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본의 늙은 아비는 아들을 죽여야 했을까
  • 류애림 일본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6.14 14:24
  • 호수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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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의존하는 '외톨이 자녀' 늘며 ‘8050 문제’ 부상…가정 문제 치부, 사태 키워

전 일본 농림수산성 사무차관 구마자와 히데아키(76)는 일본 최고 명문인 도쿄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1967년 농림수산성에 들어갔다. 출세가도를 달리던 그는 행정관료로서는 최고 위치인 차관까지 올랐다. 퇴직 후 2005년에서 2008년까지 체코대사를 역임했다. 그의 인생은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구마자와는 6월1일 자신의 아들을 직접 찔러 살해했다. 줄곧 장밋빛으로 보이던 그의 인생은 그렇게 비극을 맞이했다. 과연 남 부러울 것 없는 인생을 살던 일본의 전직 차관과 장성한 그의 아들 사이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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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톨이 자식' 두렵다…'8050' '7040' 문제 부상

구마자와 가정에 문제가 발생한 것은 그가 식품유통국 설탕류과장, 관방비서과장 등 중요 직위를 맡고 있던 1980년대 말쯤이다. 당시 장남은 도쿄의 유명 사립중학교에 진학했지만 2학년 때부터 학교 내 따돌림(이지메)을 당해 등교를 거부했다. 그때부터 장남은 집 안에서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아들은 대학에 진학하면서 자취를 시작했고 직업도 가졌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아들은 스스로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연락한 뒤 도쿄 네리마(練馬)구의 나이 든 부모 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집으로 돌아온 장남은 다음 날부터 아버지 구마자와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그 뒤부터 구마자와와 그의 아내는 1층에서 하루 종일 게임만 하는 아들을 피해 2층에서 없는 듯이 지냈다고 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지 일주일째 되던 지난 6월1일, 집 근처 초등학교의 운동회 날. 장남은 초등학교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시끄럽다, 죽여버리겠다”며 소란을 피웠다. 그때 구마자와의 머리를 스친 것은 며칠 전 가와사키(川崎)에서 일어난 초등학생 20명이 살상당한 사건. 구마자와는 장남도 초등학생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닌지 겁이 났다고 경찰 조사에서 진술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부엌에 있던 칼로 장남의 목과 가슴 등 수십 군데를 찔렀고 경찰에 직접 전화해 자수했다.

구마자와가 떠올린 '가와사키 초등학생 살상' 사건이란, 지난 5월28일 발생한 이와사키 류이치(51)에 의한 흉기난동 사건을 가리킨다. 이와사키는 등교하기 위해 스쿨버스를 기다리던 초등학생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렀다. 초등학교 6학년 학생 한 명과 자녀를 배웅하던 학부모 한 명이 사망하고 18명이 부상당했다. 범인은 스스로를 찔러 사망했다. 누가 말릴 틈도 없이 수십 초 만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이 두 사건으로 지금 일본에서는 ‘8050 문제’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8050은 80대 부모와 50대 미혼의 히키코모리 자녀가 함께 사는 가정을 의미한다. 일본에서는 외톨이 자녀들이 고령의 부모가 연금으로 받는 수입에 기댄 채 생활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70대 부모와 40대 자녀의 경우 ‘7040 문제’라고도 부른다. ‘8050 문제’라는 말을 만든, 오사카(大阪)부 도요나카(豊中)시 사회복지협의회 가쓰베 레이코(勝部麗子)는 “고도 경제 성장기에 일하고 연금을 받는 부모에게 버블 붕괴의 직격타를 맞은 무직의 자식이 의지하며 집 안에 틀어 박힌다”고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적했다. 구마자와의 장남과 이와사키 모두 히키코모리 성향이 있었고 각각 부모, 큰아버지 내외와 함께 살며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히키코모리, 즉 은둔형 외톨이는 등교 거부 문제를 중심으로 1980년대에 사회문제가 되기 시작해 2000년대까지 주목받았다. 2020년대를 코앞에 두고 히키코모리 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세월은 훌쩍 흘렀고 히키코모리들은 40, 50대가 됐다. 중장년화 문제를 인식한 일본 내각부는 그동안 15세에서 39세까지로 한정해서 해 오던 히키코모리 실태 파악 조사를 2018년 12월에는 40~64세를 대상으로도 실시했다. 그 결과 40~64세 히키코모리 인구는 61만3000명으로 추산된다.

일본 내각부가 정의한 중장년 히키코모리는 6개월 이상 다음 상태 중 하나가 지속되는 경우를 일컫는다. △취미를 위해서만 외출한다 △근처 편의점 등에만 나간다 △자기 방에서는 나오지만 집 밖으로는 나가지 않는다 △자기 방에서 거의 나오지 않는다. 신체적 질병을 이유로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거나 임신·육아·간호 등을 위해 집 안에 머무르며 가족 이외의 사람과 이야기 나누는 사람은 제외된다.

8050 문제는 고령자 학대, 경제적 빈곤 문제 등 복합적 문제로 발전한다. 구마자와는 아들의 폭력에 시달린 것으로 보이는데 경찰 조사 당시에도 폭행을 당한 듯한 멍자국이 있었다고 한다. 경제적 문제의 경우 오로지 부모의 연금에 의존해 생활하면서 생기는 문제다. 또 고령의 부모를 돌보기 위해 자식이 일을 그만 둘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는 것 또한 8050 문제의 한 부분으로 경제적 곤궁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2018년에는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 함께 살던 자식이 주위 누구와도 연락 없이 생활하다 고독사한 사건도 다수 보도되었는데, 이것도 8050 문제의 한 부분이다.

경제적 문제의 경우, 사회적 비용의 확대로도 이어진다. 수입이 없는 자식들은 부모 사망 후 부모의 연금으로 생활할 수 없게 되면 정부의 생활보조를 받아 생계를 이어나갈 수밖에 없다.

히키코모리 아들을 살해한 전 일본 농림수산성 차관 구마자와 히데아키 ⓒ REUTERS
히키코모리 아들을 살해한 전 일본 농림수산성 차관 구마자와 히데아키 ⓒ REUTERS

히키코모리, 가정 아닌 사회문제로 인식

KHJ전국히키코모리가족회연합회의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8050 문제의 배경에는 일본 사회의 변화가 있다. 한때 ‘패러사이트 싱글(parasite single·캥거루족)’이란 말이 일본에서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부모와 동거하며 풍요롭게 사는 미혼 자녀를 일컫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경제적 곤란과 미혼율 증가는 깊이 관련돼 있는데 미혼율도 계속해 증가하고 있다. 연금으로 생활을 뒷받침하던 고령의 부모들도 세상을 떠나기 시작했다.

중장년 히키코모리 문제는 이제 막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이제껏 히키코모리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적었다. 종종 히키코모리 문제의 원인으로 가정 불화, 부모와의 신뢰관계 붕괴 등이 꼽혔다. 하지만 해결도 가정 내에서 하려 했던 것이 히키코모리의 장기화, 고령화를 불러왔다. 구마자와의 경우, 주위에 장남 문제를 상담한 적도 없었을뿐더러 이웃들은 장남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히키코모리 지역지원센터를 2009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다만 사회적 고립은 자기 책임, 가족의 책임이라는 인식은 문제 해결을 더디게 한다. 일본 NHK는 ‘히키코모리 위기 100만 명의 서바이벌’이라는 페이지를 통해 히키코모리 경험 공유를 꾀하고 있다. 또한 히키코모리 극복을 위한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와 삶의 방식을 제안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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