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금피아’ 논란에도 재취업 완화 카드 ‘쑥’
  • 김희진 시사저널e 기자 (heehee@sisajournal-e.com)
  • 승인 2019.06.13 14:00
  • 호수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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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노조 “직업 선택의 자유 침해” 헌법소원
금융권 재취업 전관 가운데 금감원 출신 ‘최다’

금융감독원 노동조합이 퇴직 후 재취업 제한 규정을 완화해 달라는 내용의 헌법소원을 공식 청구했다. 금감원 노조 관계자는 “4급 이상 직원부터 퇴직 후 재취업에 제한을 받는 규정이 헌법에 명시된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소원 청구 이유를 설명했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을 살펴보면, 금감원 4급 이상 직원은 퇴직 후 3년, 퇴직 전 5년 동안 속했던 부서의 업무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기관에 재취업할 수 없다. 한국은행·예금보험공사 등 대다수 공공기관이 2급 이상 직원에 대해서만 재취업을 제한하는 것과 비교하면 제한이 더 엄격한 편이다.

금감원 직급체계는 1급 국장, 2급 국장·부국장·팀장, 3급 팀장·수석조사역, 4급 선임조사역, 5급 조사역으로 구성돼 있다. 통상 5급으로 입사해 4급으로 승진하기까지 평균 5년가량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금감원 직원은 30대 초중반부터 금융권 내 이직을 제한받는 셈이 된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금감원 ⓒ 시사저널 이종현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금감원 ⓒ 시사저널 이종현

공공기관 지정 압박에 인력 감축 약속

금감원 재직 공무원에 한해 제한 범위가 확대된 조치는 2011년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이른바 ‘저축은행 사태’에서 비롯됐다. 당시 저축은행에 재취업한 금감원 퇴직 간부들이 금감원을 상대로 로비를 하는 등 비리가 드러나면서 금감원 내부의 조직적 부패가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이 사건으로 정부는 금감원 직원 중 취업 제한 대상을 기존 2급에서 4급 이상으로 대폭 강화했다.

금감원 측은 현행 공직자윤리법에 따른 취업 제한 조치는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금감원은 앞서 지난 2012년에도 같은 내용의 헌법소원을 청구했으나 한 차례 기각된 바 있다.

금감원이 재취업 규제 완화에 계속 매달리는 배경에는 인력 구조조정이라는 명분이 깔려 있다. 지난 1월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운영회(공운위)를 열고 금감원의 구조조정안을 받아들이는 대신 금감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민관으로 구성된 공운위원들은 금감원이 향후 5년 내 3급 이상 상위 직급 인력을 35%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계획을 제출해 확정함에 따라 금감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금감원은 공공기관 지정은 피했으나 향후 상위 직급 감축 계획을 충실히 이행하고 매년 공운위에 인력 감축 이행 실적을 제출할 것을 약속했다. 인력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지면서 취업 제한 규정은 금감원의 인력 축소에 부담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금감원 노조 관계자는 “2014년 기준 3700여 개였던 취업 제한 기관이 지금은 1만7000여 개에 달한다”며 “지난번 공공기관 지정 논의와 관련해서도 인력 감축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인데 재취업 퇴로가 없어 제한 규정이 더욱 부담스럽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여전히 ‘금피아’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금감원이 전관예우나 낙하산과 같은 고질적 폐해를 해결하지 못한 채 재취업 제한 완화를 논하는 건 시기상조라는 비판이 나온다. 금피아란 금감원와 마피아의 합성어로 퇴직 후 피감기관인 금융사에 재취업한 금감원 퇴직자를 이르는 말이다.

금융 당국 출신 인사가 민간 금융회사의 임원으로 취임하는 인사 관행은 2011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에도 지속돼 왔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 1월 발표한 ‘금융 당국 출신 인사와 금융회사 재취업에 따른 경제적 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2011~16년 금융회사 재직 임원 중 16.3%가 공직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 공직 경력자의 대다수인 66.2%가 기재부·금융위원회·금감원·한은 등 금융 당국 출신 인사였다.

특히 금감원 출신 인사를 민간 금융회사 임원으로 영입하면 그렇지 않은 회사보다 감독 당국으로부터 제재를 받을 확률이 16.4% 감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KDI 관계자는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출신 인사를 영입했을 때는 제재 감소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며 “이는 실질적 감독권이 금감원에 집중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금감원 노조가 퇴직 후 재취업 제한 규정을 완화해 달라는 취지의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금감원은 2017년 인사 비리 등으로 압수수색을 받기도 했다. ⓒ 연합뉴스
금감원 노조가 퇴직 후 재취업 제한 규정을 완화해 달라는 취지의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금감원은 2017년 인사 비리 등으로 압수수색을 받기도 했다. ⓒ 연합뉴스

전관예우·낙하산 여전해 ‘제 배 불리기’ 비판

이런 효과를 방증하듯 금융권에 재취업한 전관 가운데 금감원 출신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KDI가 2017년 12월 발표한 ‘한국 금융감독 체계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연구’ 보고서를 살펴보면, 2006년부터 2016년까지 금융회사 임원의 전체 인원수는 3만1776명이다. 이 중 5대 금융 당국(금감원·금융위·기재부·한은·예보) 출신 임원은 총 4143명으로 전체 임원의 13.0%를 차지했다.

5대 금융 당국을 기관별로 나눠 살펴보면 금감원 출신 임원이 10년간 총 1318명으로 전체 임원 중 4.3%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뒤이어 기재부 3.6%(1133명), 금융위 2.4%(738명), 한은 2.5%(771명)였으며 예보 출신자가 0.6%(183명)로 5대 기관 중 가장 적었다. 금융감독 업무를 하는 기관인 금감원 출신 임원이 5대 기관에 가장 많이 포진해 있는 셈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금감원의 인사 관행에 명백한 개선점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취업 제한 완화를 주장하는 것은 결국 ‘제 배 불리기’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금감원 직원을 대상으로 취업 제한이 확대된 근본적 이유는 저축은행 사태 등 금감원 출신 인사의 비리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재취업 제한 완화를 논하기 전에 관행적으로 이어져 온 인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선행돼야 하는데, 금감원은 자신들의 향후 진로에만 관심이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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