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꼭 가려라 회사 이름 보일라…‘숨김 마케팅’ 등장한 이유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9.07.03 10:00
  • 호수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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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유발·고루한 기업 이미지 변신·독자적 브랜드 마케팅 등 이유 다양

다니엘 헤니가 광고하는 ‘이탈리아의 맛’, 브랜드 ‘폰타나’의 광고를 본 적이 있는가. ‘폰타나의 맛으로 이탈리아를 사랑하다’는 광고 문구, 이탈리아 본고장의 파스타를 경험할 수 있을 법한 디자인의 파스타 소스 용기를 보고 ‘샘표’를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폰타나는 ‘간장 명가’ 샘표가 내놓은 브랜드다.

샘표를 보면 누구나 간장을 떠올린다. 샘표 진간장, 양조간장이 샘표의 대표적 제품군이다. 폰타나는 샘표가 스낵 브랜드 ‘질러’, 차 전문 브랜드 ‘순작’ 등과 함께 ‘다 브랜드 성장 전략’으로 내놓았던 브랜드 중 하나다. 파스타와 수프, 소스, 드레싱 등 서양식 조미식품을 포괄하는 폰타나라는 브랜드를 내놓으면서, 샘표는 제품에서 사명을 지우는 과감한 전략을 추진했다. 샘표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한식’이기 때문에 이탈리아 식재료 브랜드로 사용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을 것 같다고 판단한 것이다.

ⓒ 시사저널 고성준
ⓒ 시사저널 고성준

이미지 바꾸기 위한 브랜드 전략

실제로 폰타나 제품에서 샘표의 로고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렇게 샘표는 폰타나 브랜드에서 ‘간장 회사’ 이미지를 지웠고, 고급화 전략에 성공했다. 특히 2017년 다니엘 헤니를 모델로 기용하면서 브랜드 폰타나의 세련되고 이국적인 이미지를 더 강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제조사 이름 노출을 피하는 브랜드 마케팅이 재계에서 확산되고 있다. 일명 ‘숨김 마케팅’이다. 여러 기업들이 기존에 유지하고 있던 사업 브랜드와 차별화된 분야로 사업을 다각화하면서, 기업의 이름을 숨기고 독자적인 브랜드를 론칭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생활 소비재, 식품군을 프리미엄 제품으로 확장하거나, 자사 제품을 유통할 수 있는 공간을 브랜드화하는 경우다. 과거에는 회사의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굳어진 경우, 새로 시작하는 사업과 회사의 이미지가 맞지 않는 경우에 주로 활용됐지만 최근에는 새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높여 별도 브랜드로 키우는 전략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샘표는 새로운 브랜드와 회사 이미지의 부조화를 ‘숨김 마케팅’으로 극복한 사례다. 이 전략은 과거의 실패를 딛고 성공했다. 샘표는 간장으로 확보한 인지도를 무기로 1980년대 커피 시장의 문을 두드린 바 있다. 국내 캔커피 시장에서 이름을 알리고 있던 씨스코를 인수하고 ‘타임 커피’를 판매한 것이다. 여론은 좋지 않았다. 샘표의 ‘간장’ 이미지가 너무 강렬했던 탓에 “커피가 짤 것 같다” “커피에서 간장 맛이 날 것 같다”는 소비자들의 반응이 나왔다. 결국 타임 커피는 시장에서 좌초됐고, 샘표는 커피 브랜드를 접어야 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샘표의 이 사례를 브랜드 확장에 실패한 사례로 꼽기도 했다. 간장의 이미지가 강한 샘표처럼 특정 카테고리나 속성에 대한 연상 작용이 지나치게 강한 경우 브랜드 확장성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렇게 실패한 또 다른 사례가 바로 농심의 커피 사업이었다. 농심은 2013년 ‘건강까지 생각한 새로운 커피’라는 ‘강글리오 커피’를 출시하면서 커피 시장에 진입했다. 녹용과 녹골 등에 포함된 성분 ‘강글리오 사이드’를 강조하면서 커피 시장 1위 동서식품과의 경쟁을 노렸으나, ‘짜파게티 분말수프 같다’ ‘포장도 라면수프 같다’는 비판을 받으며 시장에서 철수해야 했다. ‘농심 브랜드=라면’에 대한 강렬한 인식이 커피 시장에서의 실패를 빚어낸 것이다.

샘표는 이후 만든 질러나 폰타나 등 브랜드에서 사명을 과감히 삭제하고 각자의 개별 브랜드를 강조하는 전략으로 마케팅을 펼쳤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현재 샘표의 사업부문 매출은 장류가 58%, 폰타나와 질러 등 비장류 제품이 42%를 차지하고 있다.

매일유업은 커피전문점 ‘폴바셋’을 운영하면서 사명을 감추는 고급화 전략을 썼다. ⓒ 시사저널 고성준
매일유업은 커피전문점 ‘폴바셋’을 운영하면서 사명을 감추는 고급화 전략을 썼다. ⓒ 시사저널 고성준

또 다른 형태의 고급화 전략

브랜드의 고급화 전략을 위해 회사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 사례도 있다. 소비재 기업인 P&G는 SK-Ⅱ 화장품을 출시하면서 사명을 부각시키지 않았다. 고급 화장품 브랜드 SK-Ⅱ의 이미지와 P&G의 생활에 친숙한 이미지가 서로 상반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사명을 부각시키지 않고 외식업계에 진출한 경우도 고급화 전략의 예로 들 수 있다.

저출산으로 인해 유제품의 매출이 줄어들자, 사업 다각화에 나선 유(乳)업계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분유와 우유 등의 소비량이 줄자 아이스크림과 커피 등 디저트를 선보일 수 있는 커피 전문점으로 발을 넓히면서, 사명을 감추는 고급화 전략을 취한 것이다. 2009년 문을 연 고급 커피전문점 ‘폴바셋’은 매일유업이 외식업계에 진출하기 위해 만든 브랜드다. 매장 오픈 초기만 해도 매일유업이 운영하는 커피전문점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폴바셋이 어느 나라의 커피전문점인지 궁금해하는 소비자가 많았지만 매일유업은 운영사 이름을 매장에 공개하지 않았고, ‘숨김’ 전략은 성공했다. 현재 폴바셋은 100여 개 매장을 운영하면서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롯데지알에스가 운영하는 외식 브랜드 ‘빌라드 샬롯’도 고급화 전략을 취하면서 사명을 드러내지 않은 경우다. 롯데지알에스는 패밀리레스토랑을 비롯한 외식 브랜드의 성장이 주춤하자 새로운 동력이 필요했고, 과거 사명 롯데리아를 롯데지알에스(Lotte Global Restaurant Service)로 바꾸면서 ‘롯데리아=햄버거’로 고착됐던 ‘패스트푸드’ 이미지를 타파하려고 시도했다. 롯데지알에스는 레스토랑 사업에 ‘롯데’라는 이미지를 굳이 드러내지 않으면서 한 번 더 고급화 전략을 시도했다. 지금까지 롯데의 외식사업 부진을 의식해 블로그 운영이나 메뉴판 등에 굳이 사명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소비자들에게 부정적 이미지가 강한 남양유업은 매장과 마케팅 등에서 백미당을 운영하는 회사가 남양유업이라는 점을 밝히지 않는다. ⓒ 시사저널 고성준
남양유업이 운영하는 백미당 ⓒ 시사저널 고성준

서로 다른 이름을 사용하게 되면 한쪽에서 부정적인 이슈가 발생하더라도 서로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 ‘리스크’ 방지 차원에서다. 기업의 이름을 숨기고 새로운 신제품을 내놓을 경우, 신제품에 문제가 생기거나 부정적인 이슈가 생기더라도 원래 기업의 이미지와 제품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한국유통학회장을 맡고 있는 김익성 동덕여대 교수는 “아이덴티티가 유사한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 선을 보이는 것은 브랜드 확장과 매출 증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신제품에 대한 여론이 악화될 경우 본래의 제품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새로운 성격의 브랜드를 만들어내는 것이 그만큼 기업 입장에서 리스크가 있기 때문에 기존에 있는 브랜드와 벽을 쳐 새로운 브랜드인 것처럼 광고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독자적 브랜드 마케팅 전략 일환도

남양유업은 2014년 ‘백미당 1964’라는 브랜드를 내고 디저트 업계에 진출했다. 1964라는 이름에 남양유업의 창립연도(1964년)가 포함돼 있지만, 백미당과 남양유업의 연관성을 찾을 수 있는 소비자들은 많지 않다. 매장과 마케팅 등에서도 백미당을 운영하는 회사가 남양유업이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다.

남양유업은 2013년 지역 대리점주에게 제품 물량을 떠안기며 욕설과 폭언을 한 ‘갑질 사태’로 인해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갑질 사건에 분개한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으로 인해 음료와 유제품 매출 하락을 지금까지도 겪고 있다. 최근에도 남양유업은 창업주 고(故) 홍두영 명예회장의 외손녀인 황하나씨의 마약 투약 수사로 또다시 구설에 올랐다.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은 황씨 사건과 관련해 사과문을 내고, 황씨와 회사 경영은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남양 이미지가 소비자들에게 워낙 부정적이고, 또 악재가 계속되면서 이미지가 나아지지 않는 상황이다. 앞으로 새로운 브랜드를 출시하더라도 ‘숨김 마케팅’을 활용하는 사례가 많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남양유업 측은 ‘독자적인 브랜드 마케팅 전략’이라는 입장이다. 남양유업 측은 “백미당 마케팅에서 남양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자체 브랜드로 소비자들에게 평가받기 위한 독자적인 브랜드 마케팅 전략이다. 또 남양이 의도적으로 백미당 브랜드나 사옥명에 로고를 가린 적이 없다는 점은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 결과에서도 밝혀진 바 있다”고 밝혔다.

백미당은 현재 국내 70개가 넘는 점포를 운영하면서 남양의 효자 브랜드로 올라섰다. 현재 남양유업 홈페이지 내에서는 백미당 브랜드를 소개하고 있지만, 백미당 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 등 공식 SNS 계정에서는 ‘남양’을 노출하지 않고 있다. 남양유업의 커피 브랜드 ‘루카스나인’과 ‘프렌치카페’ 역시 기업명을 넣지 않은 별도의 SNS 계정을 운영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남양의 ‘숨김 마케팅’에 ‘숨은 남양 찾기’로 대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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