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인터뷰①] “황교안 최선 다하고 있지만 대선 얘기는 아직 일러”
  • 안성모 기자 (asm@sisajournal.com)
  • 승인 2019.06.17 15:00
  • 호수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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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30주년 특별기획 - 대한민국, 길을 묻다(21)] ‘한국 대표 작가’ 이문열

혼돈의 시대다. 혹자는 난세(亂世)라 부른다. 갈피를 못 잡고, 갈 길을 못 정한 채 방황하는, 우왕좌왕하는 시대다. 시사저널은 2019년 올해 창간 30주년을 맞았다. 특별기획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 등 각계 원로(元老) 30인의 ‘대한민국, 길을 묻다’ 인터뷰 기사를 연재한다. 연재 순서는 인터뷰한 시점에 맞춰 정해졌다. ①조정래 작가 ②송월주 스님 ③조순 전 부총리 ④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⑤손봉호 기아대책 이사장 ⑥김원기 전 국회의장 ⑦김성수 전 대한성공회 대주교 ⑧박찬종 변호사 ⑨윤후정 초대 여성특별위원회 위원장 ⑩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⑪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 ⑫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⑬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⑭이종찬 전 국회의원 ⑮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⑯박관용 전 국회의장 ⑰송기인 신부 ⑱차일석 전 서울시 부시장 ⑲임권택 감독 ⑳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21 이문열 작가 

 “글쎄, 할 얘기가 특별히 있는 건 아닌데….”

작가의 휴대전화 벨이 연신 울렸다. 전화를 끊으면 곧바로 또 전화가 오는 식이었다. 그럴 때마다 “할 얘기가 있는 건 아니다”는 작가의 말이 호탕한 웃음소리에 뒤섞였다. 간간이 한숨을 짓기도 한 작가는 서울에서 온 취재진을 반갑게 맞았다.

시사저널이 소설가 이문열 작가와의 인터뷰를 위해 경기도 이천의 ‘부악문원’을 찾은 건 6월7일 오후 1시30분경이었다. 부악문원은 이문열 작가가 30여 년간 머물며 집필활동과 후진 양성을 해 온 문학사숙이다. 그동안 문인뿐 아니라 사회각계 인사들이 작가를 만나러 이곳을 찾았다.

취재진의 방문 시기가 묘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다음 날 아침 8시 이곳에 들러 이문열 작가와 ‘차담’을 나눌 예정이라는 보도가 나온 직후였다. 작가의 휴대전화에 불이 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황 대표와의 만남을 사전 취재하려는 기자와 방송에 섭외하려는 작가의 전화가 줄을 이었다.

ⓒ 시사저널 임준선
ⓒ 시사저널 임준선

“황교안 대표 정치 신병치고 전투력€있어 보여” 

자연스럽게 근황을 묻는 대신 차담을 첫 질문에 올렸다. 황 대표와의 만남은 어떻게 성사된 걸까. 이문열 작가는 “그전부터 한번 보자는 얘기가 있었는데 마침 황 대표가 이 근처에 일정이 있었다”며 “만찬이나 조찬을 할 수 있느냐 해서 가시는 길에 차나 한잔하자고 한 거다”고 설명했다.

황 대표가 직접 찾아온다고 하니 무슨 얘기를 나눌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황 대표에게 특별히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2~3일 전에 얘기를 들었는데 예정된 바가 없었기 때문에 조금 갑작스럽죠.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그동안 좀 등한한 편인데, 오신다고 그러니까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지금부터 생각하고 있는 중이에요.”€

특별히 생각해 두신 말씀은 없다는 거네요.

“지금부터 생각하는 중인데, 현실적인 부분은 황 대표가 일을 훨씬 더 많이 벌였고, 만나는 사람도 많고, 그래서 더 잘 파악하고 있을 거예요. 제가 뭘 얘기해 주기보다는 들을 게 훨씬 많을 겁니다. 궁금한 부분에 대해 듣고 싶어요, 오히려. 많은 분들이 여길 오시는데 제가 해 줄 얘기가 있고 훈수 둘 게 있어서 오라는 게 아니라 상대방 얘기를 듣는 게 좋아서 오라는 겁니다. 그런 기준을 정하고 만납니다. 제가 지금 정치하는 사람도 아닌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런저런 사람들이 수군거리겠죠.”€

자유한국당이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황 대표가 도움을 요청한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어떤 구체적인 요청을 받는다고 해도 아마 다 밝힐 수는 없을 거고, 실제로 제가 할 일도 없을 거예요. 본인들도 판을 짜 가지고 나름대로는 일사불란하게 나오고 있는 중이니까. 다소간에 시행착오는 있을지 모르지만. 황 대표도 정치 신병치고는 순발력 있게 잘하더만. 제법 전투력도 있어 보이고.”

황 대표는 보수진영에서 유력한 대선후보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행보는 어떻다고 보시나요.€

“황 대표로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계속 성공할지 그건 모르죠. 정치라는 게 그렇잖아요. 아직 판이 끝난 게 아니고 지금 현재는 대표죠. 나중에 (대선후보를) 정할 때 그 말을 탈 수 있느냐 없느냐? 이 문제가 아직 남아 있고. 바깥 변수가 그리 많은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아직 이쪽저쪽이 다 날아간 것도 아니고. 예전에도 선거를 2~3년 앞두고 빛났던 사람들이 많았죠. 지금 대선을 얘기하기는 너무 이르죠. 아직 3년이 남았지 않습니까.”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6월8일 오전 이문열 작가의 문학사숙 ‘부악문원’을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6월8일 오전 이문열 작가의 문학사숙 ‘부악문원’을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총선 전후 이합집산 변화 많이 생길 것”

2004년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공천심사위원을 맡으셨던 기억이 납니다.

“얼결에 그리 됐죠. 호된 맛도 많이 봤고. 그게 빌미가 돼 가지고 지금도 저를 가장 정치적인 작가로 만들어놨죠. 그런데 저를 그렇게 만든 사람들도 알 거예요. 그 뒤로 정치 모퉁이 어디에도 한 번 서 본 적이 없어요.”

공천심사위원 하실 때 보인 모습이 강렬했기 때문 아닐까요. 정치권에도 그랬고 국민에게도 그렇고.

“글쎄, 강렬한 건 아닐 텐데. 저는 그때도 어리둥절했는데 그게 그렇게 대단한 사건인지 몰랐어요. 공천심사위원이라는 게 정식 직책도 아니고 단기간 참여하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위원 15명 중 1명일 뿐이었죠. 그런데 이후에 인터넷을 보면 제가 (작가로 살아오며) 한 게 참 많은데 그런 건 아무것도 없고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 한 것 그것만 딱 나와요.”

정치에 직접 참여한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셨죠.

“예 그렇죠. 그런데 지금도 그 인상이 남아 있고 그걸 악용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뭐 어쩌고 그래요. 도대체 제가 뭘 했는지 저도 잘 모르겠지만(웃음).”€

그 후에도 보수 정치권에서 도움을 청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가령 작년에는 홍준표 전 대표가 포럼 고문을 맞아 달라 요청한 걸로 압니다.€

“가끔씩 그래요. 그런데 그 뒤로 온 건 제가 할 수 없는 일이에요. 큰 도움이 되지도 못했을 거예요. 제가 참여할 준비가 돼 있고 도울 준비가 돼 있을 때 오면 다를 건데 갑자기 휩쓸리게 되면 ‘어어’ 하다 지나간다고. 앞으로 정치권이 어떻게 될지, 세상일이라는 건 모르는 거지만, 지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그냥 보고 있는 겁니다.”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 일도 마찬가지였나요.

“뭐 물망에 오른다고 하는데 그건 사실 제가 보기에 심심하면 이용해 보고 찔러보는 거 아닌가 싶어요. 참, 사람 우습게만 만들고. 저의 영향력이나 발언력이 증대될까 겁내는 세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내년 총선을 전후로 정치권이 요동칠 수 있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이문열 작가도 “이래저래 이합집산이 일어나고 변화가 많이 생길 것”으로 내다봤다. 황교안 대표 체제가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자유한국당이 공천을 놓고 내부 갈등이 격화할 수 있다. 공천 관련 경험이 있는 그는 어떻게 예상하고 있을까.

“친박 병합 문제가 튀어나올 거예요, 싸움이 나기 때문에 지금은 약간 나눠져 있는 게 바로 솟아오를 겁니다. 그때쯤 되면 한 지역구에서 중복되는 후보들이 많을 거예요. 그러면 누가 공천권을 가지느냐를 놓고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텐데, 황 대표가 정확히 처리해서 넘어가야 할 일이죠.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있을 겁니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도 다툼이 심하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그때는 상당히 괜찮았던 것 같아요. 공천심사위원회를 잘 따라주고 거의 절대적인 권위를 줬으니까. 저항할 수 없었던 게 첫 번째로 공천을 배제한 게 최병렬 대표였어요. 최 대표도 각오하고 있어서 그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공천심사위원회 결정에 반발한 건 제 기억에 없어요.”

최근 몇 번의 선거에서는 반발이 굉장히 심했는데, 공천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참 어렵죠.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게 개개인에게는 정치적 생명이 걸린 건데 얼마나 중요하겠습니까. 그런데 결국은 1차적으로 경선을 거쳐야 할 거예요. 공천권을 누가 쥐느냐가 중요하겠지만 이번에는 50% 이상 그래야 한다고 봐요. 개인적인 생각이에요.”

“적폐만 쌓여왔다면 우리 사회 발전할 수 없어”

그동안 이문열 작가는 보수진영에 대해서도 날 선 비판을 해 왔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후 “보수는 죽어야 한다. 그래야 빨리 부활할 수 있다. 그런데 죽으려고 하지 않으니 다시 살아날 수가 없는 거다”라는 그의 말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무슨 의미일까.

“말 그대로 해석하면 좀 폭탄 같은 말이 될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의 법체계나 탄핵 자체를 부인하지 않는 한 결국 탄핵 사유가 어디에 있느냐를 봐야죠. 보통 가장 많이 말하는 게 박 대통령의 실정인데 그보다 더 큰 게 불통 구조예요. 누구나 동의할 거라고 보는데 책임지고 물러나야 할 사람들이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칼로 자르듯 할 수는 없을 거예요. 제일 좋은 건 누가 누구를 치는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나와주는 모습을 보이는 거죠. 그게 보수를 살리는 기회가 될 텐데, 그걸 기대할 수 있을는지.”

예전에 ‘보수라는 것은 지나간 사람, 지나간 시간에 대한 존중’이라고 하신 적이 있는데, 우리 사회가 그런 부분이 갈수록 부족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렇죠. 지금은 더 심하죠. 지나간 것은 다 옳으니 무조건 존중하라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어떤 세월을 견뎌서 살아남는다는 건 대단히 힘든 일입니다. 살기 위해 최소한의 선택을 했을 수 있죠. 순간순간 어렵게 선택하고 살았던 사람들의 노고를 좀 기억했으면 해요. 그리고 어떤 공로에 대한 인정 같은 것도 마찬가지죠.”

그렇다면 현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적폐청산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시나요.

“만약 그렇게 최악의 적폐들만 쌓여왔다면 지금과 같이 우리 사회가 발전할 수 없었을 거예요. 1945년 광복 후 우리 상황이 어땠나요. 당시 식민지에서 독립해 출발한 동아시아 국가 중 제대로 성장한 건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나쁜 놈과 악당만 있었다면 그런 사회가 어떻게 됐겠어요.”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려면 과거를 깔끔히 청산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과거를 청산한다는 환상 자체에 문제가 있어요. 과거라는 게 그렇게 쉽게 지워지고 청산되는 게 아니거니와 그 환상 자체가 굉장히 독선적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주 악의적일 수 있습니다. 반성을 한다든가 더 이상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한다든가, 그건 모르겠지만 몇십 년 전에 이미 소멸시효가 사라진 것까지 소멸시효를 없애가면서 하는 건 아니라는 거죠.” €

적폐청산이 정치적으로 이용된다고 보시는 건가요.€

“제가 보기에는 심하죠. 저런 식으로 하면 지금 여기 단 한 사람도 성하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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