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나오지 않은 독일 에너지 전환의 ‘진짜 의미’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6.17 11:00
  • 호수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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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요금’ 상승, 사회적 토론 거친 독일 vs 논의 외면하는 한국

지난 5월19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재미있는 ‘보도 설명자료’를 냈다. 독일 슈피겔이 보도한 독일의 에너지 전환에 대해 국내 언론들이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지 못하다면서 슈피겔의 보도 내용에 대한 요약을 제시했다. 한국도 아닌 해외 일에 대해 정부 부처가 나서 별도 자료를 배포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일부 언론은 슈피겔의 보도 내용을 토대로 독일이 지난 5년간 1600억 유로(약 211조원) 이상을 에너지 전환에 쏟아 부었지만 정작 독일 국민들은 이 정책에 대해 비싸고 혼란스럽고 불공정하게 여긴다고 보도했다. 또 온실가스 감축 역시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2050년까지 2조~3조4000억 유로(약 2620조~4455조원)를 투자해야 함을 지적했다. 아울러 정작 에너지 전환의 핵심인 송전망 건설은 지연되고 있으며 태양광 및 풍력발전 산업은 하강기에 접어들고 있다고 슈피겔을 인용해 보도했다. 과연 독일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탈원전을 제대로 추진하는 대표 국가는 독일이다. 독일은 2022년까지 원전을 모두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 EPA 연합
탈원전을 제대로 추진하는 대표 국가는 독일이다. 독일은 2022년까지 원전을 모두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 EPA 연합

자국 에너지 정책 비판한 슈피겔의 속내

독일은 지난 2010년 자국의 전력소비를 2020년까지 2008년 대비 10% 줄이고 온실가스 배출 역시 1990년 대비 40% 감축한다는 계획(Energy Concept)을 발표했다. 원전 역시 2030년 중반까지 단계적으로 폐쇄한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하자 당초 일정을 앞당겨 2022년까지 원전을 모두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더불어 1998년부터 ‘재생에너지법’을 통해 풍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보급에 적극 나선 결과, 2018년 상반기 전체 전력 생산의 36.3%를 재생에너지로 생산해 석탄발전량(35.1%)을 넘어섰다.

이 과정에서 전력요금은 2007년 kwh당 20.64센트에서 2014년에는 29.14센트로 상승했다. 하지만 독일 국민들은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와 에너지 효율 증대를 축으로 하는 에너지 전환에 지지를 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에 따라 풍력 및 태양광 산업의 성장과 고용 확대 등이 이뤄짐으로써 경제 성장과 에너지 효율 증대 그리고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세 가지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체 왜 슈피겔은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자국의 에너지 전환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썼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슈피겔은 에너지 전환 자체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는 이유를 밝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보다 급진적이며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독일은 야심 차게 에너지 전환 정책을 시행해 왔지만 최근 태양광과 풍력의 확대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정체 상태’에 접어들었다. 이런 원인에 대해 슈피겔은 네트워크(송전), 저장 및 정치적 의지 그리고 적절한 관리 등 4가지 요소의 부족을 원인으로 꼽았다.

사실 독일 에너지 전환에 있어 가장 큰 아킬레스건은 송전망 부족과 건설 지연이다. 독일 북부는 풍력발전에 유리해 많은 전력을 생산하지만 정작 주요 수요처는 남부여서 국토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약 7700km의 새로운 고압 송전망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를 반대하는 지자체 및 사회단체들로 인해 950km만 건설된 상태다. 지하화 요구에 따른 비용 급증 등 끝없이 이어지는 환경적 논쟁에 따라 사업은 계속 지연되고 있다. 여기에 연간 25억 유로(약 3조2000억원)가 투입되는 재생에너지 보조금에 대한 과도한 의존,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라 병행돼야 하는 전력망 안정 설비 부족 등은 독일의 재생에너지 확대에 점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슈피겔은 문제가 있으니 과거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펼친 게 아니었다. 오히려 현재 전력생산에 국한된 에너지 전환의 범위를 건축물, 교통 등 분야로 더 확대하는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하는 것이었다. 실제 독일에 존재하는 1900만 채의 주거용 건축물 가운데 400만 채만 에너지 효율적인 주택으로 분류되고 있다. 전체 주택의 25%는 오래된 석유보일러를 여전히 사용 중이다. 교통의 경우도 현재 독일 내에 존재하는 700만 대의 차량 대부분이 휘발유나 경유를 사용하고 있다.

에너지 전환의 확대를 위해 슈피겔은 넘치는 재생에너지로 수소를 생산해 이를 기존의 천연가스 배관 및 저장시설을 이용해 활용하도록 하는 안을 제시했다. 또 배터리에 저장해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저장시스템(ESS) 보급도 제시했다. 아울러 기존 배출권 거래시장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이산화탄소 1톤당 20~180유로에 이르는 강력한 탄소세를 도입하는 안도 요구했다. 결과적으로 슈피겔은 현재의 3~5배에 이르는 재생에너지 확대, 여기서 나오는 전력을 저장해 활용할 수 있는 수소 등 복합연료 체계의 확충,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탄소세 도입으로 구성된 에너지 정책 등 3대 축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기존 세금 및 각종 부담금의 대폭적인 인하 그리고 국민들의 동의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슈피겔이 제시하고 있는 내용 대부분은 최근 한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들과 일맥상통한다. 한국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율을 20%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또 에너지 저장장치인 ESS의 보급 확대 및 수소 중심의 새로운 경제·산업 구조로의 전환을 시작했다. 아울러 세계 최대 수준의 전기차 및 수소연료 전지차에 구매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지속적인 재건축·재개발을 통해 주택의 에너지 효율을 높여나가고 있다. 정책 범위나 내용만 놓고 보면 재생에너지 보급 비율을 제외한 다른 면에서는 오히려 우리가 독일보다 더 적극적으로 시행하는 정책도 많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양국의 가장 큰 차이점은 ‘비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여부다. 독일은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전력요금이 상승할 수밖에 없음을 처음부터 분명히 밝히고, 이에 대한 사회적 수용 여부를 확인한 후 에너지 전환 정책을 전개해 오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는 전력요금 상승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를 회피하고 있으며 오히려 전력요금을 내려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19년 한전은 영업손실 2조4000억원, 당기순손실 1조900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체제가 지속 가능하지 못할 것은 분명하며, 결국 에너지 전환 정책 자체에 대한 비판과 반감만을 가져올 수밖에 없음은 자명하다. 탈원전을 둘러싼 갈등으로 인해 에너지 정책은 짧은 시간에 과도하게 정치화됐다. 이에 따라 합리적인 논쟁과 합의 도출이 어려워진 상황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문제를 회피해서는 근본적인 해결은 이루어질 수 없다.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용기 있는 정치인과 정당을 기대하는 것은 대한민국에서는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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