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있음으로 내가 있고 내가 있음으로 네가 있다”
  • 김지영 기자 (young@sisajournal.com)
  • 승인 2019.06.2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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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국내 대학 최초로 총장 후보자 공개토론회 도입한 학교법인 동국대학교 이사장 자광 스님

'멍텅구리, 멍텅구리, 우리 모두가 멍텅구리. (중략) 올 때는 빈손으로 왔는데 갈 때는 무엇을 가져갈까. 공연한 욕심을 부리는 그 인간은 멍텅구리, 멍텅구리. 백 년도 못 사는데 천년만년 죽지 않을 것처럼 끝없는 걱정을 하는 그 인간은 멍텅구리, 멍텅구리.’

학교법인 동국대학교 이사장인 자광(慈光) 스님의 저서 가운데 2018년 출간된 《멍텅구리 부처님》에 나오는 ‘멍텅구리 송(頌)’의 일부다. 이 책에서 자광 스님은 왕자의 지위와 부귀영화를 초개처럼 버린 부처님을 ‘멍텅구리’라 감히 규정지었다. 자광 스님은 자신도 ‘멍텅구리 짓’을 한다고 낮췄다.

자광 스님은 사춘기에 자아에 대한 의문으로 고뇌했다고 한다. 그러다 결국 지리산 화엄사로 입산했다. 동국대를 졸업하고 1970년 군(軍) 포교를 시작했다. 월남전에서 생사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그렇게 25년이 흘렀다. 1995년 대령으로 예편, 군복을 벗고 삭발염의(削髮染衣·머리털을 깎고 검게 물들인 옷을 입음)했다. 이후 TV 경전강의와 해외 포교활동에 정진했다. 현재는 동국대학교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6월17일 오전 동국대 이사장실에서 보이차(普洱茶)를 향음(香飮)하며 스님 말씀을 귀동냥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
ⓒ 시사저널 이종현

이사장님의 부친께선 한국전쟁 때, 모친은 어린 시절에 돌아가셨습니다. 무슨 사연이 있었나요.

“아버지는 당시 냉전(冷戰)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념의 희생물로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도 제 나이 9살 때 돌아가셨습니다. 부모를 일찍 여읜 탓에 경찰이었던 형님 밑에서 자라며 학교를 다녔습니다.”

화엄사에서 출가하셨는데 출가 당시 어떤 고민을 하셨고 어떤 결심을 하셨습니까.

“고민이 많았던 어느 날, 한 스님을 만났고 그분이 제 인생을 좌우할 동기부여를 해 주셨어요. ‘지금 학생이 품고 있는 문제를 가장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부처님 제자가 되는 길일세.’ 그 스님 말씀을 듣고 며칠 밤낮을 고민했는지 모릅니다. 결국 스님 말씀을 따라 화엄사로 찾아가 지금까지 부처님께 귀의한 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스승이신 경산 스님의 명을 받아 군승(軍僧)으로 입대해 25년 동안 근무하셨습니다. 다른 수행과는 많이 달랐을 것 같은데 어떠셨습니까.

“군대라는 낯선 세계로 들어가 죽을 고비도 넘기고, 이교도들의 비난과 모함을 받기도 하고, 생명의 위험을 무릅쓴 적도 있었습니다. 수계법회(受戒法會·부처님 계율을 받는 의식)를 열어 계를 준 장병이 4만6000명, 장병을 상대로 한 법회와 설법 약 4600회, 모자라던 군승도 100여 명 더 늘렸고, 여러 군 사찰을 건립했습니다.”

군 포교를 하셨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수많은 일들을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월남전 참전했을 때 베트콩들을 만나 죽음의 문턱에 선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당당하게 설법하고 위기를 넘겼습니다. 삼청교육대에서 기간병과 교육생들이 총기를 들고 대치했을 때도 기억납니다. 그때 저는 빈손으로 하얀 러닝셔츠 바람으로 《부모님 은혜》를 부르며 다가가 그들을 설득했습니다. 정말 큰 사건으로 번질 뻔한 사건이 다행히 원만히 해결됐습니다. 어찌 보면 저의 무모한 용기였을 수도 있는데, 지금 다시 그 상황이 일어난다 해도 똑같이 할 것 같습니다.”

5사단 군종 참모 시절, 군대 안에 교회를 짓는 일에 앞장서기도 하셨는데, 다른 종교의 전도를 돕는 일이어서 쉽지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군종 참모로 막 부임해 종교시설을 살펴봤는데 짓다 만 교회 건물이 있었습니다. 알아보니 민간 지원을 받다가 지원이 끊기는 바람에 볼썽사납게 방치된 것이었습니다. 당시 지원해 주던 교회의 원로 목사님이 한경직 목사님이셨는데, 남한산성 중턱에 있는 거처에 케이크를 사들고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제가 승려라고 신분을 밝히고 한 목사님께 삼배를 올렸습니다. ‘목사님, 성경에 보면 하나님 역사는 중단 없이 진행된다고 했는데, 우리 부대에도 기독교를 믿는 장병들을 위해 교회를 지어주시기를 간청합니다.’ 한 목사님은 적잖이 놀라셨지만 쾌히 승낙하셔서 결국 멋진 교회가 지어졌습니다. 아마도 승려인 내가 팔을 걷어붙이고 교회를 짓는 걸 보고 주위에선 의아해했을 겁니다(웃음). 개인적 신분은 승려였지만 군종 참모로서 장병들이 원하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을 뿐입니다.”

자광 스님이 2016년 11월17일 달라이라마를 예방하고 있다. ⓒ 동국대학교 제공
자광 스님이 2016년 11월17일 달라이라마를 예방하고 있다. ⓒ 동국대학교 제공

“대학 총장 선거, 축제 분위기에서 치러져”

1995년 6월 육군 대령 겸 국방부 군종실장을 끝으로 전역하셨는데, 당시 심정은 어떠셨습니까.

“군승 생활을 하면서 수행을 게을리하거나, 불교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결혼을 하면 결격사유가 생겨 승단으로 복귀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런 게 없었습니다. ‘전역 후에 군인연금도 나오는데 일반 사회생활을 하면서 불교 활동을 하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처음도 승려였고 지금도 승려고 앞으로도 승려이므로 당연히 ‘환귀본처(還歸本處·본래의 자리로 다시 돌아옴)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승단에 복귀했습니다.”

이사장님께서 평소 마음에 두고 계신 불교 경구는 어떤 것입니까?

“여러분이 있으므로 제가 있고, 제가 있으므로 여러분이 있습니다. 여러 좋은 경구가 있는데 그중에 ‘네가 있음으로 내가 있고, 내가 있음으로 네가 있다’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동국대와 조계종단은 특수관계에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한때는 갈등도 있었는데 종단과 동국대 관계는 어떠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4년 전 총장 선거 때 학교가 좀 시끄러웠습니다. 학내 일부 구성원들이 종단에서 총장 선거에 개입했다고 주장하며 이슈를 키워갔습니다. 학교와 종단은 분리돼 있어야 한다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조계종은 동국대를 설립한 주체입니다. 1906년 설립된 동국대는 종단의 주요 사찰들이 정재를 출연해 설립한 그야말로 ‘종립(宗立)’ 대학입니다. ‘종단 개입’이라는 구호는 우리 대학의 설립 주체를 부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종단과 동국대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종단 발전이 동국대 발전이며, 동국대 발전이 종단 발전입니다.”

국내 대학 가운데 올해 처음으로 총장 후보자 공개토론회를 도입해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공개토론회 도입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113년 동국대 역사 속에서 가장 민주적이고 많은 관심을 받았던 선거였다고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후보자가 지원했고 선거 과정도 소견발표와 공개토론회에 유튜브 생중계를 도입한 것은 국내 어느 대학에서도 볼 수 없었던 방식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훌륭한 총장님을 선출할 수 있었고, 모두의 축하 속에서 취임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었던 일이 이사장 재임 기간 동안 가장 보람된 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는 어딜 가든 그곳의 구성원들이 서로 화합하는 것을 가장 큰 가치로 여깁니다. 늘 ‘내가 있으니 여러분이 있고 여러분이 있으니 내가 있다’는 마음으로 대하면 갈등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동국대학교도 구성원 모두가 서로 존중하고 화합한다면 앞으로 무궁무진한 발전을 할 것이라 믿습니다.”

2018년 교내 미화원들이 오래 파업을 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미화원 전원을 직고용함으로써 갈등을 풀었습니다. 다른 대학들도 미화원 고용 문제로 갈등을 겪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셨고 어떻게 해결하셨습니까.

“파업이 몇 달이나 이어져 학내가 아수라장이었습니다. 1월부터 시작됐던 것이 부처님오신날이 다가오는데도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이사장으로서 직고용 문제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는 선언했지만 학교와 노조 간의 협상이 잘 진척되지 못했습니다.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부처님의 넓은 포용심과 자비를 베풀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마침내 미화원 전원을 직고용하기로 전격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서로 참회하고 화합하고 상생하기로 손을 모았습니다. 비용이 좀 증가하겠지만 사회 약자의 애환을 외면하는 것은 부처님 뜻에 어긋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학교의 한 일원으로서 직원 명찰을 자랑스럽게 달고 다니시는 미화원분들을 보면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미화원분들 모두가 학교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주인의식을 갖고 일해 주길 바랄 뿐입니다.”

자광 스님이 1월30일 미화직원들에게 직원증을 수여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동국대학교 제공
자광 스님이 1월30일 미화직원들에게 직원증을 수여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동국대학교 제공

“공덕 쌓으면서 죽음을 잘 준비해야”

불교계 내에선 “동국대가 역대 최고의 대외 평가를 받고 있다”는 말이 나옵니다. 어떤 대외 평가를 받고 있는지요.

“산하기관의 구성원들이 모두 합심해 노력해 준 결과입니다. 즐겁게 스스로 움직일 때 그 조직은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국대에선 계속 자랑거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각종 대외 평가도 해마다 역대 최고 순위를 갈아치우고 있습니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대형 국고지원사업에도 지속적으로 선정되고 있습니다. 최근엔 LINC+(산학협력 선도대학) 사업 110억원, 고교교육기여대학 사업 10억원, 평생교육체제 지원 30억5000만원, 혁신성장 청년인재 양성 24억원, 초기창업패키지 19억4000만원 등 좋은 소식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의료원 실적은 어떻습니까.

“의료원도 실적이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습니다. 2017년에 개혁추진단을 꾸리고 병원 경영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구성원들에게 부담을 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의료진을 확충하고 구성원 복지 증진도 많이 챙기려 했습니다. 2016년 대비 460억원가량 진료 수익이 늘어났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접하고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당장 병원을 방문해 구성원들에게 피자를 돌리고 간담회도 가졌습니다. 최근엔 일산불교병원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도 개설했습니다.”

오는 7월 이사장에서 퇴임하시는데 이후 계획을 말씀해 주십시오.

“뭐 특별할 게 있나요. 불자로서 그동안 못 쌓은 공덕을 마저 쌓으면서 언젠가는 제게도 다가올 죽음을 잘 준비해야지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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