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 파도 처한 삼성전자의 '불안한 1위'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9.07.08 10:00
  • 호수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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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규제 등 대내외 불확실성에 ‘3대 리스크’ 불거져
글로벌·경쟁력·비전 불확실성 해결해 미래 열어야

감탄과 놀라움. “제가 여태까지 본 건물들 가운데 가장 큰 것 중 하나였다. ‘도대체 저게 뭐야(What the hell is that?)’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말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센 이 사람을 놀라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경기도 평택에 위치한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장이다. 최근 한국을 방문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헬기를 타고 서울로 이동하며 삼성전자의 반도체 생산시설을 내려다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은 것이다. 그는 “삼성, 삼성. 정말 대단한 건물이다. 가서 보길 원한다. 몇 가지 아이디어를 얻고 싶다”며 거듭 놀라움을 표시했다.

그렇다. 삼성전자는 ‘감탄과 놀라움’의 대상이다. 오랫동안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트럼프 대통령의 찬사에서 보듯 경탄의 경계는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지도만 따지면 삼성은 대한민국에 뒤지지 않을지 모른다. 그만큼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당장 삼성전자의 매출은 지난해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14%에 달한다. 수출 비중은 전체의 10%에 육박한다. ‘삼성전자가 흔들리면 한국 경제가 흔들린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 시사저널 임준선
ⓒ 시사저널 임준선

위기론. “지금은 어느 기업도 10년 뒤를 장담할 수 없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6월14일 IT·모바일 부문 사장단과 경영전략 점검회의를 하며 한 말이다. 이건희 회장의 와병으로 사실상 삼성전자를 이끌고 있는 그가 새삼 ‘위기론’을 언급한 건 그만큼 현실이 녹록지 않다는 의미다. 리스크(위험)의 핵심은 ‘불확실성’이다. 격화하는 미·중 무역분쟁과 끝 모를 반도체 값 추락, 전방위적 검찰 수사 등 안팎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경영환경 속에서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본 정부가 한국의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3대 소재의 수출 규제를 시행했다.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삼성전자는 왜 ‘위기’를 말할까.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가 위기라면 다른 국내 기업들은 낭떠러지 끝에 서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경제에서 삼성전자는 ‘표준’과 같다. 삼성을 보고 따라 하는 기업이 셀 수 없을 정도다. 거꾸로 말하면 삼성전자가 직면한 도전, 위기의 뿌리, 그 리스크를 제대로 마주한다면 현재 한국 경제 주력산업의 위기와 기회를 점검해 볼 수 있다. 시사저널이 ‘삼성전자의 리스크’ 점검에 나선 이유다.

문재인 대통령은 4월30일 시스템 반도체 산업 육성을 통해 ‘종합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밝혔다. 이재용 부회장은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확실한 1등을 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4월30일 시스템 반도체 산업 육성을 통해 ‘종합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밝혔다. 이재용 부회장은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확실한 1등을 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연합뉴스

리스크 ❶글로벌 불확실성: 바뀌는 세계경제 질서

세계경제는 시계 제로 상황이다. 미·중 무역분쟁은 단순한 경제문제가 아니다. 글로벌 패권을 둘러싼 다툼이다. 당연히 갈등의 강도와 후폭풍은 상상 이상이다. 다툼이 얼마나 길어질지 가늠하기 어렵다. 세계경제의 부진 우려가 높은 상황에서 시장에 불확실성이 커지면 투자와 소비 심리는 위축되기 마련이다. ‘불확실성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걱정이 전 세계에 퍼지고 있다.

문제는 ‘전쟁터’다. 미·중의 극한 대립은 첨단 정보기술(IT) 산업에서 벌어지고 있다. 삼성전자의 텃밭에서 총과 포탄이 날아다니고 있는 셈이다. 삼성전자가 ‘위기 경영’을 시작한 계기도 미·중 무역분쟁이 직접적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진다. 

미·중 무역분쟁은 그 자체로 삼성전자에 리스크다. 삼성전자 매출의 약 40%가 미국과 중국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중 무역분쟁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해 “삼성전자가 미·중 무역전쟁의 십자포화 속에서 길을 헤쳐 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중 무역분쟁의 한복판에 끼여 피해를 보고 있는 대표적 기업으로 삼성전자를 다룬 것이다. WSJ는 삼성전자가 이미 생산과 소비 부문 모두에서 시장 다변화 대응에 나섰기에 위험을 상당 부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면서도, 한국산 반도체가 장착된 중국 스마트폰에 추가 관세가 부과되면 한국 기업들의 타격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외신의 호들갑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다. 반도체와 스마트폰 사업부는 지난해 삼성전자 매출 244조원의 77%(187조원), 영업이익의 93%(55조원)를 벌어준 ‘캐시카우(현금 창출원)’다. 미·중 무역분쟁 후폭풍과 메모리 반도체 불황 등 외부 악재가 삼성전자 안방에 불확실성이라는 불청객을 불러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최근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전자의 주력사업 부문인 DS(반도체 부품), IM(IT 모바일) 부문 사장단과 잇따라 회의를 가졌다. 이 부회장의 동선과 내부 회의 일정을 공개하지 않던 삼성이 사장단 회의 일정을 알리고 나선 데는 임직원들의 동요를 막고, 대내외에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함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도 삼성전자엔 악재다. 일본은 한국의 세계 1위 산업인 반도체·디스플레이를 정면 겨냥해 제품 생산에 필수적인 핵심 소재 3종의 수출 규제를 7월4일부터 강화했다. 일본의 조치는 대한(對韓) 수출을 완전히 막지는 않지만 수출 계약마다 들여다보는 등 까다롭게 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의 칼날이 사실상 삼성전자를 노렸다는 분석마저 나온다.

일본이 노린 삼성전자의 급소 중 하나는 삼성의 차기작인 갤럭시폴드다. 일본산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품질이 월등해 갤럭시폴드에 탑재되는 ‘접히는 화면’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은 “문제 없다”는 입장이지만 ‘삼성전자의 주력 제품들이 일본에 볼모로 잡혔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일본이 규제에 나선 불화수소(에칭가스),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3가지는 일본이 세계시장의 70~90%를 장악하고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이 올 1~5월 수입한 반도체 소재 중 일본산 비중은 43.9(불화수소)~93.7%(플루오린 폴리이미드)였다. 삼성전자가 일본 정부 발표 직후 곧바로 일본에 담당자를 급파하고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홍남기 경제부총리 등이 연이어 삼성 최고위 관계자를 만나 관련 대책을 논의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서울 강남구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 시사저널 박정훈
서울 강남구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 시사저널 박정훈

리스크 ❷경쟁력 불확실성: 흔들리는 초격차

삼성전자에 ‘초격차’는 ‘성경 말씀’과도 같다. 경쟁자들에게 주도권을 뺏기지 않고 압도적 1위를 유지하겠다는 기업정신의 알파이자 오메가다. 올해 초 신년사에서 창립 50주년을 맞아 강조한 미래 비전도 ‘초일류·초격차 100년 기업으로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하자’였다. 실제 그동안 삼성전자의 초격차 전략은 ‘반도체 1위’ 등 혁혁한 성과를 낸 일등공신이었다. 삼성전자는 초격차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압도적인 선제 투자를 해 왔다. 앞선 공정기술과 국내외 연구소 및 전문가 그룹으로 잘 짜인 연구·개발(R&D) 생태계도 유지해 왔다. 삼성 경쟁력의 비결이 ‘초격차’라는 단어 하나에 잘 녹아 있는 셈이다.

문제는 삼성전자 경쟁력의 근원인 초격차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최근 사장단을 마주한 자리에서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삼성이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은 장기적이고 근원적인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라며 삼성 반도체 경쟁력을 유지할 ‘초격차’를 강조했다. 역설적으로 보면 삼성전자의 경쟁력이 압도적 초격차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거나, 최소한 왕좌의 자리를 유지할 시간이 그리 길게 남지 않았음을 인정한 발언이다.

실제로 최근 성적표도 좋지 못하다. 기업은 실적으로 말한다. 삼성전자의 올 1분기 영업이익은 6조2300억원으로 작년 1분기와 비교하면 60.2% 감소했다. 2016년 3분기(5조2000억원) 이후 10분기 만에 최저 기록이다. 역대 최고 실적을 올린 지난해 3분기 17조5700억원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초라한 성적표다. 원인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겹악재’ 영향으로 분석된다.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수요 둔화로 가격이 급락하면서 반도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64.3% 감소한 4조1200억원에 그쳤다. 1분기 디스플레이 영업이익은 스마트폰 시장 침체로 인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출하량 감소와 중국 제조사들의 물량 공세에 따른 액정디스플레이(LCD) 패널 가격 하락 등으로 56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문제는 추세다. 지금의 우하향 곡선이 반등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삼성전자는 스스로 왕좌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다. 특히 반도체 분야에서 그렇다. 이 부회장은 “삼성은 4차 산업혁명의 ‘엔진’인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2030년 세계 1등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며 “이를 위해 마련한 133조원 투자계획의 집행에도 만전을 기해 달라”고 당부했다. 한국은 메모리 시장에서 압도적 세계 1위지만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는 미국, 유럽, 대만, 일본, 중국에 이어 6위에 그친다. 삼성전자가 메모리 시장에서 압도적 세계 1위지만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얘기다.

삼성전자의 또 다른 날개인 스마트폰도 차세대 격전지가 될 중국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올해 1분기 삼성전자의 중국 시장점유율은 1.1%다. 2016년 4.9%, 2017년 2.1%에서 지난해 1분기 1.3%로 1%대로 내려앉은 뒤 3~4분기엔 0.7%까지 떨어졌다. 세계시장에서는 20%대 점유율(1분기 기준)로 1위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불안한 1위’다. 화웨이가 4%포인트로 격차를 좁히며 맹추격 중이다. ‘초격차’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하기엔 다소 민망한 상황인 셈이다.

리스크 ❸비전 불확실성: ‘불안하다는 불확실성’

삼성전자와 미국의 애플은 오랜 라이벌이다. 특히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엎치락뒤치락 혈투를 벌여왔다. 과연 승자는 누구일까. 답은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미래 가치를 반영하는 주가를 보면 힌트는 얻을 수 있다. 7월4일 기준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애플의 3분의 1 수준이다. 왜일까. 박광기 전 삼성전자 부사장은 단언한다. “삼성전자에 희망을 주는 미래 비전이 없기 때문이다.” 맞다. 삼성전자의 핵심 리스크는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오너 리스크를 포함해 대내외 불확실성을 압도하고 있는 불안함은 ‘바로 삼성전자의 내일이 불안하다는 불안감’이다.

사실 한 분기에 6조원대 영업이익을 낸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이다. 수년 만의 최저치 실적이라고 하지만, 국내 모든 기업이 바라는 ‘꿈의 실적’이다. 세상 모든 게 그렇듯 좋을 때가 있으면 나쁠 때도 있다. 문제는 추세다. 많은 사람들이 삼성전자의 내일을 걱정한다. 반도체와 스마트폰을 이을 미래 먹거리를 아직도 찾지 못한 것 아니냐고 우려한다. 삼성은 그룹 차원에서 바이오와 2차 전지, 전장부품 등 새로운 아이템을 제시하고 있지만 아직 ‘낭중지추’의 모습은 아니다.

삼성전자의 5년, 10년 후의 모습은 과연 어떠할까. 비관과 낙관이 엇갈린다. 확실한 것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놀라게 했던 감탄과 놀라움을 유지해야 한다. 초격차라는 압도적 경쟁력을 지켜야 한다. 무엇보다 신뢰라는 자산을 잃지 말아야 한다. 분식회계와 부당거래, 불법·변칙적인 경영권 승계 행위는 더 이상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는다. ‘역시 삼성이야’라는 말이 냉소가 아닌 감탄과 놀라움일 때 삼성의 내일이 보장될 수 있다.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라’고 했다. 삼성전자가, 삼성그룹 전체가, 이재용 부회장이 그 의지를 보여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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