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흔들어도 우승은 한국!”…US오픈 이정은 우승
  • 기영노 스포츠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6.09 16:00
  • 호수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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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골퍼들의 LPGA 평정 비밀…세계적 수준의 KLPGA가 경쟁력

헤이니의 한국 여자골프 비하성 발언과 이정은의 US오픈 우승 등으로 이래저래 한국 여자골프는 또 한번 미국에서 조명을 받았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의 코치 출신인 행크 헤이니(미국)가 5월29일 한 방송에서 “어차피 US오픈은 한국인이 우승할 것”이라며 “LPGA투어에서 뛰는 (한국인) 선수 6명의 이름을 댈 수가 없다. 이름을 밝힐 필요가 없다면 이씨인 선수라 하겠다”며 농담식으로 말했다. 이는 한국 선수들이 평정하고 있는 LPGA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투의 다분히 조롱 섞인 발언이었다. 그는 또 “똑같은 이름을 가진 선수들도 많다”고 했고, 함께 방송에 출연한 다른 이가 “맞다. 몇 주 전 리더보드에는 6호가 있었다”고 맞장구치기도 했다. ‘이정은6’로 구분됐던 이정은을 지칭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방송이 크게 논란이 된 지 나흘 만인 6월2일(현지 시각) 이정은은 US오픈에서 보란듯이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자 헤이니는 또 트위터에 글을 올려 “내 예상이 적중했다. 한국 여성들은 LPGA투어를 확실히 장악하고 있다”고 자화자찬했다. 헤이니는 부적절한 용어 사용을 했고, 그로 인해 큰 비난과 함께 방송에서도 퇴출당했다. 하지만 이번 논란으로 더욱 부각된 것은 한국 여자골프의 세계 정상급 수준이었다. 헤이니의 발언에는 미국 선수들이 지배하는 PGA투어와는 달리 LPGA투어에서는 한국에 밀려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는 데 대한 다분히 질시 어린 시샘이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LPGA US오픈에서 한국 선수로는 9번째 우승을 한 이정은이 힘찬 벙커샷을 하고 있다. ⓒ 뉴스뱅크이미지
LPGA US오픈에서 한국 선수로는 9번째 우승을 한 이정은이 힘찬 벙커샷을 하고 있다. ⓒ 뉴스뱅크이미지

한국 여자골퍼들에게 LPGA는 꿈의 무대다. 1998년 박세리가 LPGA투어 US오픈을 제패하는 모습을 TV로 지켜보거나, 부모에게 전해 들은 ‘박세리 키즈’들은 처음 골프채를 잡을 때부터 LPGA를 겨냥한다. 골프채를 잡는 순간부터 ‘올인’을 한다. 살아남으면 일단 KLPGA(한국여자프로골프)에서 데뷔하고, 경험을 쌓은 후에 퀄리파잉 스쿨(LPGA 참가를 위한 자격 관문)에 도전하거나 초청선수 자격으로 LPGA 대회에 출전한다. 국내 투어인 KLPGA가 이미 세계적인 수준이기 때문에 이정은과 같이 LPGA에 뛰어들어도 곧바로 우승경쟁에 나설 수 있는 경쟁력이 충분하다.

미국을 대표하는 선수인 제시카 코다는 지난해 8월 미국 골프전문 ‘골프 채널’에 출연해 한국 여자골프 선수들이 강한 이유를 토로했다. 제시카 코다는 “한국 여자선수들은 LPGA 에 오기 전에 이미 프로다. LPGA에서 신인이라고 하지만, 심지어 KLPGA에서 10승을 하고 온 선수들도 있다. 물론 미국에도 주니어골프협회(AJGA)가 있지만 이는 대학을 보낼 목적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5 LPGA 신인왕 김세영은 KLPGA에서 5승을 했고, 2016 신인왕 전인지는 9승, 2017 신인왕 박성현은 10승, 2018 신인왕 고진영은 9승을 거두고 LPGA에 입성했다. 그리고 올해 신인왕이 유력한 ‘이정은6’는 국내에서 6승을 올린 후 LPGA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렇듯 제시카 코다의 지적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 여자선수들은 홈그라운드나 마찬가지인 미국 선수들과 달리 낯선 문화와 영어 그리고 생소한 코스 등에 적응해야 한다. 오히려 타고난 ‘ 공간인지능력’ ‘엄청난 노력’ ‘뚜렷한 목표의식’ 그리고 ‘부모들의 헌신’ 등 미국이나 다른 나라 선수들이 갖지 못한 장점들도 분명히 있다.

이정은 역시 여성골퍼로는 보기 드문 헝그리 스포츠맨 출신이다.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돼 휠체어를 타고 있는 아버지를 대신해 ‘소녀가장’ 노릇을 하고 있다. 장애인 전국체전에도 출전한 바 있는 아버지 이정호씨는 휠체어 탁구선수로 활약을 하고 있어 어머니 주은진씨가 혼자 2명의 선수를 뒷바라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정은은 처음 골프를 시작할 때 중고채를 쓰거나 동료들이 쓰던 골프채를 빌려 시작해 놀림을 받기도 했는데, 그게 “반드시 실력으로 갚아주겠다”는 오기 골프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이정은은 US오픈 우승으로 세계랭킹이 17위에서 5위로 12단계나 뛰었다. 1위 고진영, 3위 박성현에 이어 국내 랭킹 3위다. 지금 같은 추세가 내년까지 이어진다면 4명까지 주어지는 2020도쿄올림픽 출전권도 가능하다. 이정은은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박인비 선배가 금메달 따는 모습을 보면서 올림픽에 출전해 목에 금메달을 거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US오픈 우승은 최고 전성기의 상징

한국 여자골프는 새카맣게 그을린 종아리, 그리고 새하얀 발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1998년 7월7일 그 찬란하던 아침도 역시 잊을 수 없다. 박세리 선수가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미국 여자프로골프 LPGA 메이저대회인 US오픈에서 우승하던 순간이다. US오픈은 ANA인스퍼레이션(한국 선수 5회 우승), 브리티시오픈(6회), 에비앙 챔피언십(2회) 그리고 KPMG 우먼스 PGA 챔피언십(7회)과 함께 5대 메이저대회라 불리지만, 가장 권위가 있고, 상금도 제일 많다. 그리고 선택된 150명만 출전할 수 있다. 우승 선수는 1년간 우승컵을 보관할 수 있고, 1년 후 모조 컵을 약 2000만원에 사야 한다. 그리고 10년간 LPGA 무대에서 활약할 기회가 주어진다.

박세리 선수는 US오픈 우승으로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고, 곧바로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 후 한국 선수들은 2005년 김주연, 2008년과 2013년 박인비, 2009년 지은희, 2011년 유소연, 2012년 최나연, 2015년 전인지 그리고 2017년 박성현 등 모두 8명의 선수가 9번 우승을 차지했다. 모두 자신의 전성기 때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박인비가 2008년 US오픈 정상에 오른 것부터 살펴보면, 2008년부터 2019년까지 12년 동안 무려 8번을 한국 선수들이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헤이니의 시샘 어린 발언이나 ‘US코리아오픈‘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닌 것이다. 

핫 식스, 럭키 식스 그리고 이정은6 

이정은(23)의 KLPGA 등록명은 ‘이정은6’다. 같은 이름의 선수가 등장하면 등록 순서에 따라 이름 뒤에 숫자를 붙인다. 그런 이정은은€유독 6이라는 숫자와 인연이 많다.€우선 1996년생이다. 별명도 ‘핫 식스’ ‘럭키 식스’다. 그리고 2016년에 KLPGA(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에 데뷔해 무승 기록으로 신인왕을 차지했다.€2017년 4월 롯데 렌터카 오픈에서 KLPGA 첫 우승을 차지할 때 1라운드부터 마지막 3라운드까지 사흘 내내 6언더파 66타를 쳤다. LPGA로 가기 전까지 2년 동안 KLPGA에서 올린 승수도 6승이었다. 생애 최고 성적, 즉 최저타수도 60타다.€또한 여자프로골프 사상 최초로 2017년 KLPGA에 걸려 있는 6개의 상을 모두 휩쓸었다. 상금, 대상, 다승, 평균타수,€베스트플레이어 그리고€인기상이다.

‘이정은6’가 여자골퍼로서 성공의 지표에 해당하는 후원사(토니모리 골프단)를 처음 만난 것도 2016년이었고, 2017년 하와이에서 벌어진 LPGA 롯데 챔피언십 대회에 초청선수로 출전해 16위를 차지해 가능성을 보였다. 2018년 대방건설 골프단과 3년간 24억원의 후원금을 받기로 하고 출전한 첫 대회(한국투자증권 챔피언십)에서 16위로 가능성을 보여줬고, 그다음 주 초청선수로 출전한 미국여자프로골프 LPGA 메이저대회인 ‘ANA인스퍼레이션’에서도 유소연과 함께 16위를 차지하며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이정은은€6월2일(현지 시각) 끝난 제72회 US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할 때도 6과의 인연을 이어갔다.€3라운드가 끝날 때까지 선두에 2타 뒤져 6위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4라운드를€마친 스코어가 6언더파 278타였다. 유소연 등 공동 2위와 2타 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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