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정권 치졸함에 끌려 다녀선 안돼
  • 권상집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7.03 16:4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상집 교수의 시사유감]

지난해 10월 대한민국 대법원은 일본 전범기업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손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확정 판결을 내렸다. 일본 전범기업에 대한 최종 배상 책임을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확정한 이후 8개월이 흘렀고, 그 사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미쓰비시를 시작으로 일본제철까지 잇달아 법원 판결에서 전범기업들에 승소를 거뒀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수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을 마구잡이로 끌고 가 강제 노역을 시킨 일본 기업의 망령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고, 2019년 일본 아베 정권의 치졸함에서 다시 그 어두운 그림자가 부활하고 있다.

대법원 판결 당시 아베 총리는 ‘국제법에 비춰봤을 때 있을 수 없는 판단’이라며 일본 주재 한국 대사를 불러 공식 항의를 벌일 정도로 강경하게 대응했다. 일본 정부는 우리 정부에 강제징용 피해 배상 판결 논의를 위한 중재위원회 개최를 요청했고, 문재인 정부는 ‘대법원 판결을 존중 한다’는 기본 입장을 고수하며 원론적인 입장을 지켜나갔다. 이후 일본 아베 정권이 외교 또는 경제적 보복을 벌일 것이라는 외교․통상 전문가들의 우려가 적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한국과 일본의 대립은 현재진행형이다. 위안부 합의 문제, 강제징용 배상 문제, 일본 초계기의 위협 비행 등에서 수차례 맞섰고, 그때마다 갈등의 골은 더 깊어졌다. 일본과의 대립을 이해하기 위해선 박근혜 정부의 외교적 무능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2015년 12월28일 박근혜 정부는 일본이 10억엔(100억원)을 위안부 재단에 출연하겠다는 약속을 듣고 곧바로 일본과의 공동 합의문에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해결된 것임을 확인 한다’는 희대의 망언을 쏟아내고 말았다.

돈으로 절대 거래해서는 안 되는 역사 문제 그 중에서도 위안부 피해 문제를 100억원과 맞바꾸고 다시는 위안부 문제를 양 국가의 공식 안건으로 올리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출범 후 곧바로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합의의 결과물인 화해치유재단을 해산시켰다. 일본은 국가 간의 공식 합의를 파기한 행위라며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한국과 일본의 대립은 현재 갈등을 넘어 냉전 상태로 달려가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 연합뉴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 연합뉴스

드러내놓고 도발하는 아베 정권

G20 정상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냉랭한 반응을 보인 아베 총리는 곧바로 7월1일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제조에 필수적인 핵심 소재와 부품의 한국 수출 규제 조치를 공식 발표했다. 디스플레이 핵심부품 공정에 활용되는 노광장비와 스마트폰 OLED 패널 생산에 필요한 장비 등에서 일본은 전 세계 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기차, 친환경차 등 자동차 부품 분야에서도 국내 기업의 일본 의존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국내 조선 및 건설 산업에서도 상당 부분을 일본 부품에 의존하고 있다.

일본의 경제 보복이 무서운 이유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등 국내 경제를 이끄는 핵심 축이 일본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참고로 일본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반도체 소재 강국이다. 반도체뿐 아니라 디스플레이, 미래차와 관련된 소재와 부품 분야에서 원천기술력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삼성과 SK는 반도체 양산에서 일본을 압도하고 있지만 반도체 전후방 분야인 소재, 부품 등에서 기술력을 축적하지 못했다. 양적 성장의 그늘을 일본이 집요하게 공격하는 이유이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일본의 조치와 관련해 “WTO(세계무역기구) 제소를 비롯해 필요한 대응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히자 아베 총리는 7월2일자 요미우리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조치는 WTO의 규칙에 부합되며 자유무역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며 공세를 멈추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는 “국가와 국가 간의 신뢰 관계에서 비롯된 조치를 수정한 것”이라고 언급하며 한국과의 신뢰가 무너진 것을 계기로 경제 보복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아베 정권의 도량이 얼마나 좁은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경제 체질 강화로 일본에 끌려 다니지 않아야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회담 뉴스를 무색하게 할 만큼 일본은 전 방위에 걸쳐 우리 경제 및 기업의 수출․성장을 압박하고 있다. 원천기술이 아닌 응용기술 양산에만 집착해온 한국의 허약한 경제 체질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괴롭히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국내 기업들의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위상이 해외 시장에서 괄목할 정도로 성장했기에 수출 규제를 강행하면 일본의 부품, 소재 수출업체도 직접적인 타격을 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너 죽고 나 죽자’는 비합리적인 일본의 경제 보복 또는 도발에 대해 침착한 대응이 필요하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를 향해 무려 770여 차례 넘는 침략을 일삼아왔다. 과거 칼과 총으로 일본이 도발해왔다면 지금은 경제, 산업 영역에 걸쳐 고도의 기술력으로 도발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해 끌려 다니지 않으려면 산업 차원에서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원천기술 및 기초기술력 강화, 창의적인 인재 육성, 중장기적 관점의 R&D 투자 강화는 20년 전부터 수많은 논문 및 보고서에서 강조돼 왔지만 정부와 기업은 당장 급한 성장률에 연연해 이들 분야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그 폐해는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야당에서 일본과의 외교 참사에 대해 무능 외교 또는 외톨이 외교라고 비난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번 갈등은 일본과의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어차피 한번은 거쳐야 할 불가피한 충돌이다. 일본과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정상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되지만 애초에 우리 국민과 역사 앞에 결코 사죄하지 않는 그들에게 먼저 고개를 숙일 수는 없는 법이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을 맞이한 경제대국 일본이 민주주의 원칙까지 무시하며 무역 보복을 일삼는데 대해서 지금부터라도 수입선 다변화, 원천기술력 강화라는 중장기 과제를 긴 안목을 갖고 추진해야 한다.

반도체와 전자, 자동차, 조선, 건설 등 모든 산업에 걸쳐 일본의 압박이 진행되는데 내부에서 여당과 야당이 국가의 외교력에 상반된 목소리를 내면 일본의 경제 보복은 더욱 강공으로 이어질 것이다. 외교 역량 강화는 경제 체질 강화에서 비롯되는 법이다. 20년 전부터 외쳤던 산업구조 개혁과 개념설계 역량 축적, 원천기술 확보와 통상 다변화를 이제부터라도 진행해야 한다. 아울러, 외교역량을 총동원해 일본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부당함을 알려 일본이 공정하지 못한 국가라는 외교적 갈라파고스(외톨이) 프레임에 갇히게 하는 것이 보다 정의로운 해법이다. 역사의식 부재와 철학적 빈곤함이 드러나는 일본의 옹졸함에 더 이상 끌려 다닐 수는 없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