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잠시 떠난 동안 시리즈에 젊은 활력을 불어넣고 《007》 시리즈의 향기마저 아른거리는 매력적인 작품으로 프리퀄의 첫발을 뗀 매튜 본의 《퍼스트 클래스》 역시 이 시리즈의 베스트 편으로 꼽을 만하다. 그리고 《로건》이 있다. 강력한 뮤턴트가 아닌, 회한 가득한 늙고 지친 총잡이의 모습으로 울버린을 떠나보낸 이 영화는 슈퍼히어로 영화와 서부극 신화의 좋은 조합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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