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휴양지’ 거제 저도로 가는 길, 여전히 험난
  • 최운용 부산경남취재본부 기자 (sisa519@sisajournal.com)
  • 승인 2019.06.3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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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시와 군, 개방 범위 싸고 이견 팽팽…’9월부터 부분 개방’ 일정 차질 우려도

대통령 하계 휴양지로 유명한 경남 거제시 장목면 소재 섬인 저도가 오는 9월부터 일반인에게 개방될 전망이다. 거제시에 따르면 행정안전부·국방부·거제시 등으로 구성된 ‘저도상생협의체’는 지난 5월9일 회의를 통해 이같이 결정했다. 시범 개방 기간은 1년이며, 주말을 포함한 5일(화·수·금·토·일)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하루 2차례 여객선을 운항한다. 입도 인원은 하루 600명으로 제한된다.

저도의 면적은 43만여㎡ 규모로 국방부 소유이고 해군본부가 관리하고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섬 모양이 돼지처럼 생겼다고 해서 일명 ‘돼지섬’으로도 불린다. 그동안 대통령 별장과 군 휴양시설이 있다는 이유로 일반인들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거제 주민과 시민단체 등이 저도 반환을 끊임없이 요구해 왔고,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저도를 국민에게 돌려드리겠다”고 공약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저도는 1975년 10월1일 진해해군기지와 행정구역을 일치시키기 위해 진해시에 편입됐다가 1993년 11월 대통령 별장에서 해제된 후 그해 12월1일 거제시로 환원됐다.

경남 거제시의 섬 저도에 위치한 대통령 별장과 경호동 건물 ⓒ 시사저널 독자 제공
경남 거제시의 섬 저도에 위치한 대통령 별장과 경호동 건물 ⓒ 시사저널 독자 제공

1972년 부터 민간인 출입과 어로 행위 제한돼

2010년 12월 개통한 거가대로가 저도 위를 지나가지만 여전히 통제돼 섬 출입이 불가능한 상태다. 섬 전체는 해송과 동백 군락 등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고, 9홀 규모의 골프장과 길이 200여m의 백사장, 연면적 300㎡ 규모의 대통령 별장이 있다.

이 섬은 1954년부터 이승만 대통령의 하계 휴양지로 사용되다 1972년 대통령 휴양지로 공식 지정되면서 민간인 출입과 주변의 어로 행위가 엄격히 제한됐다. 이후 1990년대 후반까지 대통령 휴양지로 지정·해제를 반복하다 이명박 정부 때 다시 지정됐다. ‘청해대’로도 불리며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은 매년 저도를 찾았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방문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젊은 시절,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따라가 저도 백사장에서 수영복을 입고 찍은 사진이 공개돼 관심을 끌기도 했다.  

저도가 시범 개방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대통령 공약으로 저도 반환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됐지만 거제시는 완전 반환을, 국방부와 해군은 일부 개방을 주장하며 난관에 부딪혔다. 결국 청와대 중재로 거제시와 국방부, 해군 등이 포함된 ‘저도상생협의체’가 구성됐다. 그러나 지난 1월30일 첫 회의에서 거제시와 국방부는 양측 입장을 재확인하는 데만 그쳤다.

거제시는 거가대교가 저도 상단부를 통과하면서 군사시설 보호 목적의 출입통제가 무의미해졌다고 판단했다. 특히 대우조선 등 조선 산업이 위기를 겪으면서 관광지로의 개발 필요성이 더 커져 저도의 완전 반환이 꼭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반면 국방부와 해군은 저도의 소유권 반환이나 전면 개방은 불가하다는 의견을 냈다. 저도 위로 거가대교가 통과하더라도 이 지역은 해군기지가 있는 진해로 진입하는 진해만의 관문이며, 매우 중요한 요충지라는 이유를 들었다. 또 대통령 경호상 개방에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거제시에서 바라본 저도 ⓒ 거제발전연합회
거제시에서 바라본 저도 ⓒ 거제발전연합회

형식적인 ‘반쪽짜리 개방’이라는 지적도

이런저런 이유로 양측이 팽팽히 맞서자 급기야 거제 주민들은 해상시위에 나섰고 어선들도 동참했다. 이어 거제 주민들은 청와대 앞에서 반환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예고했으나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런 기류 속에서 지난 4월3일 열린 2차 논의를 통해 양측이 이견을 좁히면서 ‘시범 개방’이 본격 논의됐다. 이어 5월9일 열린 3차 논의에서 오는 9월 일부 시범 개방으로 전격 합의했고, 이에 따라 ‘금역의 섬’ 저도에 일반인이 입도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개방 범위가 극히 제한적이어서 형식적인 ‘반쪽짜리 개방’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섬 안에 설치한 산책로 3개 코스 중 1코스(1150m)와 2코스(1080m)만 개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다른 코스는 군사 이동 작전로여서 개방하기 어렵다고 국방부와 해군 측은 설명했다. 거제시는 대통령 별장 앞에 있는 해변 산책로 역시 개방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아직은 미지수다. 현재 저도에는 대통령 별장(1관)과 수행원 숙소(2관), 콘도(3관), 장병 숙소 2곳(4·5관), 골프장, 팔각정, 대피소, 위병소 등 시설물이 있다.

이 중 산책로 2곳만 열게 되면 섬을 개방하는 의미가 퇴색돼 반쪽 개방 우려가 나오는 까닭이다. 이와 관련해 김한표 국회의원(자유한국당·거제)은 지난 1일 국회 사무실에서 국방부 군사시설기획관으로부터 저도 임시 개방 관련 보고를 받았다. 김 의원은 이 자리에서 “대통령 별장 개방 없이는 의미가 없다”며 “하루빨리 저도 소유권을 지자체로 이전해 거제 지역 관광 활성화를 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저도상생협의체를 통해 구체적인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군부대 이전 문제, 저도 개방 범위, 수용 인원 등을 거제시와 적극 협의하겠다”고 답변했다.

저도 개방에 따른 관리비용도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거제시는 국방부 소유의 산책로를 자연 그대로 개방할 경우, 시에서 예산을 부담하는 것은 적절치 않지만 관광객의 편의를 위한 오수정화조 관리 비용 등은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분위기다. 관광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추가 안내표지판 설치와 개방 범위 등도 계속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 거제발전연합회 김수원 회장은 “그동안 저도 반환 요구에 움직임이 없던 국방부와 해군이 50년 만에 일부지만 시범 개방에 동의한 것은 상당한 성과”라며 “소유권 반환 및 완전 개방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거제시 관계자는 “저도에 대한 시범 개방이 앞으로 상시 개방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저도에 대한 소유권이 거제시로 넘어와야 한다는 것이 시의 입장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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