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필리핀서 인천 향하던 제주항공 회항 당시 긴박한 상황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9.06.12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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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뉴얼' 지켜 회항했다는 제주항공, 승객 안전 대처는 미숙 지적
“산소마스크 안 된다” 소리치고 가족에게 영상 편지 남겨

6월12일 새벽 3시30분경 승객 149명을 태우고 필리핀 클락공항을 출발해 인천공항으로 향하던 제주항공 7C4604 여객기가 출발 20분 만에 클락공항으로 회항했다. 해당 비행기는 이륙 후 고도를 높이던 중 고도하강 경보가 울려 회항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회항 당시와 이후, 제주항공이 승객들의 안전 확보와 대책 마련에 미흡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해당 여객기에 탑승했던 승객들에 따르면 회항 당시 상황은 긴박했다. 탑승 승객 A씨에 따르면 승객들이 전원 탑승한 후 출발 멘트가 나왔지만, 뒤이어 나온 관제탑의 대기 명령에 따라 1시간 이후인 3시30분경 비행기가 출발했다. 이륙 이후 갑자기 기내가 추워지기 시작했다. 한국 병원에 급하게 가고 있던 한 필리핀 유아가 한기를 느끼는 것을 보고 주변의 한국인이 담요를 요청했으나, "담요는 판매하는 것이라 줄 수 없다"는 승무원의 답변이 돌아왔다.

"승객들이 '산소마스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고 소리쳤지만 승무원들은 산소마스크를 착용한 채 좌석에 앉아있었다"고 탑승 승객 A씨는 전했다. ⓒ탑승 승객 제공
"승객들이 '산소마스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고 소리쳤지만 승무원들은 산소마스크를 착용한 채 좌석에만 앉아있었다"고 탑승 승객 A씨는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전했다. ⓒ탑승 승객 제공

이후 산소마스크가 좌석에 떨어졌다. "안전벨트와 산소마스크를 착용하라"는 멘트가 기내에 반복해 나오자 위급함을 느낀 승객들은 산소마스크를 착용하려 했다. 그러나 산소마스크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승객들은 “마스크가 안 되는 것 같다”고 외쳤지만 직원들은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각자 자리에 앉아 마스크만 착용하고 있었다. 위험을 직감하고 극한의 공포를 느껴 가족들에게 보낼 영상을 남기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A씨는 전했다.

비행기는 4시28분 클락공항에 도착했다. 승객들 중 급하게 이동을 해야 하는 승객들에게 마닐라공항에서 출발하는 대체 항공편을 마련해주겠다고 했지만, 마닐라로 가는 버스 탑승 시간은 11시50분이었다. 승객들은 7시간 반 가량을 공항에서 대기해야 했다. 아버지가 위독해 귀국 비행기를 탔던 한 승객은 아버지의 임종 소식을 회항한 클락공항에서 들어야 했다. 기다리던 승객들에게는 식빵 토스트 한조각씩이 식사로 제공됐다. 내일 새벽 2시30분 비행기를 이용할 승객들에게는 호텔 숙박이 제공됐다.

제주항공 측이 승객들에게 제공한 '보상금 지급 양식'. 탑승 승객 A씨에 따르면 제주항공 측은 승객들에게 "마닐라공항 도착 전 이 양식을 작성해 제출하라"고 말했다. ⓒ 탑승 승객 제공
제주항공 측이 승객들에게 제공한 '보상금 지급 양식'. 탑승 승객 A씨에 따르면 제주항공 측은 승객들에게 "마닐라공항 도착 전 이 양식을 작성해 제출하라"고 말했다. ⓒ 탑승 승객 제공

승객들이 마닐라공항으로 이동하는 버스를 타자마자 제주항공 측은 ‘보상금 계좌 입금 양식’이라는 서류를 주며 고객명과 은행명, 계좌번호 등을 기입해 제출하라고 했다. 개인당 10만원씩 보상금을 주겠다며, “마닐라공항에 도착하기 전에 작성해서 꼭 내라”고 했다는 것이다. A씨는 “금액을 떠나 지연 결항 시에 보상이 되는 양식인데, 비행기 기체 문제로 회항해 생명의 위협을 느낀 승객들에게 사인을 받는 것에만 급급했다”며 “제주항공 측은 사과도 없이 승객들을 뿔뿔이 흩어놓으려고 했다”고 지적했다.

탑승 승객들은 현재 마닐라공항으로 이동 중이다. 이들은 보상금 양식에 사인을 하지 않고 제주항공에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A씨는 “상황을 승객들끼리 공유한 후 대처할 예정”이라며 또 “제주항공은 급하게 수습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관제탑에서 처음에 비행기를 지연시켰던 이유 등을 정확하게 조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제주항공 측은 “회항 도중 상황이 해제됐다. 승객들의 얘기처럼 긴박한 상황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회사 관계자는 “승객들의 입장에서는 공포스러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상황을 급박하게 느꼈을 수 있다. 이륙 직후 고도를 낮추라는 경보가 울려 절차에 따라 산소마스크를 작동했으며, 센서 오류로 실제로 착용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어서 해당 내용을 안내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일부 승객들이 산소마스크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제보가 있으나 착용 시 줄을 당겨 산소 공급이 되도록 한 후 착용해야 하고, 같은 열에 장착된 산소마스크는 한 개의 산소통을 사용하기 때문에 한 좌석은 되는데 옆 좌석은 안 되는 경우는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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