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사회적이고 왕따를 자처하는 '백범' 맘에 들어요"
  • 하은정 우먼센스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6.15 15:00
  • 호수 154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검법남녀》 시즌2로 돌아온 '급이 다른' 배우 정재영

MBC 《검법남녀》는 이른바 ‘비주얼 스타’ 혹은 ‘톱스타’ 없이 성공한 드라마다. 탄탄한 대본을 기반으로 톡톡 튀는 연출과 편집으로 색다른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그 결과 MBC의 첫 시즌제 드라마가 됐다. 방송사 입장에서도 의미 있는 작품이다. 그 중심에는 배우 정재영이 있다. 필자 역시 드라마의 시청자였다. 막연히 ‘연기 잘하는 배우’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그에게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급이 다른 연기력을 매주 안방극장에서 보는 호사를 누렸다고 할까. 그는 상대배우가 누구든 호흡했고, 일관됐고, 묵직하게 극을 이끌었다. 정재영이라는 배우의 진가를 여지없이 발휘했다.

정재영은 시즌1에 이어 《검법남녀》 시즌2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11년 차 까칠한 법의관 백범으로 돌아와 ‘연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진화하는 범죄에 공조 역시 진보했음을 알려주며 까칠한 법의학자 백범(정재영), 열혈신참 검사 은솔(정유미), 베테랑 검사 도지한(오만석)의 리얼 공조를 다룬다. 매회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다양한 사건들이 해결되는 과정 중 거듭되는 반전으로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을 선사한다. 제작보고회와 MBC가 공개한 영상 인터뷰를 정리했다.

ⓒ 하은정 제공
ⓒ MBC

시즌2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 뭔가.

“결정적인 이유가 있지요. 한가하고 스케줄이 바쁘지 않아서요. 하하. 시즌1을 찍을 때 정말 재미있었어요. 당시에 시즌2에 대한 얘기가 나왔고, 저도 재미있게 촬영한지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죠. 사실 시스템의 드라마가 시즌1으로 끝나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나라에 법의관과 검사가 공조하는 드라마가 없잖아요. 에피소드나 사건 등 못 보여드린 게 많아요.”

MBC의 첫 시즌제 드라마다. 주연배우로서 소감은.

“반갑고, 설레고, 기대되고, 만감이 교차합니다(웃음). 시즌2가 현실화돼서 기쁘고 또 기대도 되지만 시청자들이 어떻게 봐 주실까 걱정도 되는 게 사실이에요. 개인적으로 전 한 에피소드를 길게 촬영하는 걸 선호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검법남녀》는 일주일에 2회 분량으로 한 사건이 정리되고 또 다른 사건이 시작되지요. 마치 단편영화 플롯을 찍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촬영을 하면서도 질리지 않아요. 재미있어요. 오히려 사실감도 있고요. 외국에는 이런 장르 드라마가 많은데 우리나라에는 아직 정착되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검법남녀》는 한국식으로 2회 안에 사건을 끝내는 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검법남녀》 리뷰를 보면 정재영 때문에 본다는 의견이 많다. 그만큼 그는 이 드라마에서 20여 년의 배우 내공을 묵직하게 발휘하고 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 같은 시청자들의 반응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냥 해 주는 말이겠죠(웃음). 《검법남녀》는 매회 주인공이 따로 있고, 그분들이 주인공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해요. 《CSI》처럼 마치 주인공은 직장에 출근하는 사람들 같지 않나요? 하하.”

시즌1과 달라진 점이 있나.

“백범은 까칠하고 사회성이 없어요.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싫어하는 인물이죠. 그나마 일을 잘해서 버티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외에는 딱히 내세울 게 없는 인물인 것 같아요. 그 캐릭터가 시즌2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긴 해요. 비사회적이고 왕따를 자처하는 인물인데, 개인적으로 저는 그 부분이 마음에 들어요. 구축해 주신 캐릭터를 제가 더 백범스럽게 소화해야겠죠. 굳이 차이점을 꼽으라면, 시즌2에서는 조금 현실적인 캐릭터가 된 것 같아요. 시즌1에서 뭐든 척척 알아내고 유능했다면 시즌2에서는 난관에 부딪히고 헛발질도 하거든요. 무엇보다 1년 동안 얼굴도 삭았죠(웃음).”

업그레이드된 백범 캐릭터는 없나?

“음, 방금 말했듯이 주름이 업그레이드됐어요. 1년 동안 늙었다니까요(웃음).”

극 중 백범은 까칠하다. 유행어도 있었다. “질문이 틀렸어!” “나가!” 등 ‘버럭’하는 대사가 그것. 그는 “여전히 까칠하니까 시즌2에서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뭐 사람이 쉽게 변하나. 갑자기 변하면 오히려 이상하지”라며 백범의 귀환을 알렸다.

정재영은 스스로 캐릭터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융통성 운운하며 비리를 적당히 눈감아주고, 인맥이 중요하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사람들 때문에 백범처럼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오히려 필요하다는 것. “냉정해 보이지만 지켜야 할 것들은 지키잖아요. 결국 그게 정직한 거니까요. 저는 그런 사람이 썩 괜찮아 보여요.”

그는 스스로 백범과 자신이 비슷한 면이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편이 아니고, 친구도 별로 없다. 그래서 역할에 더 빠져들었을지도 모른다.

신들린 연기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어떤 배역을 하더라도 배우 개인이 가지고 있는 것들이 투영되기 마련이에요. 백범도 정재영식의 표현이 돼 있지 않은가 싶어요. 연기를 하면서 법의학자라는 직업이 보통 사람은 하기 힘든 직업이라는 사실을 느껴요(실제로 우리나라엔 현재 법의관이 30명 정도 있으며, 1년에 700구까지도 부검을 실시한다). 개인적인 사명감이나 가치관이 없으면 선택하기 힘든 직업이에요. 저라도 주변에서 누가 이 직업을 선택한다고 하면 말릴 정도로 극한 직업입니다. 새삼 연기를 하면서 존경스럽고 또 직업인으로서 본받을 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시즌제 드라마의 장점은 뭔가.

“배우와 제작진들의 돈독한 호흡이 아닐까 싶어요. 촬영장에 가면 연기 때문에 모인 게 아니라 항상 같이 있었던 것 같은 편안한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특별한 촬영장 에피소드가 오히려 없는 것 같아요.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촬영하는 중입니다.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낯가림이 심해 이런 분위기가 참 좋아요.”

시즌1에서 가장 인상 싶었던 장면은 무엇인가.

“엔딩 장면요. 출연하는 배우가 한 앵글에 다 나왔어요. 그 느낌이 좋았고, 시청자들에게도 좋은 서비스가 됐던 것 같아요. 기억에 많이 남아요.”

정재영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연기를 하고 싶어 한다. 심드렁한 성향이지만 연기에 대한 열정은 뜨겁다. “하고 싶은 것을 죽기 전까지 하고 싶다는 욕심만큼 큰 욕심도 없는 것 같다. 어쩌면 가장 행복한 삶일 것 같기도 하고.” 스스로의 연기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뭔가 한 꺼풀이 더 벗겨져야 할 것 같은….” 이런 이유로 그의 연기는 연기 좀 한다는 젊은 연기자들이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계속 업그레이드 중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