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수돗물 대란에 미소 짓는 철강업계
  • 김도현 시사저널e 기자 (ok_kd@sisajournal-e.com)
  • 승인 2019.07.03 14:00
  • 호수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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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넘은 노후 수도관 서울에만 138km
정부 지원하에 수도관 개량사업 가능성

로마의 영토는 광활했다. 오늘날 이탈리아 로마 지역을 중심으로 북아프리카와 터키·중동, 유럽 상당수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로마가 앞선 시대의 국가들과 차별화된 특징 중 하나가 상·하수도 체계를 갖췄다는 점이다. 그 기술력이 얼마나 뛰어났던지, 지금도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해당 상수도관이 사용되고 있다.

현재까지 잔존하는 로마시대의 상수도관은 나무다. 이에 착안해 현재도 대형 상수도관은 금속 재질이 아닌 콘크리트관을 쓴다. 초기 로마의 상수도관은 납이었다. 당시 로마인들도 납이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납으로 된 관 내부는 석회질로 코팅돼 있었다. 이후엔 세라믹관으로 교체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기도 했으나 예산 문제로 실현되진 못했다.

인천에서 시작된 ‘붉은 수돗물’ 논란이 서울과 충북 청주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사진은 수돗물 식수 사용 중단 후 아리수를 차에서 내리고 있는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임대아파트 모습 ⓒ 연합뉴스
인천에서 시작된 ‘붉은 수돗물’ 논란이 서울과 충북 청주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사진은 수돗물 식수 사용 중단 후 아리수를 차에서 내리고 있는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임대아파트 모습 ⓒ 연합뉴스

인천 찍고 서울, 충북 등으로 논란 확대 조짐

수도관의 부식 및 유해성 등에 대해 당시에도 상당히 심혈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1600년 이상 시차를 둔 오늘날 대한민국에 주는 시사점이다. 식수·생활용수의 근간인 상수도를 향한 불신이 대두됐기 때문이다. 인천에서 시작된 이른바 ‘붉은 수돗물’ 논란이 서울과 충북 청주 등에서도 잇달아 발생했다. 전국적 이슈로 부상하는 분위기다.

환경부 및 각 지자체 등에 따르면 인천의 붉은 수돗물 사태는 5월30일부터 보고되기 시작했다. 조사 결과, 인천의 경우 정수장에서 가정까지 물을 공급하는 수계 전환 과정에서 침전된 상수도관 내 녹·토사 등이 가정으로 유입된 사실이 확인됐다. 원인은 달랐으나 인천 수돗물 논란이 가중되던 시점에서 서울·충주 수돗물도 도마에 올랐다.

특히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일대의  경우 매설된 지 46년 된 수도관이 1.75km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자연히 노후 상수도관 개량 필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는 특정 지역의 문제만은 아니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서울 전체 상수도관 중 40년 이상 된 노후 수도관이 138km에 이른다.

전국으로 확대해도 심각한 상황은 마찬가지다. 21년 이상 된 수도관이 32.4%를 차지한다. 16년 이상 20년 미만 된 수도관도 12.9%나 된다. 오래된 수도관이 문제인 이유는 간단하다. 수도관으로 적합하지 않은 관들이 다수 사용됐기 때문이다. 관련 규제가 생겼던 1994년 이전까지 상수도관으로 비교적 저렴한 ‘아연도강관’이 사용됐다.

아연도강관은 매설 후 10년을 전후로 관 내부의 아연도금이 벗겨지며 녹이 슬기 시작한다. 이 관의 사용이 금지된 이후엔 동(銅)과 스테인리스강 소재의 상수도관이 주로 쓰였다. 이른바 ‘상수도 불신’은 이번 사태 전부터 계속 제기돼 온 문제다. 녹 등을 걸러준다는 필터가 내장된 샤워기가 최근 수년간 인기를 끈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계속된 민원에 관계 당국은 1600년 전 로마에서와 마찬가지로 ‘예산’ 문제를 지적했다. 자체적인 노력도 있었다. 2007년 환경부 수처리선진화사업단이 로봇을 이용해 상수도관 내 녹을 제거하고 내부식성이 뛰어난 에폭시 도료를 덧칠하는 방식의 기술 시연을 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자취를 감췄다. 실제 현장에 적용됐는지 여부도 분명하게 드러난 바가 없다.

한국의 상수도 보급률은 99.1%에 달한다. 서울 등 6개 광역지자체는 100% 보급률을 자랑한다. 이번 논란이 지엽적 사안이 아니란 방증이다. 일각에선 사태로까지 번진 이번 논란이 내년 총선에서 주요 쟁점화할 것으로 내다본다. 내년 4월 선거전에 나설 정치인들이 이를 공약으로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는 전언이다.

이번 사태 후 정부가 관련 예산을 대폭 늘리기로 결정해, 공약이 이행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미로처럼 얽힌, 가늠할 수조차 없는 길이의 수도관 개량사업은 자연히 관련 업계의 수혜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스테인리스관이 각광받을 경우 강관업계를 넘어 철강업계가 수혜의 당사자가 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녹에 가장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 스테인리스관은 본류가 아닌 각 건물로 들어가는 부분부터 쓰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마저도 비교적 근래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본류 부분엔 여전히 아연도강관이 다수 포함돼 있는 만큼 일각에서는 “스테인리스관이 사용된다 하더라도 ‘녹 없는’ 수돗물 공급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노후 수도관 교체 시 강관과 철강 업계가 수혜를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 연합뉴스
노후 수도관 교체 시 강관과 철강 업계가 수혜를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 연합뉴스

강관·철강 기업들, 수혜주로 급부상

개선을 점치는 여론은 주식시장에서 즉각적으로 표출됐다. 강관업계는 물론이고 철강업계 주가가 일제히 상승세를 나타낸 것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전체적인 시장에 경계심리가 작용하면서, 일부 위축되기도 했으나 6월 한 달간 전반적으로 강관·철강 업계가 돋보였다”고 귀띔했다.

이들 종목은 실제 시장에서는 ‘붉은 물 테마주’란 차마 웃지 못할 이름으로 분류됐다. 강관용 강판제작업체 ‘문배철강’이 가장 돋보인 가운데 한국주철관·동양철관 등도 호조를 보였다. 더불어 포스코·현대제철·세아제강·세아베스틸·동국제강 등도 투자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사실 그동안 철강업계에선 상수도관보다 하수도관을 더 납품해 온 게 사실”이라며 “보통 하수도관의 경우 콘크리트로 코팅된 철강재 강관 사용이 많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그는 “(대대적인 상수도관 교체사업이 시행될 경우) 분명한 호재로 작용하겠지만 사업 비중이 크지 않아 실적 면에서까지 눈에 띄는 결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면서 “현재로선 추이를 지켜보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강관 분야에서는 세아제강이, 스테인리스 분야에서는 포스코가 각각 강점을 지녔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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