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방한, 유통업계 지각변동 일으키나
  • 유재철 시사저널e 기자 (yjc@sisajournal-e.com)
  • 승인 2019.07.05 15:00
  • 호수 155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쿠팡 ‘추가 투자’ vs ‘아마존 아시아 거점’ 두 갈래 미래 전망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7월4일 문재인 대통령을 접견했다. 문 대통령과 손 회장은 혁신성장,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심도 깊은 논의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그간 쿠팡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로 국내 온·오프라인 유통업계에 던진 충격파 때문에 이번 손 회장의 방한을 보는 시선은 사뭇 남달랐다. 그의 방한을 계기로 시장 점유율을 점차 확대해 가고 있는 쿠팡의 향후 향보에도 더욱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재계에서는 손정의 회장의 방한 배경을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 연합뉴스
재계에서는 손정의 회장의 방한 배경을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 연합뉴스

100조원 굴리는 ‘큰손’의 방한 배경 주목

손 회장은 6월10일 도쿄에서 열린 실적 발표를 겸한 기업설명회(IR)에서 2017년 설립한 100조원 규모의 비전펀드와 같은 비전펀드 2호를 하나 더 만들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비전펀드는 손 회장이 2016년 9월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와 합작투자 방식으로 조성한 역대 최대 규모의 사모펀드로, 시장점유율이 50~80%에 달하면서 성장 잠재력을 갖춘 기업을 대상으로 과감한 투자를 단행해 왔다. 미국의 차량공유업체 우버와 공유오피스업체 위워크, 중국 차량공유업체 디디추싱, 영국 반도체업체 ARM, 미국 반도체업체 엔비디아 등이 대표적이다.

비전펀드가 투자하는 기업들은 창업 후 이익이 난 적 없는 기업이 대부분이다. 수년 내 흑자 전환이 어렵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과도해 보이는 밸류에이션(가치평가)’이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한다. 투자심의의원회를 거쳐 투자 여부가 결정되지만 최종적으로 손 회장이 투자를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구조다. 쿠팡에는 지난 2015년과 2018년 두 차례에 걸쳐 이른바 ‘손정의 자금’이 30억 달러(약 3조5000억원) 투입됐다. 쿠팡은 최근 누적적자 3조원에 달하는 상황에서도 소프트뱅크 측의 투자자금이 추가적으로 유입됐다.

이런 투자 배경에는 투자기업의 ‘이익 창출 능력’보다 ‘시장 지배 가능성’을 더욱 높게 평가하는 손 회장의 투자 성향이 있다. 된다고 싶을 땐 누구보다 빠르게 결단하고 곧장 실행에 옮긴다. 손 회장과 알리바바 회장 마윈의 6분 면담이 2000만 달러 투자로 이어진 사례가 바로 그 예다.

손 회장은 일본에서 ‘결단의 승부사’로 불린다. 손 회장 동생인 손태장 겅호(GungHo) 창업자와 동급생이면서, 소프트뱅크 사장실 실장 출신인 미키 다케노부가 쓴 저서 《나는 왜 기회에 집중하는가》를 보면, 손 회장이 왜 이 별명을 갖게 됐는지 자세히 나타난다.

1995년 세계 최대의 컴퓨터 전시장인 컴덱스 인수전에 뛰어들 당시 경쟁사가 소프트뱅크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해 빼앗기자, 얼마 뒤 손 회장은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고 그 회사로부터 컴덱스를 다시 사들였다. 당시 컴덱스는 세계 최대 규모의 IT(정보기술) 관련 무역박람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손 회장은 세계적인 IT기업 CEO(최고경영자)들을 만나고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결과적으로 컴덱스는 포털사이트 야후에 대한 투자로 이어지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게 된다.

소프트뱅크를 일본의 대표 통신사업자로 만든 2008년 애플사의 아이폰 독점 판매권 계약 때도 손 회장의 승부사 기질은 여실히 드러났다. 손 회장은 아이폰을 독점으로 판매하기 위해 자사 소프트뱅크 모바일의 회사 로고와 매장 디자인을 애플 제품과 어울리도록 변경하는 기지를 발휘했다. 당시 많은 일본 기업들이 미국 애플 본사를 방문해 판매권을 따내려고 했지만, 결국 소프트뱅크가 아이폰의 독점 판매권을 획득하고 이후 급격한 성장세를 이뤘다는 것이다. 저자는 “손 회장이 이 경쟁에서 이미 압도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고 회고했다.

손 회장은 지난해 11월 열린 비전펀드 결산 설명회에서 국내 이커머스 기업인 쿠팡을 직접 언급해 유통업계의 관심을 받았다. 손 회장은 “쿠팡은 한국의 아마존으로, 한국 이커머스 시장에서 압도적인 1위 회사로 급성장하고 있다”며 “쿠팡을 더욱 강도 높게 뒷받침해 나가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이 발언이 있은 후 채 한 달이 되지 않아 손 회장은 쿠팡에 20억 달러의 추가 투자를 단행했다.

ⓒ 쿠팡 제공
ⓒ 쿠팡 제공

손정의 머릿속 ‘쿠팡’은?

사실 쿠팡은 온라인 시장점유율이 7%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비전펀드의 투자 실행 원칙과 다소 거리감이 있다. 그런데도 쿠팡에 대규모 투자금이 계속 유입되는 것은 손 회장이 그만큼 쿠팡의 ‘가능성’을 봤다는 얘기다.

그간 쿠팡은 직매입을 기반으로 한 초특가와 로켓배송으로 소비자들에게 큰 반향을 이끌어냈다. 쿠팡의 유례없는 빠른 성장은 온·오프라인 유통업계에 충격과 ‘이대로 판도가 바뀔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동시에 던졌다. 오프라인 판매장 하나 없는 IT기업이 전국 120개 매장을 보유한 대형마트를, 설립 10년도 채 안 돼 따돌릴 수도 있는 상황까지 왔다.

그렇다면 쿠팡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일각에서는 향후 쿠팡의 미래를 두 갈래로 예상한다. 하나는 동종업계 인수·합병을 통한 시장 독식과 다른 하나는 아마존의 아시아 거점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손 회장의 그간 투자 행보를 볼 때 쿠팡을 시장의 최상위 포식자로 만들기 위한 추가적인 투자 집행을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적자가 크고 향후 시장점유율 확대가 어렵다고 판단할 경우 아마존의 아시아 오프라인 물류망 역할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 실제 현재 쿠팡의 로켓배송 가능 물품 수는 511만 개로, 국내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업계 관계자는 “손정의 회장이 추가 투자를 단행하지 않더라도 쿠팡은 살아남을 길이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