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도, ‘포스트 메이’도 브렉시트 답이 없긴 마찬가지
  • 방승민 영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7.11 08:00
  • 호수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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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총리 후보자들 '노딜 브렉시트‘ 손 놓은 채 선심성 공약만 남발

6월7일, 2016년 7월부터 보수당 대표이자 브렉시트 협상을 이끌어온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사퇴했다. 그는 올해 초부터 난항을 겪었던 브렉시트 합의문 비준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미 지난 5월 사임 의사를 밝힌 바 있다. 현재 영국은 당시 합의된 브렉시트 합의문에 따라 오는 10월31일 유럽연합(EU) 탈퇴를 앞두고 있다. 브렉시트 합의문에 대한 추가 협의는 현재 답보상태다.

현재 영국의 경제 및 정책과 관련해 모든 일정은 브렉시트와 연관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만큼 브렉시트는 영국의 장·단기적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요소다. 그렇기에 메이 총리의 뒤를 이을 새 보수당 대표를 선출하는 이번 투표는 단순히 여당 내 수뇌부 교체가 아닌, 영국의 미래를 좌우하게 될 ‘브렉시트 협상 대표’를 교체하는 셈이어서 그 무게가 더욱 중하다.

6월13일 진행된 보수당 대표 경선 1차 투표 이후, 줄곧 메이 총리 후임으로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이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존슨과 더불어 최종 2인 후보로 선발된 경쟁자 제레미 헌트 현 외무장관도 과거 문화부 장관, 건강 및 공공 케어 장관 등을 역임한 ‘능력자’다. 두 후보는 이민 정책, 세금, 보건 및 복지, 교육 및 정부 예산 집행 등과 관련해 이미 큰 의견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중 단연 주요 쟁점은 브렉시트에 대한 입장이다. 보수당 당원과 영국 국민들이 두 후보자 중 최종 한 명을 선택하는 가장 굵직한 잣대 역시 바로 이 부분이다.

6월22일 보수당 당 대표 최종 후보인 보리스 존슨(오른쪽)과 제레미 헌트가 TV토론회에 참석해 브렉시트에 관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 EPA 연합
6월22일 보수당 당 대표 최종 후보인 보리스 존슨(오른쪽)과 제레미 헌트가 TV토론회에 참석해 브렉시트에 관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 EPA 연합

두 후보의 브렉시트 입장에 “무책임하다” 

두 후보 가운데 헌트 장관은 상대적으로 브렉시트에 대해 온건한 태도를 보여왔다. 지난 합의문 비준 실패로 현실이 될 가능성이 커진 ‘노딜 브렉시트(아무런 합의 없이 영국이 EU를 탈퇴하는 것)’에 대해 그는 줄곧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합의안을 전제로 EU를 탈퇴해야 하며, 노딜 브렉시트는 그야말로 어쩔 도리가 없을 때 가장 최후의 수단으로 고려할 점이라고 밝혀왔다. 특히 헌트는 7월1일 기자회견을 통해 “만일 당선된다면 아무런 대책 없이 노딜 브렉시트가 실행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9월30일을 새로운 브렉시트 합의를 위한 기한으로 정해 둘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를 위해 8월 동안 EU 국가 정상들과의 협력 및 대화를 통해 보다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새로운 브렉시트 합의문을 마련할 것이란 구체적인 목표도 밝혔다.

그러나 최근 그는 노딜 브렉시트를 받아들일 수도 있을 거란 입장으로 조금씩 선회하는 모습을 보여 ‘줏대 없다’ ‘오락가락한다’는 여론의 비판을 받고 있다. 지지율이 존슨 전 장관에 연일 밀리는 상황에서, EU 탈퇴를 강하게 옹호하는 보수당원들의 마음을 돌리고자 오랜 소신을 꺾은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지지율 선두이자 브렉시트 강경파인 존슨 전 장관은 애초부터 “‘죽기 살기로(do or die)’라도 브렉시트는 실현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영국이 EU를 탈퇴하기로 한 10월31일에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EU를 떠날 것이며, 합의 여부도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노딜 브렉시트에 대한 우려가 다소 ‘과장’돼 있다”며 브렉시트 후 영국의 경제 상황을 우려하는 여론을 향해 무역·관세 문제에 대해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두 후보는 브렉시트 이후 국민들이 겪게 될 경제시장의 불안정성을 최소화하고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어떠한 재정적 지원도 불사할 것이라며 여론을 끌어모으고 있다. 그런데 캄캄한 브렉시트 합의 상황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책은 제시하지 않으면서, 브렉시트 이후 ‘포퓰리즘’성 대책들만 경쟁하듯 쏟아내고 있어 비판을 받고 있다. 헌트 장관은 노딜 브렉시트를 대비하는 예비비를 9월까지 마련하겠다고 공표하며 60억 파운드(약  8조8300억원)를 영국의 농축산 긴급자금으로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존슨 전 장관 또한 46억 파운드(약 6조7660억원)를 중·고등 교육의 지역 격차를 줄이는 데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뿐만 아니라 각종 감세 정책, 영국 북부 교통 개선안 등 대규모 예산이 드는 공약들을 내세우고 있다. 이에 대해 영국의 재무장관이자 같은 보수당원인 필립 하몬드는 두 후보자를 향해 “무리한 공약 남발을 멈추고 생각부터 하라”고 일침을 놓았다. 하몬드는 두 후보가 손 놓고 있는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할 경우, 900억 파운드(약 132조5020억원)에 달하는 비용이 들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여론의 비판을 의식한 두 후보는 EU 국가 정상들과 브렉시트 합의문을 다시 논의하고 끝까지 협상할 것이란 의지를 다시 강조하고 나섰다. 그러나 “더 이상의 합의문 협상은 없다”고 강경하게 대응해 온 EU를 상대로 과연 어떠한 진전을 이뤄낼 수 있을지 영국 국민들은 모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발효를 앞두고 여전히 캄캄한 브렉스트 전망에 영국 시민들은 ‘더 이상의 혼란을 만들지 말라(Stop The Brexit Mess!)’며 피로감을 드러내고 있다. ⓒ AP 연합
발효를 앞두고 여전히 캄캄한 브렉스트 전망에 영국 시민들은 ‘더 이상의 혼란을 만들지 말라(Stop The Brexit Mess!)’며 피로감을 드러내고 있다. ⓒ AP 연합

100일 남짓 남은 브렉시트, 대책은 캄캄

브렉시트 사태를 지켜보는 영국 여론은 한창 EU와 협상을 벌이던 지난해와 비교해 볼 때 그리 큰 변화가 감지되진 않는다. 여전히 내부에 브렉시트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브렉시트 발효를 앞둔 상황에서 ‘노딜 브렉시트’만큼은 면해야 한다는 입장이 전체 여론의 60% 이상을 차지하며 대세를 이루고 있다.

브렉시트와 관련해 국민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EU 분담금과 이민 문제에서 이제 ‘관세’로 넘어온 상태다. 그러나 브렉시트 발효가 4개월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면세 구역, 무역 경계지역 지정 등 어떠한 대책도 마련돼 있지 않아 영국 국민들의 불안은 높아지고 있다.

급작스러운 노딜 브렉시트 발효에 대비해, 영국의 각종 물류창고들의 재고율이 최근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는 것 또한 이러한 불안을 방증하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영국 최대 슈퍼마켓 체인 ‘테스코’의 대표 데이브 루이스는 7월3일 BBC와의 인터뷰에서 “브렉시트 발효가 연말과 크리스마스를 얼마 앞두지 않은 시점이기도 해, 재고 조절과 물류 조달의 불확실성에 대처하기 위해 벌써부터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럽과 세계 속 영국의 자주권을 되찾기 위한 브렉시트 여정이 과연 영국 국민들에게도 긍지가 되고 긍정적 영향이 될 수 있을지, 아직까진 여론의 확신이 부족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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