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공신력의 무게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6.10 09:00
  • 호수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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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3일 사뭇 흥미로운 ‘토크 배틀’이 있었다. 주인공은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다. 두 사람은 각자 5개씩 준비해 온 주제를 놓고 토론을 벌였다. 서로를 ‘홍 대표’와 ‘유 장관’으로 호칭하며 가끔 손을 맞잡는 등 친밀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민감한 얘기가 나오면 목소리를 높이며 맞섰다. 보수·진보 1위 유튜버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정치 유튜버 챔피언스리그’라는 별칭까지 얻은 이날 토론은 조회 수 130만 회(6월4일 현재)를 넘기며 흥행에서도 괜찮은 성적을 거두었다.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유시민 이사장(왼쪽)과 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가 6월3일 오후 '유시민의 알릴레오'와 'TV홍카콜라'를 조합한 '홍카레오' 토론배틀을 마치고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나오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유시민 이사장(왼쪽)과 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가 6월3일 오후 '유시민의 알릴레오'와 'TV홍카콜라'를 조합한 '홍카레오' 토론배틀을 마치고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나오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날 방송이 눈길을 끈 것은 토론이 갖는 화제성뿐만이 아니다. 주최자들이 선택한 플랫폼 또한 특별한 인상을 남겼다. “동영상이 대세”라는 시대 흐름을 반영한 이벤트였다는 평가도 그래서 나온다. 두 사람의 토론을 방송한 ‘홍카레오’(홍 전 대표의 ‘TV홍카콜라’와 유 이사장의 ‘알릴레오’를 합친 말)처럼 최근에는 동영상 홍수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유튜브 방송이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중의 정보 수집 통로가 매스 미디어에서 자신이 선호하는 콘텐츠에 집중하는 ‘스낵 미디어(과자처럼 간편하게 소비하는 언론)’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놓기도 했다.

시사저널의 지난 특집 기사 ‘세상을 바꾸는 기업, 기업을 바꾸는 팬덤’에서 볼 수 있듯이 현대 사회에서 새롭게 주목받는 시장의 힘은 ‘팬덤’이다. 정치인들이라고 그런 팬덤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리 없다. 너도나도 유튜브에 개인 채널을 만들어 더 많은 구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열을 올린다. 그야말로 ‘유튜브 백가쟁명’ 시대다. 이처럼 유튜브가 대세 플랫폼이 되면서 거대한 팬덤을 둔 유튜버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콘텐츠 제작비용이 적게 드는 데다 접근성도 커 유튜브 쏠림 현상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트렌드에 맞춰 최근에는 개인방송을 직업으로 삼는 ‘1인 크리에이터’도 크게 증가했다.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의 희망 직업에 유튜버가 5위에 올랐다는 뉴스가 더 이상 새삼스럽지 않은 상황이다.

유튜브에 들어가 보면 일상생활에 도움을 주는 방송이 꽤 많다. 개인적으로는 욕실 거울에 비누칠을 하면 김이 서리지 않는다는 정보를 유튜브를 통해 얻은 적도 있다. 하지만 유튜브에 밝은 빛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구독자를 끌어들이려는 경쟁이 심해지면서 부정적인 모습 또한 자주 드러난다. 욕설을 한다거나 무모한 도전을 일삼는 경우도 많다. 물론 이런 채널은 걸러내고 유용한 방송만 골라서 보면 되겠지만 문제가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유튜브를 즐겨 보는 구독자 중에 어린이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영상 속 자극적인 말이나 민망스러운 행동이 그들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는 얘기다. 그들을 그런 위험으로부터 지켜내는 일은 전적으로 어른들의 몫이다. 유튜버가 되고 싶다는 초등학생들의 희망이 어긋나지 않게 도우려면 진입로 청소부터 잘 해 줘야 한다.

전 세계에 온라인 소통의 길을 열어준 ‘월드 와이드 웹(www)’이 세상에 나온 지 올해로 30년이 됐다. 창시자인 팀 버너스 리는 30주년 기념 행사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가짜뉴스가 정치 선전에 이용되는 인터넷을 꿈꾼 게 아니다.” 그러면서 그는 “오염된 www를 버리자”고 주장했다. 유튜브든 전통 미디어든 공신력이 오염되면 가짜들이 판치기 마련이다. 유튜브의 생명력은 결국 ‘공신력’이라는 왕관의 무게를 얼마나 받쳐내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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