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주도권, 남성에서 여성으로 넘어갔다
  • 이형석 한국사회적경영연구원장·경영학박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7.04 14:00
  • 호수 155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성이 소비하는 지출 규모 36조 달러…고객 확보 위해 정교한 마케팅 필요

가정용 가구의 94%, 휴가의 92%, 자동차의 60%, 전자제품의 51%…. ‘여성 구매 결정권’ 비율이다. 2009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실린 것이지만, 문화 격차를 생각하면 지금의 우리나라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여성 전문 교육 프로그램인 MBA@UNC는 2028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임의 소비지출의 75%를 여성이 통제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비아그라를 제외하고 모든 품목에서 여성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남성들의 볼멘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1908년 미국 여성 노동자들이 ‘빵과 장미를 달라’며 생존권과 투표권 시위를 벌인 지 불과 100년 지났을 뿐인데, 경제 주도권을 여성이 쥔 시대가 온 것이다.

세계 여성의 날인 3월8일 스페인 토레도에서 여성들이 기념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 EPA 연합
세계 여성의 날인 3월8일 스페인 토레도에서 여성들이 기념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 EPA 연합

새로운 트렌드 된 ‘여성 경제(Female economy)’

이에 따라 여성 페르소나, 즉 여성을 핵심 소비자로 둔 기업들이 여성만을 위한 상품 개발을 더욱 가속화하면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들을 창출해 나가고 있다. 세계적으로 여성이 소비하는 지출 규모는 약 36조 달러에 달한다. 가장 인구가 많은 상위 두 나라, 중국과 인도의 GDP(국내총생산)를 합한 것보다 더 많다. 그만큼 막강한 소비 세력이다 보니 오직 여성만을 대상으로 한 사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기존 산업 가운데는 액세서리와 신발을 포함한 의류 산업이 선봉에 서 있다. 스웨덴의 H&M은 싸고, 재미있고, 유행하는 옷을 구매자가 방문할 때마다 다른 패션으로 제공한다. 핵심 고객인 여성의 감성을 잡아내기 위해 직원의 약 80%, 숍 매니저의 77%를 여성으로 채용했다. 이사진 중 절반도 여성이다.

피트니스 산업 또한 큰 영역이다. 여성의 약 3분의 2가 과체중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미국은 피트니스 시장 규모가 약 140억 달러에 달한다. 다이어트 식품 시장도 100억 달러 규모인 데다, 연간 6~9%씩 고속성장하고 있다.

존슨앤존슨은 아이를 둔 엄마들에게 신뢰가 높다. 이 회사는 현재 소비자 R&D(연구·개발)에만 매출의 4%를 투자하고 있다. 아이가 잠을 푹 잘 수 있도록 소아과 의사와 수면 연구가 등을 묶어 임상연구를 하는 등의 노력이 엄마 고객에게 어필하고 있는 것이다.

새롭게 부상하는 기업으로는 2011년 설립된 스티치 픽스(Stitch Fix)가 있다. 이 회사 비즈니스 모델은 평균 가격이 55달러 수준인 가성비 높은 패션과 보석 및 액세서리 등이다. 여기에 개인 스타일링 서비스를 제공하는 맞춤형 서비스를 채용했다. 개인 스타일링 비용은 20달러로, 커피 네 잔 값에 멋을 잔뜩 낼 수 있다.

유사한 모델로는 트렁크 클럽(Trunk club)이 있다. 2009년 창업 당시 미국 벤처파트너스(United Venture Partners)가 이끄는 시리즈A 기금 1100만 달러를 투자받아 일찌감치 유망한 사업모델로 인정받았다. 그로부터 불과 5년 만에 백화점 체인 ‘노드스트롬’에 3억5000만 달러에 인수됐다. 이 회사 역시 구입할 때 트렁크당 25달러의 스타일링 요금이 붙는다. 고객이 클럽하우스에서 직접 스타일리스트와 상담하는 것은 무료다.

미네소타의 시티 걸 커피(City Girl Coffee)는 로고나 포장지도 여성 색깔이라 할 수 있는 핑크색으로 쓰는 여성 전용 커피숍이다. 고객만 여성이 아니다. 여성이 소유하거나 관리하는 커피농장에서 커피를 수입하는 그야말로 생산·유통·소비 등 경제활동 자체가 여성을 겨냥했다.

여성만을 위한 여행사(byond Travel)도 있다. 주로 예술이나 음식, 문화 등을 테마로 50개국 1000여 개의 여행상품을 취급한다. 각 분야마다 관련 전문가가 프로그래밍하며, 때로는 문화해설사를 통해 직접 에스코트하기도 한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일단 여행하고 난 후에 경비를 지불할 수 있는 상품도 판매한다는 점이다. 그만큼 상품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성 전용 카센터가 인기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 됐다. 카센터에 가면, 여성 고객들은 차를 이해하지도 못하는 존재로 취급받기 일쑤다. 그래서 일부 카센터들이 여성 운전자들에게 더 많은 수리비를 받아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여성 카센터는 이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여성 친화적 서비스를 더한 모델이다. 자동차를 수리하는 동안 여성 고객은 간단한 보디케어를 받을 수 있다. 매니큐어와 같은 간단한 서비스는 무료다.

 

여성 전용 여행사·카센터도 등장

그렇다면 여성 고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핵심 마케팅 전략은 무엇일까. 최근 경기침체 여파로 일자리를 잃은 남성이 늘고 있다. 반면에 근로 여성의 수는 매년 2.2%씩 증가하고 있다. 그만큼 자가 구매력도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한 연구소(Ernst and Young’ Groundbreakers)의 보고서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여성은 지구상에서 가장 바쁜 사람들이다. 하루에만 약 5000건의 마케팅 메시지로 폭격을 당하고 있다.” 그만큼 정교한 마케팅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남성은 소득의 90%를 가족 및 지역사회에 재투자하거나 소비하고 있다. 반면 여성은 가치를 공유하는 관계적 소비를 하고 있다. 단순히 가성비를 넘어 이웃과 공유할 수 있는 사회적 가치를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은 제품이 아니라 경험을 산다. 남들의 쇼핑 경험을 통해 추천된 상품을 사는 빈도가 높다는 얘기다. 그만큼 다른 여성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증식 효과(proliferation effect)도 크다. 맘카페나 인스타그램이 쇼핑 추천 채널로 인기를 끄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남성에 비해 압도적인 구매 결정권을 가진 여성 시장,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이는 여성 경제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하게 특화된 비즈니스 모델을 향후 자주 보게 될 것 같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