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SRF와 정치의 야합?…길 잃은 나주열병합발전소
  • 정성환 호남취재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19.06.14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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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째 끝이 안 보이는 나주 SRF열병합발전소 갈등
‘동상이몽’ 한난-주민-지자체 삼각함수에 협상 ‘난항’
“풀뿌리 정치 죽었다” 주민들, 지역 정치권 무능·불통 규탄

전남 나주시 산포면 신도산단 내 나주 열병합발전소. 정문 건너편에 나주 빛가람혁신도시 주민들이 매주 화요일 집회를 하기 위해 설치해 놓은 천막이 시야를 가로막았다. 그럼에도 한가한 농촌 마을에 파묻힌 탓인지 육중한 발전소 건물과 함께 평화로운 풍경 느낌이다. 하지만 이곳에는 기업 이익 추구와 공익, 지자체의 무능과 불통, 지역정치권의 표 계산, 주민들의 생명·환경추구권, 이웃 지자체와 갈등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나주 열병합발전소 갈등, 지역정치권 규탄 집회 안과 밖

전남 나주 SRF열병합발전소 가동에 따른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격인 혁신도시 주민 600여명은 6·13 지방선거 1주년을 맞은 13일 오전, 나주시청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전남 나주 SRF열병합발전소 가동에 따른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격인 혁신도시 주민 600여명은 6·13 지방선거 1주년을 맞은 13일 오전, 나주시청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나주 열병합발전소 가동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지난 2017년 9월 28일부터 매주 화요일 발전소 정문 앞, 혁신도시 호수공원, 이전 공공기관 청사 앞 등에서 2년째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집회는 직접적 피해 당사자인 빛가람혁신도시 주민과 이전 공공기관 가족들이 주도하고 있다. 벌써 87회째다. 지역주민 600여명은 6·13 지방선거 1주년을 맞아 13일 오전, 나주시청 앞에서 반대집회를 열었다. 

지난 지방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지역 정치인들이 열병합발전소 사용연료를 ‘SRF 대신 LNG 100%’로 전환하겠다는 공약을 실천하지 않은 데에 대한 집단 항의였다. 다른 측면에선 ‘SRF와 정치의 야합’이라는 세간의 의혹을 따끔하게 지적하기 위해 모였다. 이날 집회는 정치인 규탄 집회로 ‘불통’과 ‘배신’이란 키워드에 초점이 맞춰졌다. 집회가 시작되자 주민들은 지방권력에 대한 불신 가득찬 발언을 쏟아냈다. 

특히 오랫동안 문제해결을 하지 못한 강인규 나주시장과 지역 정치권의 무능, 선거공약 파기에 지역주민들의 비판 목소리가 집중됐다. 주최 측은 행정권력의 불통행정을 규탄하기 위해 연설무대에 “시민을 위한 나주시는 죽었다”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집회장 좌우에는 특정 정치인들의 퇴출(OUT)을 요구하는 문구가 새겨진 만장기가 세워졌다.

때마침 이날 강인규 시장이 개인사로 자리를 비운 탓에 비난의 화살은 나주시의회를 향했다. 아예 지역주민들은 오전 12시께 집회를 마친 뒤 시의회 앞까지 행진을 했다. 이들은 풀뿌리 정치가 죽었다는 의미로 지역 정치인을 규탄하는 문구가 적힌 만장기를 앞세우고 LNG 100%전환 선거공약 이행을 촉구했다. 당초 상여를 앞세워 행진하려 했으나 범대위 안팎의 자제 의견에 따라 취소됐다.

이날 주민들 원성의 목소리가 집회장을 달궜다. 하지만 주민의견에 경청해야 할 지역 유력정치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강 시장은 자신의 선거법 위반 항소심 재판정 출석을 위해 시장실을 비웠다. 김선용 의장 등 나주시 의원들은 의회 현관에서 경찰 경비책임자로부터 “시위대가 몰려오면 출입문을 닫으라”는 등 청사 방호 지침을 듣는 데에 귀를 기울였다. 이들은 집회 행렬이 의회 청사 부근에서 퇴각하자 점심식사를 위해 대기해 놓은 승용차를 타고 청사를 유유히 빠져나갔다. 이를 지켜본 한 주민은 “이게 나주 정치의 현주소다”며 혀를 찼다. 

이날 집회 참여 주민들은 “풀뿌리 정치 죽었다”며 지역 정치권의 무관심을 비난했다. ⓒ시사저널 정성환
이날 집회 참여 주민들은 “풀뿌리 정치는 죽었다”며 나주시와 지역 정치권의 무관심과 불통을 비난했다. ⓒ시사저널 정성환

열병합발전소 가동을 둘러싼 반대집회는 어제오늘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날 집회에 새삼 관심이 쏠린 것은 시기상 미묘함에다 강인규 나주시장이 이틀전(11일) 낸 입장문 때문이다. 강 시장은 이날 광주·전남 공동혁신도시의 열병합발전소 가동 중단 사태 관련 민관 거버넌스의 협의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강 시장은 발전소 가동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자신을 SRF와 동일시하며 반대하는 정치적인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강 시장은 “이 문제는 모두가 힘을 합쳐 해결해야 할 현안이다. 그러나 반대 운동이 정치적 타격을 입히는 정치 운동으로 변질하고 있다”며 13일 나주시청 앞에서 열리는 반대 시위를 겨냥했다. 그는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원만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냉소와 비아냥, 정치적 조롱뿐이었다”고 답답함도 토로했다. 

 

주민, 나주시 불통 저격…“고구마 100개 정도 먹은 것처럼 속이 답답” 

하지만 주민들은 답답함으로 치자면 강 시장보다 자신들이 더 하다고 주장했다. 이날 연단에 오른 한 여성 주민은 “거버넌스에 참관하다보면 고구마 100개 정도를 먹은 것처럼 속이 답답하다”고 맞받아쳤다. 나주시가 비슷한 갈등을 겪은 내포, 세종, 전주 등과 달리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게 주민들의 불만이다. 

나주시의 변심도 주민들을 자극했다. 범대위 관계자는 “그동안 묵묵부답으로 일관해오던 나주시가 6~7차 거버넌스 회의 때부터 갑자기 ‘60일 시험가동’ 등을 말하기 시작했다”며 “이는 한국지역난방공사(한난)으로부터 막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한 나주시가 한난 측의 환심을 사기 위해 동조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이날 집회는 지난 8차 거버넌스회의에서 보인 나주시의 태도 변화와 주민수용조사 범위 관련 주장을 항의하기 위한 의도에서 기획됐다고 설명했다. 

범대위와 나주시는 ‘반경 5㎞’ 내 주민수용조사 범위를 놓고 의견차가 크다. 범대위는 발전소를 중심으로 ‘반경 5㎞’ 내 혁신도시 주민과 이전 공공기관, 자연부락만을 대상으로 주민투표 실시를 주장하고 있다. 반면 나주시는 ‘반경 5㎞’ 범위 내에 포함된 모든 행정 읍·면·동 모든 주민을 대상으로 투표를 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범대위와 나주시의 주장대로라면 투표 참여 대상이 각각 3만여명과 5만여명으로 대략 1.5배 정도 차이가 날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범대위는 직접 피해지역이 아닌 지역까지 포함시켜 결과적으로 주민투표자 수를 늘리는 편법을 동원해 SRF가동 찬성을 관철하려 한다고 나주시에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김선용 나주시의회 의장이 경찰 경비 담당 지휘관으로부터 경력 배치 현황을 들은 뒤 “시위대가 몰려오면 출입문을 닫으라”라는 지침을 전달 받고 있다. ⓒ 시사저널 정성환
김선용 나주시의회 의장이 경찰 경비 담당 지휘관으로부터 경력 배치 현황을 들은 뒤 “시위대가 몰려오면 출입문을 닫으라”는 청사 방호지침을 전달 받고 있다. ⓒ 시사저널 정성환

첫 단추부터 잘못 꿴 나주시의 미숙한 공문 대응…한국난방공사에 빌미 줘

지역주민들은 전남권에 이어 지난 2013년 당시 나주시의 미숙한 공문 대응으로 광주권 생활쓰레기 연료까지 떠안아 처리해야 되는 현실에도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이 사안은 한난이 연료부족을 이유로 광주 양과동 ‘고형연료(SRF) 생산시설’ 사업자인 청정빛고을㈜의 지분을 취득하고 SRF를 반입하는 납품계약을 체결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주민들은 애초 협약에 포함되지 않은 광주SRF 반입은 협약 위반이라고 반발했다. 

그러나 주민들의 항변은 얼마 못가 힘이 빠졌다. 나주시가 한난과의 공문 수발과정에서 허술하게 대응한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나주시가 2013년 8월 29일, 한난으로부터 ‘광주광역시SRF 사용동의 요청’ 공문을 받고, 바로 다음날 “사업이 원활히 추진되도록 행정적으로 적극 지원할 예정이다”고 회신한 것이다. 이후 광주SRF 반입에 대한 주민 반대 등 논란이 커지자 3개월 뒤인 그해 11월 21일 부랴부랴 ‘광주광역시 SRF 반입 반대 및 LNG 대체방안 검토 요청’ 공문을 보내며 스스로 무능함을 드러냈다. 

그러나 뒤늦게 회신 내용을 뒤집은 나주시가 광주SRF 반입 반대 대열의 선두에 서서 광주공격의 첨병 역할까지 해 주위를 의아하게 했다. 강인규 시장은 광주시청 앞에서 1인 시위까지 했다. 대표적 환경문제인 생활쓰레기를 놓고 자치단체장이 이웃 지자체 청사 앞에서 시위까지 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관가에선 이를 두고 당시 자신들이 보낸 공문 내용이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 아니냐고 입방아에 올렸다. 일각에선 이런 행동이 지역주민들의 반발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자신들의 실책을 덮기 위한 ‘액션’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나주시의 “잘 몰랐다”는 해명이 워낙 납득키 힘들어서다.

한난 측은 이때 나주시가 보낸 1차 회신 공문을 바탕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광주SRF의 나주열병합발전소에 반입 정당성을 강변하고 있다. 결국 나주시의 허술한 행정이 논란을 키우는 빌미를 준 꼴이 됐다. 특히 이 회신 공문은 지난해 나주시가 한난과의 법적 다툼에서 지는 데에 결정적 증거자료가 되기도 했다. 사실상 ‘노예 문서’나 다름없는 이 공문이 두고두고 광주SRF 반입 저지나 각종 쟁송에서 나주시의 최대 ‘아킬레스건’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게 더 큰 문제다.

전남 나주시 산포면 신도산단 내 나주 SRF열병합발전소. 지난 2017년 말 완공됐으나 주민 반대로 2년째 가동이 중단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전남 나주시 산포면 신도산단 내 나주 SRF열병합발전소. 지난 2017년 말 완공됐으나 주민 반대로 2년째 가동이 중단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시험가동 직전에서야 SRF연료 사용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발전소 주변 혁신도시 주민 등은 2017년 9월 쓰레기연료 사용반대 범시민대책위원회를 꾸리고 매주 집회에 나섰다. 범대위가 발전소에서 SRF를 원료로 사용하는 것 자체를 극렬 반대하면서 한난과 나주시가 동시에 곤경에 빠졌다. 나주열병합발전소는 그해 말 준공에 앞서 반드시 거쳐야 할 시험가동부터 곤욕을 치렀다. 당초 광주SRF 반입만을 반대해온 나주시도 범대위에 주도권을 잃고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등 변방신세가 됐다. 이런 상황을 두고 일부에선 나주시가 ‘혹(광주SRF 반대)’을 떼려다 오히려 ‘혹(100% LNG 사용)’을 더 붙인 꼴이 됐다고 힐난했다.

지금도 열병합발전소 가동을 둘러싸고 지역주민과 사업자인 한난은 ‘강대강’으로 대치하고 있다. 주민들은 광주SRF 쓰레기를 절대 받을 수 없다며 ‘수소 연료전지’ 내지 ‘100% LNG’ 연료만 사용해 발전소를 가동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1일 최대 440톤의 SRF연료 사용은 1급 발암물질인 다이옥신 배출로 주거지 대기환경과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하다는 이유에서다.   

한난 역시 주민들의 강한 반대에 대해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열병합발전소를 정상적으로 가동하지 못할 경우 어떠한 형태로든 사업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연료전환을 위한 SPC 설립도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반대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다.

양 측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민관협력 거버넌스는 오는 17일 ‘9차 회의’를 열고 ‘시험가동을 통한 환경영향성조사 실시’ 등을 다시 논의할 예정이다. 하지만 합의안 마련은 힘겨워 보인다. 심지어 업계는 나주 SRF문제가 시험가동까지 불발될 경우 파국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내다본다. 지역 주민들이 SRF 사용을 사생결단으로 반대하고 있는 데다 광주권SRF 도입문제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최악의 경우 집단에너지 지역지정을 해제, 도시가스 개별난방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내놓고 있다.

 

“발전소 가동 파국 이르면 이 또한 인재(人災)이자 관재(官災)”

지역사회에서는 끝내 열병합발전소 가동이 파국에 이른다면 이 또한 인재(人災)이자 관재(官災)라고 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경우 나주시는 불통과 관리 능력 부재에 따른 모든 책임을 떠안아야 할 형편이다. 당연히 시정 책임자인 강인규 시장 또한 이같은 책임론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강 시장은 ‘정도’를 자신의 시정 트레이드마크로 삼고 있다. 이날 발표한 입장문에서도 그는 “정치를 처음 시작했을 때 그런 것처럼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단호하게 원칙을 세우고 정도를 걷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어떤 반칙이나 협박과도 타협하지 않고 시민과 함께 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반칙이나 협박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강 시장의 정치철학과 민심에 귀 기울이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지적이다. 나주의 한 주민은 “수개월 전 열린 도민과의 대화에서도 강 시장의 불통이 지적됐지만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게 지역의 여론이다. 시민과 함께 하겠다면서 시민의 목소리를 협박으로 치부한다면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철저한 반성과 함께 떨어진 주민 신뢰 회복이 급선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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